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만학도'의 꿈 틔운 이선재 교장…"세상은 떠났지만 가르침은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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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을 기리는 기억의 조각, 그 곁을 치열하게 마주한 뒤 비로소 전하는 느린 부고.
그리고 그 뒤를 이씨가 고개를 숙인 이선재 교장이 채웠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이 교장의 '일성일요학교'였다.
그렇게 이 교장의 품에서 배움이라는 꿈을 이룬 학생 수만 6만3,000여 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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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여중고등학교 故 이선재 교장
여성 만학도들 키운 한국의 페스탈로치
늦깎이 여학생들, 형제·돌봄 끝에 등교
졸업장 들고 부모님 산소 찾아가 눈물
길거리에서 방황하던 학생들 직접 모집
이 교장 떠나고 학교 폐교 위기에 처해
편집자주
고인을 기리는 기억의 조각, 그 곁을 치열하게 마주한 뒤 비로소 전하는 느린 부고. 가신이의 삶엔 어떤 이야기가 남아 있을까. 별세, 그 너머에 살아 숨쉬는 발자취를 한국일보가 기록합니다.

"나는 이제 학생이니까, 공부를 해야 하니까, 가족들에게 집안일은 분담하자고 말하셔야 합니다."
3월 3일 서울 마포구 신촌감리교회, '2026학년도 일성여중고 입학식'. 김상현 교감이 단상 앞으로 모인 학생들에게 조언과 격려를 쏟아냈다. 여중생, 여고생이 될 이들의 복장과 눈빛은 여느 학생들과 달랐다. 교복이 아니라 한복을 입었고, 부모 잔소리에 지친 사춘기 아이들의 표정은 더더욱 아니었다.
개중엔 이날 중학교로 입학한 이복개(77)씨도 있었다. 돈이 없어서 여자라서 배움을 놓쳤던 '만학도'. 칠 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그는 동생들 업고 밭일을 한다고 공부 '때'를 놓쳤다. 이날, 그의 손녀도 중학생이 됐다. 다른 학교로 가던 손녀는 이씨에게 "할머니 진짜 멋지다. 이제 같은 중학생이니까 열심히 함께 공부하자"고 손을 흔들었다.
"이 학교가 없었으면요. 평생 배움의 한을 풀지 못했을 것인데, 지금이라도 꿈을 향해 달릴 수 있어 너무 감사드립니다. 이선재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날 입학식은 김 교감이 대부분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씨가 고개를 숙인 이선재 교장이 채웠다. 교육의 사각지대 속에서 살아온 여성들을 위해 평생을 바쳐 '한국판 페스탈로치'로 불리던 이선재 일성여중고 교장. 그가 입학식으로부터 2개월이 지난 5월 10일, 눈을 감았다. 향년 90세.

1936년 개성에서 태어난 이 교장은 6·25 전쟁 중 1·4 후퇴를 계기로 서울로 피란 왔다. 주변 이웃들 도움으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던 그는 1960년 야학을 열었다. 그때 피란민 자녀들이 다니는 일성고등공민학교가 건물 임대료를 1년이나 내지 못하면서 길거리 수업을 하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평소 알고 지냈고, 자신의 야학에 도움을 주었던 한의사를 찾아갔다. 그 덕에 학교는 폐교되지 않았고, 일성학교와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10년이 흘렀다. 피란민이 주로 다니던 일성학교로 나이 든 주부들과 여공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여공들은 옷에 붙이는 라벨을 보며 영어에 호기심이 생겼다고 학교를 찾았다. 그런데 공장 사장들은 허락하지 않았다. '학교냐 공장이냐, 하나만 선택하라'는 강요에 발길을 끊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이 교장의 '일성일요학교'였다. 공장에 출근하지 않는 일요일에 맞춰 학교 문을 활짝 열었다.
이 교장이 품었던 여성 만학도들 인생의 궤적은 대동소이했다. 형편이 어려웠고, 학업의 우선순위에서 오빠나 남동생에게 밀렸고, 논밭으로 공장으로 밀려갔다. 성인이 되면 '시집'을 갔고, 출산을 하면 육아에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면 그때부터 나이 든 부모나 시부모를 모셨다. 그게 그때의 도리였다.

이들을 반겨준 게 이 교장의 일성여중고였다. 지금 일성여중고에도 늦깎이 학생 950명이 다니고 있다. 보험 판매나 정수기 관리, 건물 청소, 요양보호사, 가사도우미 등 생업과 병행하며 배움을 이어 나가는 이들이다.
일성여고를 졸업하고 어엿한 대학생(숙명여대)이 된 김봉자(67)씨도 그중 한 명이다. 김씨는 "공부가 평생의 숙제였는데 지금은 매일이 꿈만 같다"고 했다. 김씨는 졸업장을 받자마자 부모님 산소를 찾아 펑펑 울었다고 한다.

김씨는 이 교장의 '콩나물론'을 자주 떠올린다. 그는 "이 선생님은 '공부를 하다 보면 잊어버릴 때가 많은데 그러면 배우고 또 배우다 보면 콩나물 시루처럼 쑥쑥 크는 순간이 온다'고 격려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록 선생님은 먼저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 가르침은 평생 남을 것"이라고 했다.

이 교장이 문을 열어준 학생들의 열의는 대단했다. 여공과 주부들이 새벽부터 등교하는 바람에 '아침 7시 30분에 문을 엽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여야 했다. 이 교장이 2000년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교육시설 인가를 받아 지금의 일성여중고로 발돋움했던 것도 학생들의 열성 덕이 컸다. 그렇게 이 교장의 품에서 배움이라는 꿈을 이룬 학생 수만 6만3,000여 명에 달한다.

이 교장의 가르침에 인생이 바뀐 이들도 있다. 강희천(68)씨가 대표적이다. 강씨는 1973년 이 교장이 주산 교사로 있던 일성여중고의 전신인 일성고등공민학교에서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강씨 기억에 이 교장은 늘 엄했다. 강씨 반 아이들은 이 교장이 직접 모집한 학생들이었다. 가난하거나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길거리의 아이들'을 이 교장이 직접 설득해 학교로 데리고 왔다.

이 교장은 학생들에게 진실, 근면, 검소, 이 세 가지를 주지시켰다. 나를 속이지 않아야 남을 속이지 않을 수 있고, 성실해야 제 쓰임을 다할 수 있고, 검소해야 소중함을 알 수 있다는 말을 늘 덧붙였다고 한다. "똑똑함보다 중요한 게 바른 생활"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이 교장은 사회에 불만을 품고 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학생이 보일 때면 곧바로 집을 찾아가 바로잡았다고 강씨는 떠올렸다.
강씨는 이 교장을 '선생(先生)'으로 기억했다. 그는 "이선재 선생님이 저보다 앞서 살아가는 스승이었기에 제가 삶을 배우고 그 뒤를 조금이나마 밟을 수 있었다"며 "엄하게 가르치셨지만, 없는 상을 만들면서까지 학생들을 독려하던 분"이라고 했다. 이어 "어쩌면 제 인생을 결정지은 분일지도 모른다"고 읊조렸다.
강씨는 이 교장 아래에서 일성고등공민학교를 졸업하고, 검정고시로 대학에 입학했다. 이후 9급 공무원 시험에서 합격해 마포구청 공무원으로 일을 하다가 2017년에 안전행정국장(4급)으로 퇴직했다. 강씨는 "이 선생님처럼 사회에 득이 되는 사람이 되려고 공무원을 택했다"며 "선생님께 받은 혜택을 저도 돌려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퇴직 이후 10년 넘게 노인 무료 급식 봉사를 하며 여생을 보내는 중이다.

이 교장이 지켜온 만학도들의 공간은 이제 사라질지 모른다. 이 교장이 당장 2028년 2월까지만 학교를 운영하는 것으로 유언을 남겼다. 그리고 평생교육법은 학교·재단 법인만 평생교육 시설 설립 주체로 인정하고 있다. 설립자가 물러나면 설립 주체를 법인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뜻이다. 법인으로 전환하려면 시설과 재정 마련 등 여러 조건을 갖춰야 한다.

학교 측에서는 6월 국회전자청원에 '일성여중·고의 공공성 유지와 학습권, 교원 보호를 위한 평생교육법 개정 청원' 글을 올렸다. 하지만 동의기간인 30일 이내에 5만 명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서 청원은 그대로 종료됐다. 교사 등 일성여중고 구성원들은 공익재단 위탁 운영 등 공공형 전환을 교육당국에 요청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 이 교장이 70년 넘게 지켜온, 세상에 치이고 치여 학업을 미뤘던 여성들의 배움을 틔운 공간을 이어 나가는 건, 이제 남은 사람들의 몫이 됐다.
일성여중고 홈페이지에는 이런 인사말이 적혀 있다. '가난한 살림 때문에 또는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배움의 때를 놓친 여성들에게 참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부디 배움의 열차에 동승하셔서 아무에게도 말 못했던 답답함과 서러움을 훌훌 털어버리고 밝고 활기찬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남병진 기자 sou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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