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소도 알리지 못한 정호용 죽음…끝내 5·18 사과 없어
전두환·노태우와 육사 동기, 하나회 인맥 핵심
5·18 당시 네 차례 광주 방문해 진압작전 관여
육참총장·내무·국방장관 거쳐 국회의원 두 번
내란목적살인죄로 징역 7년 확정 뒤 특별사면
12·12 40년 되는 날 전두환 등과 만찬 즐겨
김문수, 지난해 대선 상임고문 위촉했다가 취소
전남도청 추가 희생자 7명 관련 추가 고발 의결
앞으로 진상 규명, 기록과 자료에만 의존할 듯

14일 아침 7시 현재 경기도 수원의 아주대학교 병원 장례식장 홈페이지 빈소 안내에는 35호실이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연합뉴스>는 전날 밤까지 이 장례식장 35호실의 부고 알림 모니터가 꺼져 있었으며, 장례식장 홈페이지에는 35호실이 '점검 중'이라고 표시돼 있었다.고 보도했는데 몇 시간 만에 이렇게 바뀐 것이었다.
35호실에 빈소를 마련한 유족은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유혈 진압에 관여한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의 유족이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주도한 신군부 '핵심 5명' 가운데 한 명이었으며 마지막 남은 생존자가 제대로 된 반성이나 사과 없이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1980년 5월 18일 당시 특전사령관이었던 정호용은 전두환 보안사령관, 노태우 수도경비사령관, 이희성 계엄사령관, 황영시 계엄부사령관과 함께 5·18민주화운동을 무력 진압하는 주요 의사 결정에 관여했던 신군부 핵심 실세였다.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 당시 그는 대구에 주둔한 육군 제50사단장이었다. 전두환·노태우 등과 함께 서울에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 연행하거나 병력을 출동시킨 지휘관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란 직후 그의 군내 지위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신군부는 12·12에 저항하다 부하들에 의해 체포된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해임하고 그 자리에 정호용을 앉혔다. 신군부가 군의 핵심 전투부대인 특전사를 장악하려는 포석이었다. 정 전 장관이 맡은 특전사 예하에는 이듬해 광주에 투입된 제3·7·11공수특전여단이 있었다. 이들 부대는 광주 시민과 학생을 구타하고 총격을 가한 계엄군의 핵심 병력이었다.

그는 이듬해 대장으로 진급한 데 이어 1983년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뒤 1985년 예편했다. 전두환의 육사 11기 동기로 하나회 주축 멤버였던 그는 전두환 정권에서 내무장관·국방장관을 역임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뒤에 대구에서 13,14대 의원을 지냈으나 1996년 과거사 청산 당시 구속돼 1997년 대법원에서 내란모의 및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그의 내란목적살인 혐의에 대해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공수여단에 대한 행정, 군수지원 등의 지원을 하는 한편, 전교사령관에게 공수여단의 특성이나 부대훈련상황을 알려주거나 재진입 작전에 필요한 가발·수류탄과 항공사진 등의 장비를 준비해 예하부대원을 격려하는 등 광주재진입작전의 성공을 위해 측면에서 지원했다"고 판시했다.
정호용은 당시 특전사령관을 맡고 있었음에도 광주에 투입됐던 공수부대가 전투병과교육사령부 등 현지 지휘계통에 배속돼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할 권한이 없었다며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즉 자신은 광주에 배속된 부대원들을 행정적으로 지원하는 명령만 내렸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이후 5.18진상조사위원회 조사 과정을 통해 정호용이 1980년 5월 20일부터 27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약 81시간 동안 광주에 머물렀던 사실이 확인됐다.
진상조사위는 정호용이 처음 광주에 내려간 5월 20일 작전 현안을 보고받는 회의를 주재했다는 복수의 진술을 확보했다. 당시 장세동 특전사 작전참모가 회의를 진행했고, 광주에 투입된 3·7·11공수여단장이 참석해 시위 진압 상황을 논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회의는 정호용이 광주를 방문할 때마다 열린 것으로 파악됐다. 전교사 상황실 2층에는 특전사가 별도로 사용하는 상황실도 설치돼 있었다.
5월 22일 박충훈 당시 국무총리 서리가 광주를 방문했을 때 촬영된 영상에는 정호용이 군 관계자들과 함께 회의하는 장면도 담겼다. 이 영상은 자신이 광주에서 열린 주요 작전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설명과 정반대였다.

그런데도 그는 그 뒤에도 자신의 책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거나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그는 군사반란과 내란 관련 유죄 판결로 지급이 중단된 군인연금을 다시 지급해 달라는 소송에도 참여했다. 법원은 헌정질서 파괴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의 연금을 제한한 조치가 정당하다고 보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9년 12월 12일에는 전두환, 최세창 등 신군부 인사들과 서울의 한 고급 음식점에서 오찬하는 모습이 포착돼 다시 한번 세상의 지탄을 받았다. 군사반란 40년이 되는 날에 관련자들이 함께 식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반성 없는 '기념 오찬'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정 전 장관은 2021년 5·18진상조사위에 자신의 책임을 다시 조사해 달라는 진정서를 냈다. 자신이 5·18 책임자로 지목된 것은 노태우 정부가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기 위해서였다며 내란목적살인죄로 처벌받은 것은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조사위는 2024년 기존 형사재판의 공소사실에 포함되지 않았던 5월 27일 전남도청 진압 희생자 7명을 추가로 확인했다. 이에 따라 정 전 장관과 당시 공수여단장 등을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발하기로 의결했다.
지난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의 핵심 책임자이며 제대로 반성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은 고인을 대선 후보 상임고문으로 임명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5월 14일 오후 선대위 추가 인선 명단에 정호용을 박희태 전 국회의장, 김종하·이주영 전 국회부의장, 목요상·신경식·유용태 전 헌정회장 등과 함께 후보 상임고문으로 위촉했다고 밝혔다가 '내란 본색' 논란이 일자 그날 저녁 취소했다.
5·18 이후 46년이 흘러 신군부 핵심 인사들도 모두 세상을 등졌다. 노태우·전두환은 2021년 잇따라 숨졌고, 황영시와 이희성도 2022년 뒤를 따랐고, 이제 정호용마저 세상을 떠나 5·18 당시 발포 지휘체계 등 신군부의 의사결정 과정과 신군부 수뇌부의 개입 과정 등에 대해 핵심 당사자의 입으로 진실을 확인할 길은 사라졌다. 결국 남은 진상규명은 기록과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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