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이 시대에 뭘 할 수 있나” 이창동이 묻고 베니스가 답했다

김태언 기자 2026. 9. 14.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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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72)의 영화 '가능한 사랑'이 제83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가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상을 받은 건 2012년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 이후 14년 만이다.

이 감독은 2002년 '오아시스'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뒤 24년 만에 다시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가능한 사랑'의 베니스 영화제 수상은 그간 사회의 부조리함을 집요하게 응시해 온 이 감독에 대한 글로벌 영화계의 찬사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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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사랑’ 베니스 심사위원대상
‘오아시스’ 감독상 후 24년 만에 수상
“노동 사라진 시대, 영화의 역할 고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고찰도”
23일 국내 개봉 후 11월 OTT 공개
12일(현지 시간) 개최된 제83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이창동 감독이 영화 ‘가능한 사랑’으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뒤 트로피를 들고 있다. 이 감독은 “이 영화에 생명력을 준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 네 분에게 감사드린다. 이 상은 여러분의 것”이라며 주연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베네치아=AP 뉴시스
이창동 감독(72)의 영화 ‘가능한 사랑’이 제83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대상은 대상인 황금사자상 다음인 2위에 해당하는 상으로, 한국 영화가 이 상을 받은 건 처음이다. 한국 영화가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상을 받은 건 2012년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 이후 14년 만이다.

이 감독은 12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리도섬에서 열린 폐막식에서 상을 받은 뒤 “노동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에, 저는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영화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질문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며 “이 상을 주신 건 그 질문을 계속하라는 뜻으로 알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 “가장 섬세하고 성숙한 이창동 영화”

영화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 호석(설경구)과 그의 아내 미옥(전도연),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와 그의 남편 상우(조인성·왼쪽부터) 등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을 위해 만나면서 숨겨졌던 욕망을 알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넷플릭스 제공
영화 ‘가능한 사랑’은 이 감독이 ‘버닝’(2018년)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해고 노동자(설경구)와 그의 아내(전도연), 다큐멘터리 감독(조여정)과 그의 남편(조인성)이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을 위해 만나 서로 다른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 감독은 2002년 ‘오아시스’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뒤 24년 만에 다시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올해 영화제 심사위원 중 한 명인 홍콩 감독 조니 토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창동의 이번 작품은 그가 만든 영화 8편 가운데 가장 섬세하고 성숙하다”며 “이 영화의 모든 디테일한 요소를 높게 평가했다”고 선정 사유를 전했다.

출연 배우들은 다른 해외 영화제 참석 등을 이유로 시상식 현장에는 함께하지 못했다. 전도연은 제작사 넷플릭스를 통해 “이번 수상이 감독님께서 다음 작품을 써 내려가는 데에 큰 동력이 되길 바란다”면서 “벌써부터 다음에 보여주실 영화가 궁금해진다”며 기뻐했다.

‘가능한 사랑’은 앞서 6일 베니스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을 당시 약 7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후 현지 비평가 평점도 줄곧 선두권을 유지해 수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미국 연예 매체 ‘할리우드 리포터’는 “경제적·정서적 불안을 파고드는 강렬한 성찰”이라며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애절한 휴머니즘을 보여주는 이 감독 특유의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 내년에 오스카도 거머쥘까

‘가능한 사랑’의 베니스 영화제 수상은 그간 사회의 부조리함을 집요하게 응시해 온 이 감독에 대한 글로벌 영화계의 찬사로 평가받는다.

이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독특한 이력을 지닌 감독이다. 고교 국어교사였던 그는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전리’가 당선돼 문단에 등단했다. 이후 1997년 영화 ‘초록물고기’로 43세에 늦깎이 감독으로 데뷔했다. 제대 뒤 사회로 돌아온 청년이 폭력 조직에 휘말려 파멸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우리 사회의 그늘을 날카롭게 포착했다.

이후에도 이 감독의 관심은 늘 사회의 주변부로 향했다. 5·18민주화운동이 한 남성의 삶에 남긴 비극을 다룬 ‘박하사탕’(2000년)과 장애인 여성과 남성의 사랑을 그린 ‘오아시스’(2002년), 구원과 용서의 의미를 묻는 ‘밀양’(2007년), 알츠하이머를 앓는 노인을 주인공으로 한 ‘시’(2010년), 청년 세대의 불안을 풀어낸 ‘버닝’(2018년)까지 그의 영화는 상처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의 모순을 비춰 왔다.

‘가능한 사랑’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있다. 10여 년 전 한 대기업에서 벌어진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이 감독은 해고 노동자의 삶을 다룬 시나리오를 오랜 기간 고쳤다고 한다.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난항을 겪다가 넷플릭스의 투자로 제작됐다. 23일 국내 극장에서 먼저 개봉한 뒤 11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가능한 사랑’이 베니스에서 상을 받으며 오스카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달 이 작품을 내년 3월 열리는 제99회 미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 출품작으로 선정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13일 X(옛 트위터)에서 “이번 수상을 계기로 우리 영화의 다양성이 더욱 넓어지고 좋은 작품들이 세계 관객들과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축하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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