[르포] 트럼프가 동맹 때릴 때…‘전력공백’ 태평양에선 절실한 러브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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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현지시각) 하와이 진주만 해군기지. 정비와 훈련을 거쳐 다음 배치를 준비 중인 미 해군 알레이버크급 유도미사일 구축함 디케이터함(DDG-73) 갑판에 오르자 5인치 함포와 수직발사체계(VLS), 어뢰발사관 등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함장 알린 크루스 중령은 이날 한겨레 등 외신기자들과 만나 "구축함은 항공모함타격단의 일부가 될 수 있지만, 독립적인 전력으로도 작전할 수 있다"며 "동맹과 파트너, 그리고 미국에 신뢰할 수 있는 억제력을 항시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발 '부담 분담' 요구로 상징되는 동맹 재정렬은 중국의 군사력 팽창과 미군 전력의 여러 지역 분산과 맞물리면서 태평양 지역에서 새로운 형태의 진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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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압박 속 ‘실무 밀착’과 ‘다자 격자망’ 동시 진화

지난 9일(현지시각) 하와이 진주만 해군기지. 정비와 훈련을 거쳐 다음 배치를 준비 중인 미 해군 알레이버크급 유도미사일 구축함 디케이터함(DDG-73) 갑판에 오르자 5인치 함포와 수직발사체계(VLS), 어뢰발사관 등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330여명의 승조원이 탑승하는 이 함정은 탄도미사일 방어부터 대잠수함전까지 여러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같은 알레이버크급 구축함들은 현재 중동에서도 방공과 미사일 방어, 타격 임무 등을 수행하며 이란전에서 미 해군의 주축으로 운용되고 있다. 함장 알린 크루스 중령은 이날 한겨레 등 외신기자들과 만나 “구축함은 항공모함타격단의 일부가 될 수 있지만, 독립적인 전력으로도 작전할 수 있다”며 “동맹과 파트너, 그리고 미국에 신뢰할 수 있는 억제력을 항시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함장의 자신감과 달리 미 태평양사령부와 태평양함대사령부가 자리한 하와이에서 중동전쟁에 따른 전력 공백을 목격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일본 요코스카에 상시 배치돼 있던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함이 이란전 지원을 위해 아라비아해로 이동하면서 지난달에는 미 항모타격단이 한때 완전히 사라지는 이례적인 공백도 발생했다.
하와이는 이 공백을 다루는 미군의 최전선이다. 동맹을 향한 워싱턴의 메시지가 ‘더 많은 비용 부담’이라는 압박이라면, 중국의 팽창을 마주한 상황에서 전력 분산까지 맞닥뜨린 하와이의 메시지는 ‘더 많은 도움’을 요청하는 구애에 가까웠다. 8~10일 만난 여러 미군 당국자들은 한국 등 동맹국에 역외 활동 확대와 함정·정비 협력 등을 거듭 요청했다.
■ “밖에서 듣는 메시지와 다를 것…동맹이 가장 중요”
9일 한겨레 등 외신기자들과 만난 미 해군 관계자는 항모가 빠진 현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 당국자는 중국과 북한에 대한 억지력 유지 방안을 묻는 질문에 “현재 이 지역에서 움직이고 있는 미 해군 전력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부족한 전력에 대한 미군의 답은 ‘동맹’이었다. 이 관계자는 “요즘 밖(워싱턴 정치권)에서 들리는 공개 메시지와 다를 것”이라며 자신의 부대 ‘5대 노력 방향’ 중 세번째가 ‘동맹 강화’라고 소개했다. 그는 “우리에게 파트너십은 태평양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며 “동맹·파트너국들은 우리가 지금 얼마나 바쁜지 잘 알고 있으며, 예전보다 태평양 지역에서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인식은 한국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다. 그는 “솔직히 한국이 조금 더 해줬으면 한다. ‘당장의 공백을 메워달라’고까지는 말하지 않겠지만, 한반도 밖에서도 활동을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미 태평양사령부의 작전구역은 동서로는 미국 서부 해안 앞바다에서 인도 서부 국경까지, 남북으로는 남극에서 북극까지 걸쳐 있다. 지구 표면의 약 52%에 달하는 면적이다. 미국의 50번째 주인 하와이뿐 아니라 괌과 북마리아나제도, 아메리칸사모아 등 미국의 자치령, 그리고 국방과 안보를 미국에 맡기는 대신 독립국 지위를 인정받은 미크로네시아연방·마셜제도·팔라우까지 이 구역 안에 있다. 유럽사령부나 중부사령부와 달리, 이 광활한 구역에서 동맹 보호뿐 아니라 미국 영토 및 자치령까지 수호해야 하는 게 태평양사령부의 임무다. 여러 당국자들이 동맹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 이유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지시로 지난달 한-미 연합훈련 을지프리덤실드가 축소 종료됐지만, 다른 다국적 훈련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지난 7~11일에는 한·미·일 3국이 다영역훈련 '프리덤 엣지 2026'을 예정대로 진행했다.
■ “배가 절실하다”…야전의 러브콜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메모’를 통해 동맹국 조선소가 함급별로 최대 2척까지 자국에서 우선 건조한 뒤 이후 물량을 미국 내로 옮기는 ‘핀란드 모델’을 승인했다. 하지만 미 의회는 일자리 보호를 명분으로 제동을 걸고 있다.
함대가 주력인 하와이 현장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새 함정을 제때 만들지 못할 뿐 아니라, 이미 가진 함정조차 정비 지연으로 제때 바다에 내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해군 당국자는 “한국 조선업체들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어쩌면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일 수 있다”며 “미국은 현재 함정을 건조하고 정비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보유 대수’ 자체를 넘어선다. 새뮤얼 파파로 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은 지난 4월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함정이 충분하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관계자는 “가장 큰 부족은 함정 정비 능력일 수 있다”며 “정비를 더 잘하고 빠르게 끝내면 보유 대수가 늘지 않아도 가용 함정이 늘어난다. 전력을 배가시키는 효과”라고 강조했다.
조선업 역량은 미국뿐 아니라 다른 태평양 연안 국가들에게도 한국의 전략적 지렛대가 되고 있었다. 하와이에 위치한 미 국방부 산하 안보 연구·교육기관인 아시아태평양안보연구소의 지니 바케이-왓슨 교수는 10일 한겨레 등 외신기자들과 만나 한국의 조선 역량 집중을 두고 “매우 신중하고 훌륭한 결정이자 현명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은 이 분야에서 분명한 강점을 쥐고 이를 활용해 동남아시아 등 다른 지역과의 관계마저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실제로 (한국에) 잠수함 건조 지원이나 기술적 파트너십을 요청해 오는 국가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 ‘조건부’…더 촘촘해지는 동맹
트럼프 행정부발 ‘부담 분담’ 요구로 상징되는 동맹 재정렬은 중국의 군사력 팽창과 미군 전력의 여러 지역 분산과 맞물리면서 태평양 지역에서 새로운 형태의 진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바케이-왓슨 교수는 국가 간 협력이 갈수록 “조건부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과거 냉전 시대에는 ‘누구와 동맹을 맺느냐’가 맹목적인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어떤 분야에서, 누구와, 왜 협력하며 그것이 자국의 핵심 국익에 어떻게 부합하는가’가 중요해졌다”고 짚었다. 미국이 요구한다고 일률적으로 따르는 대신, 각국이 철저히 자국 이익을 따져 협력할 분야와 상대를 선별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미국을 중심축에 두고 개별 동맹국이 1대1로 연결되던 전통적인 ‘허브 앤드 스포크(Hub and Spoke·바큇살)’ 체제에서, 한국·일본·호주·필리핀 등 역내 국가들이 상호 간에 직접 연합훈련을 하고 전술 정보를 공유하며 역할을 나누는 다층적 ‘격자형 네트워크’가 그 위에 촘촘하게 덧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대표적인 예로 필리핀을 들었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의 거센 압박에 맞서기 위해 미국에만 전적으로 기대지 않고 베트남·인도 등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새로 맺거나 강화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식으로 관계가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면서 중국 입장에서는 필리핀을 상대로 뜻대로 행동하기가 더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같은 연구소의 알렉산더 부빙 교수는 이처럼 촘촘해지는 관계망 자체가 억지력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억지는 위협에만 기반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더 많은 동맹·파트너와 결속력이 강해지면, 그것 역시 강력한 억지 요소가 된다”고 말했다. 부빙 교수는 이를 군사적 위협에만 의존하는 전통적인 억지와 구분해 ‘구조에 기반한 억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억지를 훨씬 더 통합적인 방식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군사력을 늘리는 것뿐 아니라 여러 국가가 서로 촘촘하게 연결돼 특정 국가가 일방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 자체가 새로운 억지력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호놀룰루(미국 하와이주)/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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