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나와 멕시코서 ‘웃음 빵빵’ “불안정? 그게 뭐라고 두려워하죠?”

김광진 기자 2026. 9. 15.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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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업 코미디언·유튜버 김병선
중남미 스탠디업 코미디언이자 108만 유튜브 채널 ‘코미꼬’ 운영자 김병선씨. /임지훈 기자

“한국은 자살이 많아. 경쟁이 심하거든. 그래서 느긋하고 행복한 여기로 왔지.” 멕시코의 한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 노란 재킷을 입은 한국 남자의 말에 객석에서 “멕시코 만세!”가 터져 나오자, 남자가 맞장구를 친다. “아마 멕시코 사람들은 아무도 자살 안 할 거야.” 그러곤 한마디를 보탠다. “그 전에 타살 당하니까.” 환호하던 관객들이 이번엔 웃음을 터뜨린다.

유창한 스페인어로 멕시코 관객들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인물은 스탠드업 코미디언 김병선(38)씨.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나와 체육교사 대신 코미디언이 됐다. 구독자 108만명인 유튜브 채널 ‘코미꼬’를 운영하며, 2022년부터 멕시코를 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이 공연을 담은 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수 176만회를 넘겼다.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메타코미디사에서 만난 그는 “말을 하려면 그 나라 언어를 배워야 하지만, 웃기려면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 역시 남의 나라 말로 그 나라 사람들을 웃기기까지, 꽤 먼 길을 돌아왔다.

축구선수를 꿈꾸다 고3 때 공부로 방향을 틀었다. 재수 끝에 2007년 서울대에 입학했다. 체육교사가 될 줄 알았지만, 2010년 코이카 봉사요원으로 떠난 페루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약 2년 반 동안 체육을 가르치며 스페인어를 익혔고, 교사의 책임도 실감했다. “수업 50분은 잘할 자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쉬는 시간 10분에도 모범을 보여야 하잖아요.”

삶의 정답도 흔들렸다. 흙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살던 페루 이웃들은 음악을 틀고 웃었다. 귀국하니 전철에서 와이파이가 느리다고 인상 쓰는 사람들이 보였다. 훗날 어머니가 개그맨은 불안정한 직업이라고 걱정했을 때, 그의 머릿속엔 이런 물음이 떠올랐다. “불안정이 과연 뭔데 이렇게들 두려워하지?”

2013년 KBS 공채 28기에 한 번에 합격했다. 기쁨은 단 하루. 개인기도, 뚜렷한 캐릭터도 없었다. 대학로 극장에서 공연 전 분위기를 띄우는 일부터 배웠다. 돌파구는 2016년 페루에서 진행을 맡은 행사였다. “멀리서 오신 분 선물 드릴게요”라는 익숙한 말도 스페인어로 하니 웃음이 터졌다. ‘스페인어 하는 동양인’이 자신의 캐릭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2017년 ‘개그콘서트’에서 ‘창과 방패’라는 코너에서 고정을 맡았지만, 승부수를 던졌다. 단돈 200만원을 들고 스페인으로 향했다. 숙식은 한국인 축구 선수들의 현지 활동을 보조하며 촬영에 통역까지 해주며 해결했다. 조건은 하나였다. “저녁 시간은 제게 보장해달라고 했어요. 밤에는 코미디를 해야 했으니까요.”

마드리드에서 처음 본 스탠드업 공연. 혼자 나온 코미디언을 ‘바람잡이’로 생각했다가 마이크 하나로 두 시간을 웃기는 모습에 놀랐다. 공연 뒤 공채 시험이 있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누구나 무대에 설 수 있는 ‘오픈 마이크’였다.

드디어 오픈 마이크 무대에 오른 날, 그의 첫마디는 “노 소이 치노(No soy chino·나는 중국인이 아니다)”. 이어 “집도, 친구도, 일도 없다”고 하자 웃음이 터졌다. 이유는 무대를 내려와서야 알았다. 동료들은 ‘중국인은 잠도 안 자고 일한다’는 현지 고정관념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중국인이 아니라며 백수라고 하니 웃겼던 것이다. 매번 통했던 것은 아니었다. 레알 마드리드 홈구장 카페 관객 100명 앞에선 수없이 익혔던 농담이 통째로 빗나갔다. 언어를 넘어 관객의 삶을 알아야 웃길 수 있었다.

비자 연장에 실패해 귀국한 뒤 유튜브를 키웠다. 스페인어를 못하는 척하다 유창하게 말해 상대를 놀라게 하는 영상 등을 만들어 인기를 얻었다. 그래도 화면 속 ‘ㅋㅋㅋ’는 눈앞의 웃음을 대신하지 못했다.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직접 관객을 만나는 기쁨은 훨씬 컸다. 2022년부터 멕시코를 주 무대로 삼은 이유다.

요즘도 새 농담은 오픈 마이크에서 세 번쯤 시험한다. 올해 목표는 직접 쓴 한 시간짜리 스페인어 공연에 관객 100명을 모으는 것. 언젠가는 1만명 앞에 서고 싶다. 그가 생각하는 스탠드업은 “철학에 웃긴 포장을 한 것”이다. “제 농담을 듣고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너무 웃기다’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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