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 전문점에서 나온 사골국 '아버지의 집밥' [씨네:리포트]

강지호 2026. 9. 14. 14:3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마라탕 전문점이 사골국을 끓여 왔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감독과 배우가 만나 만들어 낸 색다른 시도, 세로형 시네마 '아버지의 집밥'이다.

특히 '아버지의 집밥'은 그간 일명 '마라맛 콘텐츠'라고 불리는 자극성 위주의 숏폼을 제작해 온 '마라탕 맛집' 레진엔터테인먼트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이준익 감독과 손을 잡고 탄생시킨 일명 '웰메이드 숏폼'이라고 볼 수 있다.

극 중 하응이 처음 끓여 본 사골국처럼 감독에게도,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첫 시도의 이질감이 있을지언정, '아버지의 집밥'이 담아낸 이야기는 순애가 끓인 사골국처럼 깊고 진한 맛을 품고 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TV리포트=강지호 기자] 마라탕 전문점이 사골국을 끓여 왔다. 셰프는 이준익 감독이고, 정진영, 이정은이 재료가 됐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감독과 배우가 만나 만들어 낸 색다른 시도, 세로형 시네마 '아버지의 집밥'이다.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아버지의 집밥'은 40년간 삼시세끼 집밥만 찾던 아버지 하응(정진영)이 '요리백지증'에 걸린 아내 순애(이정은)를 대신해 생애 처음 부엌에 들어서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아버지의 집밥'은 그간 일명 '마라맛 콘텐츠'라고 불리는 자극성 위주의 숏폼을 제작해 온 '마라탕 맛집' 레진엔터테인먼트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이준익 감독과 손을 잡고 탄생시킨 일명 '웰메이드 숏폼'이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약 5억 원의 제작비, 약 33명의 스태프, 14회차 촬영만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세로형 영상물이 자극성이 높은 숏폼 형태로 소비되어 왔던 만큼, 극장 스크린에 3분의 1 크기로 걸린 무(無)자극 콘텐츠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극 중 하응이 처음 끓여 본 사골국처럼 감독에게도,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첫 시도의 이질감이 있을지언정, '아버지의 집밥'이 담아낸 이야기는 순애가 끓인 사골국처럼 깊고 진한 맛을 품고 있다.

▲ 스크린 3분의 1의 낯선 맛…좁아진 화면, 더 커진 사람

극장에 걸린 '아버지의 집밥'을 스크린으로 마주한 첫 느낌은 '당황스러움'이었다.

커다란 극장 스크린 한가운데 스마트폰을 그대로 세워놓은 듯한 화면이 자리 잡고 있고, 좌우는 텅 비어 실제 영상이 차지하는 영역은 스크린의 3분의 1 정도다. 넓은 화면을 두고 굳이 좁은 세로 화면을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부터 적응이 필요하다.

그런데 보다 보면 이 좁은 화면만의 맛이 생긴다. 가로형 영화가 공간과 배경까지 활용한다면 '아버지의 집밥'은 사람에게 시선을 모은다. 카메라는 배우에게 가까이 붙고, 좁은 프레임에는 얼굴과 움직임이 가득 들어찬다. 마치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어느 가족의 일상을 엿보는 듯하다.

때로는 무대 바로 앞에서 연극을 보는 기분도 든다. 정진영과 이정은이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고, 밥을 먹고, 부엌을 오가는 평범한 움직임까지 유독 크게 다가온다.

정진영과 이정은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다. 두 배우는 식탁에 앉아 있는 모습과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대화를 주고받는 호흡만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온 하응과 순애의 세월을 채운다. 변요한 역시 자신의 몫을 확실히 해낸다.

조연 배우들의 존재감도 남다르다. 가로 화면이었다면 배경과 다른 인물에게 분산됐을 시선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면서 배우의 표정과 움직임까지 자세히 보인다. 화면은 좁아졌지만 배우 한 명 한 명은 오히려 더 크게 살아 움직인다.

숏폼의 문법을 장편처럼 이어 붙인 구성도 생각보다 자연스럽다. 짧은 회차마다 작은 기승전결이 반복되면서 긴 러닝타임에도 속도가 쉽게 죽지 않는다. 스마트폰 콘텐츠에서 익숙했던 효과음과 연출까지 극장으로 옮겨지면서 기존 영화에서는 만나기 어려웠던 묘한 감각도 만들어낸다.

새로운 형식과 다르게 이야기는 익숙하다. 평생 아내가 차려준 밥을 먹었던 남편이 처음 부엌에 들어간다. 늙어가는 부모와 이를 바라보는 자식, 오래 함께 살아온 부부가 밥 한 끼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쌓는다.

어쩌면 뻔하다. 강한 사건도, 자극적인 반전도 없다. '마라맛'에 익숙한 숏폼을 생각했다면 꽤 심심하고, 취향에 따라서는 지루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골국이 원래 그렇다. 첫입부터 혀를 때리는 맛보다는 오래 끓여 깊어진 맛으로 먹는다. 새로운 형식을 선택한 이준익 감독이 정작 그 안에 집어넣은 것은 가장 오래되고 평범한 이야기다. 우리네 삶과 가장 닮아 있는 '진짜' 이야기다.

▲ 5억으로 차린 이준익의 집밥…새로운 그릇에 담긴 오래된 맛

약 5억 원의 제작비, 33명의 스태프, 14회차 촬영. '아버지의 집밥'을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숫자다.

최근 국내 영화계는 투자 시장이 얼어붙으며 작품 한 편을 출발시키는 것조차 쉽지 않은 시간을 지나고 있다. 제작비가 커질수록 손익분기점도 높아지고, 흥행 실패에 대한 부담은 다시 투자를 위축시킨다.

그런 시기에 이준익 감독과 정진영, 이정은, 변요한을 비롯한 배우들이 작은 규모로 완성도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다. '아버지의 집밥' 한 편이 침체된 한국 영화 산업의 해답이 될 수는 없지만, 적은 제작비와 짧은 촬영 기간으로도 좋은 이야기를 선보일 수 있다는 하나의 선례는 될 수 있겠다.

물론 물음표도 남는다. 영화 '왕의 남자', '동주', '박열', '자산어보'를 만든 이준익 감독이 정진영, 이정은, 변요한과 찍은 신작 영화라고 생각하고 극장에 들어간다면 낯설 수밖에 없다. 거대한 스크린 대부분을 비워둔 채 중앙의 세로 화면을 바라보는 경험은 누군가에게 신선함보다 아쉬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

특히 영화 관람료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관객에게 OTT 대신 극장을 선택할 이유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서, 휴대전화에 가장 익숙한 세로형 콘텐츠가 극장에서 얼마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집밥'이 가진 가치는 분명하다. 결과보다 시도 자체에 있다.

누군가는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는 것조차 낯설어했던 시절이 있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의 등장이 영화의 소비 방식을 바꿨듯, 세로형 시네마 역시 훗날 영화가 또 하나의 형태로 확장됐던 순간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물론 한때의 실험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준익 감독의 그 낯선 시도의 시작에 함께해 보고 싶다면, 온 가족이 따뜻하고 깊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원한다면, '아버지의 집밥'을 극장에서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더 짧게, 더 세게, 더 자극적으로 만드는 것이 익숙해진 숏폼 시장에 이준익 감독은 정반대의 음식을 내놨다.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담아 오래 끓인 작품이다.

처음에는 낯설고, 누군가에게는 심심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계속 먹다 보면 깊은 맛이 난다. 그게 또 묘미일까 싶다.

9월 9일 개봉. 러닝타임 146분. 12세 이상 관람가

강지호 기자 / 사진= 레진스낵 '아버지의 집밥'

Copyright © TV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