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통제 장치 필요” vs “中에 주도권 뺏긴다”… 워싱턴까지 갈라져

워싱턴/박국희 특파원 2026. 9. 15.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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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정치권, AI 속도조절 놓고 대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 시각) 아일랜드 섀넌에서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로 향하는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AI(인공지능)의 폭주 가능성을 우려해 개발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논쟁이 미국 실리콘밸리를 넘어 정치권에서 규제론으로 번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지도부는 “미국이 AI 개발에 제동을 걸 경우 중국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며 속도 조절에 부정적이다. 반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인사들은 “AI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위험에 대비해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AI가 정치 쟁점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적이 뛰어난 AI 갖는 게 더 위험”

아일랜드를 방문 중인 트럼프는 13일(현지 시각) 취재진에게 “우리는 AI에서 중국에 앞서고 있다”며 “AI에서 이기는 쪽이 승리하기 때문에 나는 (제한을 두지 않는) 이 방식을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장치를 둘 수 있다”면서도 “부각할 필요가 없는 일을 부각하는 부정적인 세력이 너무 많다. 그들은 일어나지 않을 일을 부각하고 있다”고 했다.

백악관과 공화당 지도부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왔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AI의 위험성을 “해결 가능한 문제”라고 규정하면서 “미국보다 뛰어난 AI를 확보한 적대 세력이 이를 사이버 공격이나 생물학 무기 등에 활용하는 것이 더 큰 위험”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AI 정책을 이끌어온 데이비드 삭스 백악관 과학기술자문위원회 공동의장도 “기업들이 원한다면 정부 규제 없이 스스로 개발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화당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도 CNN에서 “기업은 제품의 안전을 보장할 책임이 있다”면서도 “의회가 긴급 모라토리엄(개발 중단)을 강요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했다. 특히 “의회가 서둘러 AI를 규제하려 한다면 중국과의 경쟁에서 질 것이고 이는 모든 미국인에게 위협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민주당은 이 문제를 정치 쟁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 비공개 모금 행사에서 “민간의 손에서 매우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기술이고,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위험해질 수 있다”며 민주당이 AI 대응을 핵심 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다만 “제대로 관리한다면 분명 이로운 기술”이라며 AI 전면 중단론과는 거리를 뒀다.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13일 “미국 국민을 보호하고 AI가 안전하게 발전하도록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하원의원들은 15일 의원총회에서 AI 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논의할 예정이다. 2028년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피트 부티지지 전 교통부 장관은 “통제를 벗어난 AI에 ‘킬 스위치(즉각 제동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고, 조시 샤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도 “연방 정부가 국내외에서 AI 안전장치를 마련했어야 할 시점이 이미 지났다”고 주장했다.

◇개발 늦추면 뒤처지는 딜레마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은 AI 업계의 경고였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가 “AI 발전 속도가 인간의 이해와 통제 능력을 앞지를 수 있다”며 속도 조절을 제안하자 샘 올트먼(오픈AI)과 일론 머스크(xAI), 데미스 허사비스(구글 딥마인드) 등 주요 AI 기업 CEO들이 잇따라 동조했다.

문제는 누가 먼저 브레이크를 밟느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어느 한 기업만 속도를 늦추면 경쟁사에 뒤처지고, 미국 기업들이 함께 속도를 늦춰도 중국이 계속 개발하면 미국 전체가 뒤처질 수 있다”며 이를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라고 지적했다.

죄수의 딜레마는 따로 갇힌 두 공범을 상정한 경제학 용어다. 다른 방의 죄수가 자백할 경우 나 혼자 침묵해도 소용없기 때문에 서로 자백하게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경쟁을 설명할 때도 쓰였다. 양측이 핵을 개발하지 않는 것이 인류 전체로는 최선이지만,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결국 양쪽 다 핵을 개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AI 패권 경쟁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중국이 동시에 개발 속도를 늦추면 안전 기술을 개발할 시간을 벌 수 있지만, 어느 한쪽이 합의를 깨고 계속 개발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핵무기와 달리 AI는 상대가 약속을 지키는지 검증하기도 쉽지 않다. 아모데이도 미국만 속도를 늦추고 중국이 계속 개발하는 상황을 ‘가장 어려운 딜레마’라고 했다.

논쟁의 초점은 AI의 위험성 자체보다 ‘위험하다고 해서 미국이 먼저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오는 24일 백악관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AI 위험 관리 문제가 주요 의제로 거론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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