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AI의 속도가 나의 의무가 될 때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2026. 9. 1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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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가 공개된 지 4년이 되어간다. 그사이 우리의 질문은 대체로 인공지능(A)이 고용을, 노동을, 일상을 어떻게 바꾸는가였다. 그런데 그 답을 찾는 동안 일상은 다른 질문을 되돌려준다. 어떤 AI를, 어떻게 쓰고 또 배워야 하는가. 나 역시 검색과 번역으로 시작해 논문의 논리를 점검하고 아이디어를 논의하는 데까지 나아갔고, 전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하게 되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AI가 없다면 나는 지금 맡은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자동차를 타면 빠르고 멀리 가지만, 그 속도를 내 다리의 능력이라 여기지는 않는다. AI와 일할 때는 그 구분이 쉽지 않다. 화면에 펼쳐지는 문장을 읽고 고치며, 나는 어느새 그 속도를 내 능력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불안이 낯설지는 않았다. 청소년의 약물 사용을 연구하며 알게 된 학생 B가 떠올랐다. 미술 입시를 준비하던 그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치료제를 복용한 뒤 정해진 시간 안에 그림을 완성하는 일이 수월해졌다고 했다. 대학에 가서 약을 끊은 뒤에도 그 경험은 남았다. 과제가 잘 풀리지 않으면 약을 먹지 않아서라고 생각했고, 마감이 몰리면 다시 먹어야겠다고 여겼다. 약과 함께했던 수행 수준이 이후의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 것이다. 약이 필요한 사람에게 약은 도움이 된다. 질문은 다른 데 있다. 약의 도움으로 가능해진 상태는 언제부터 반드시 유지해야 할 자기 모습이 되는가.

영국 의료사회학자 니컬러스 로즈는 현대인이 자신의 감정과 능력을 신경화학적 상태로 이해하고 관리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약물은 몸에 작용하면서 자기를 설명하는 방식에도 관여하고, 치료적 약물은 어느 순간 증강의 도구로 미끄러진다. AI는 몸속으로 들어오는 약물이 아니지만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결과물을 얻는 일과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낼 능력을 기르는 일은 어긋날 수 있다. 학생 B는 약을 끊었지만, 과제량과 마감이 이미 약을 전제로 상상되는 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다만 약은 한 사람의 몸에 붙고, AI는 조직의 시간표에 붙는다. 그렇게 어제의 증강이 오늘의 기본값이 되면, 예전과 같은 속도로 일하는 자신이 갑자기 부족하게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이 변화가 유난히 빠르다. 마이크로소프트 산하 연구소가 지난 5월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올해 1분기 한국의 근로연령인구 중 생성형 AI 사용률은 37.1%로 세계 평균 17.8%의 두 배였다. 전 분기보다 6.4%포인트 오른 수치로 주요국 가운데 증가폭이 가장 컸다. 확산의 이면에는 개인의 지갑과 불안이 있다. 지난 4월 글로벌 HR 플랫폼 딜과 리멤버가 국내 사원에서 과장급 직장인 1000명에게 물었더니 53%는 유료 AI 서비스 비용을 직접 부담한다고 답했고, 46.1%는 AI 역량이 이미 인사 평가나 보상에 영향을 준다고 했다. 반면 회사 교육으로 AI를 배운다는 응답은 15.8%에 그쳤다. 비용도 학습도 각자의 몫인 셈이다. 사람들은 사용법을 배우면서 자신이 따라가야 할 속도도 함께 배운다.

미디어연구자 멀리사 그레그는 이 구도를 시간관리 조언의 역사에서 읽어냈다. 일을 어떻게 배열할지는 본래 조직의 몫이었지만, 고용이 불안정해질수록 그 과제는 개인의 기술 문제로 옮겨간다. 그 이전은 비용 전가가 아니라 자기계발로 경험된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능력을 높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실시한 가계조사에서 남성과 청년층, 고학력자, 전문·관리직의 AI 활용률이 높았다. 생산성 조언은 언제나 돌봄의 의무가 없는 사람, 혹은 그 일을 대신해줄 누군가가 있는 사람을 전제해왔다. 같은 조사에서 확인된 업무시간 단축은 주 40시간 기준 한 시간 반이었다. 그 한 시간 반은 누구의 것인가. 누군가는 새로운 학습에 쓰고, 누군가는 높아진 목표를 채우는 데 쓴다.

나의 불안은 이제 혼자 도구에 지나치게 기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넘어선다. 자동차의 진짜 문제는 착각이 아니라 도로였다. 자동차를 전제로 도시가 만들어지면 걷는 능력이 그대로여도 차 없이 살기 어렵다. AI를 전제로 업무량과 마감이 정해지면, 우리는 능력이 줄지 않아도 AI 없이는 일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사람이 AI를 접하도록 돕는 일만이 아니다. 구독료와 학습시간을 개인에게 떠넘기지 않는 것, 줄어든 업무시간을 휴식과 보상으로 돌려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생각하며 머뭇거릴 시간을 지켜주는 것이다. AI 덕분에 한 번 해낼 수 있었던 속도가 언제나 해내야 하는 나의 의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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