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5인’ 마지막 생존자 정호용 사망…5·18 사죄 없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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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 핵심 인물로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하고 5·18 민주화운동 진압과 관련해 유죄 판결을 받은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13일 94세로 사망했다.
그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과 함께 '신군부 중요 인물 5인'으로 꼽힌 인물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였다.
그러나 5·18 진압 작전이 '신군부 핵심부→특전사령관→공수여단장'으로 이어지는 비공식 지휘체계를 통해 이뤄졌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정 전 장관의 사망으로 신군부 핵심 5인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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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단체 “사죄 없이 떠나 유감”
신군부 핵심 인물로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하고 5·18 민주화운동 진압과 관련해 유죄 판결을 받은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13일 94세로 사망했다.
그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과 함께 ‘신군부 중요 인물 5인’으로 꼽힌 인물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였다. 5·18 진압에 대한 사죄나 진상규명 협조 없이 세상을 떠나면서 당시 신군부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을 규명할 핵심 당사자의 증언도 끝내 남지 않게 됐다.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난 정 전 장관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이희성 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황영시 전 육군참모차장과 함께 ‘신군부 중요 인물 5인’으로 꼽혔다.
정 전 장관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에 가담했고, 이튿날 육군 특전사령관에 임명됐다.
그는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진압 가담 등의 혐의로 민주화 이후인 1996년 기소됐고, 이듬해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을 확정받았다. 당시 내란중요임무종사, 내란목적살인, 반란중요임무종사,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방조)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특전사령관이었던 정 전 장관은 항쟁 기간 최소 네 차례 광주를 방문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장관은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가 다른 작전 지휘계통에 배속돼 있었고 자신의 광주 방문도 예하부대의 행정·군수 지원을 위한 것이었다며 유혈 진압에 대한 책임을 부인해왔다.
그러나 5·18 진압 작전이 ‘신군부 핵심부→특전사령관→공수여단장’으로 이어지는 비공식 지휘체계를 통해 이뤄졌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정 전 장관이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전남도청 재진입 작전인 ‘상무충정작전’을 지원한 책임도 이후 대법원 판결에서 인정됐다.
신군부 권력의 핵심에 있던 그는 제5공화국에서 육군참모총장까지 지낸 뒤 대장으로 예편했다.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에는 내무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을 차례로 맡았다.
1988년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 서구갑에 출마해 당선됐지만, 이듬해 5공 청산 여론이 거세지자 의원직을 사퇴했다.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는 같은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다시 당선됐다. 이후 육사발전기금 이사장과 특전사전우회 회장 등을 지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가 정 전 장관을 상임고문으로 위촉했다가 논란이 일자 약 5시간 만에 위촉을 취소하기도 했다.
정 전 장관의 사망으로 신군부 핵심 5인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특히 5·18 당시 발포 지휘체계와 신군부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 등에 대한 당사자 증언을 추가로 확보하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재대 5·18기념재단 사무처장은 언론에 “5·18 책임자이자 옛 전남도청 진입 작전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정 전 장관이 사죄 없이 떠난 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양재혁 5·18유족회 회장도 “정 전 장관이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당시의 잘못까지 묻힐 수는 없다”고 했다.
정 전 장관의 빈소는 경기 수원 아주대병원에 마련됐다. 병원 측은 사망 시각과 발인 일정 등 구체적인 장례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따르면 유족들이 별세 관련 정보가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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