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재벌 순환출자 [유레카]

박종오 기자 2026. 9. 14.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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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시장이 재벌 구조를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다. 무한 경쟁의 세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재벌 집단이 아닌 개별 기업이 독자적으로 세계 초일류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지주회사 제도가 재벌이 적은 지분으로도 전체 그룹을 지배할 수 있게 하는 부작용이 있으나, 거미줄처럼 얽힌 기존 순환출자 구조를 단순화하고 구조조정 과정의 계열사 매각, 외부 투자 유치 등을 손쉽게 하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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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시장이 재벌 구조를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다. 무한 경쟁의 세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재벌 집단이 아닌 개별 기업이 독자적으로 세계 초일류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9년 8월15일 경축사를 통해 재벌 개혁의 3대 원칙을 발표했다. 계열사 간 순환출자 및 부당 내부거래 억제, 재벌의 금융지배 규제, 변칙 상속 금지 등이다.

정부가 1986년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금지했던 지주회사 설립과 전환을 다시 허용하기로 방침을 바꾼 것도 1999년이다. 지주회사 제도가 재벌이 적은 지분으로도 전체 그룹을 지배할 수 있게 하는 부작용이 있으나, 거미줄처럼 얽힌 기존 순환출자 구조를 단순화하고 구조조정 과정의 계열사 매각, 외부 투자 유치 등을 손쉽게 하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주회사란 그룹 최상단에서 계열사 주식 지분을 쥐고 사업을 통제하는 게 본업인 회사다. 현행법상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로 이어지는 수직 출자를 통해 산하 회사 직접 지배만 가능하고, 이외 다른 계열사 지분은 보유할 수 없다. 이 제도가 재벌의 순환출자를 끊기 위한 ‘필요악’으로서 도입됐다는 얘기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지주회사 수는 지난해 말 기준 173개에 이른다. 주요 재벌(대기업 집단) 중에선 엘지(LG)그룹이 2003년 ㈜엘지를 출범하며 ‘지주회사 체제 전환 1호’ 그룹이 됐다. 에스케이(SK)그룹은 외국계 사모펀드 소버린의 경영권 공격을 계기로 2007년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이 적은 지분을 가지고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을 지배하는 ‘약한 고리’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까닭이다. 반면 삼성과 현대차그룹은 비지주사 체제다.

지주회사 제도가 지배 구조 단순화라는 순기능이 있지만, 재벌의 편법적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도 많다. 지주사 전환을 위한 구조 재편 과정에서 지배주주가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지배력을 강화하는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이 대표적이다. 이는 주요 그룹이 이 꼼수를 쏠쏠하게 써먹고 난 이후인 2024년 말에야 금지됐다.

정부와 여당이 최근 3대 메가프로젝트를 뒷받침하기 위한 ‘메가특구 특별법’을 통해 일반 지주회사의 수평 출자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메가특구 투자에 한해 계열사 출자와 순환출자 규제를 다시 풀어주겠다는 취지다. 공정위 등 관계부처는 일단 선을 긋고 있으나, 투자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세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졸속 결정을 하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박종오 논설위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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