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타워만 한 풍력발전기 10기…신안 앞바다 '바람 공장' 가보니[르포]

홍성효 2026. 9. 1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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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자은고교선착장을 떠난 배가 한 시간가량 바다를 달렸다.

바다 위 발전기는 설치한 뒤부터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된다.

바람이 약하면 발전량이 줄고 너무 강하면 발전기를 멈춰야 한다.

바람을 읽어 터빈을 제어하는 기술, 거대한 구조물을 운반할 항만과 설치선, 고장이 발생했을 때 바다로 나갈 정비 인력과 예비부품까지 맞물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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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은도서 배로 한 시간…높이 227m·블레이드 길이 97m
초속 3m에 가동하고 28m 넘으면 정지…바람 따라 각도·방향 조절
96MW에서 900MW로 확대 추진…유지보수·항만·공급망이 경쟁력

[아이뉴스24 홍성효 기자] 전남 신안군 자은고교선착장을 떠난 배가 한 시간가량 바다를 달렸다. 육지에서 약 9㎞ 떨어진 해역에 들어서자 수평선 위 작은 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배가 가까워질수록 점은 거대한 구조물로 바뀌었다. 해수면에서 블레이드 끝까지 높이 227m. 서울 남산서울타워와 불과 10m가량 차이 나는 풍력발전기 10기가 바다 위에 줄지어 서 있었다.

블레이드는 언뜻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길이 97m짜리 날개 세 장이 그리는 원의 지름은 약 200m에 달했다. 배가 발전기 아래로 다가가자 고개를 한껏 들어도 구조물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남해상풍력 1단지. [사진=한국풍력산업협회]

지난 9일 찾은 전남해상풍력 1단지는 국내 민간 주도 해상풍력 사업 가운데 최대 규모다. 지난해 5월 상업운전을 시작했으며, 9.6메가와트(MW)급 풍력발전기 10기로 총 96MW의 설비용량을 갖췄다.

현장에서 단지를 설명한 김진철 SK이노베이션 E&S 부사장은 “남산서울타워 높이가 236.7m이니 10m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터빈”이라고 말했다.

발전기 한 기의 블레이드 한 장은 무게가 44t에 이르고 타워는 600t이 넘는다. 규모만 보면 거대한 건축물에 가깝지만 실제로는 바람의 미세한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움직이는 정밀 기계다.

초속 3m에 돌기 시작해 28m 넘으면 멈춘다

거대한 블레이드가 바람이 불 때마다 무조건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곳 발전기는 풍속이 초속 3m에 도달하면 가동을 시작한다. 바람이 초속 12m로 강해지면 정격출력을 내고, 초속 28m를 넘어서면 설비 보호를 위해 운전을 멈춘다. 태풍처럼 바람이 지나치게 강할 때는 발전보다 안전이 우선이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가 달라지면 발전기가 스스로 자세를 바꾼다. 블레이드 각도를 조절하는 ‘피치 제어’와 터빈의 머리 부분인 나셀을 바람 방향으로 돌리는 '요 제어'가 자동으로 작동한다.

배 위에서 바라보자 터빈마다 블레이드 방향과 각도가 미세하게 달랐다. 같은 바다 위에 서 있어도 각 발전기가 받아들이는 바람은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풍속이 초속 12m에 이르러도 블레이드는 분당 약 9차례 회전한다. 육상에서 바라볼 때 느리게 보이는 이유다. 다만 블레이드 끝부분은 거대한 회전 반경을 따라 상당한 속도로 움직인다.

전남해상풍력 1단지에는 기어박스 없이 터빈의 회전력을 발전기로 직접 전달하는 직접구동 방식이 적용됐다. 기어박스 고장 가능성을 낮출 수 있지만 영구자석 등 원재료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 단점이다.

지난 9일 김진철 SK이노베이션 E&S 부사장이 전남해상풍력 1단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국풍력산업협회]

세우는 것보다 어려운 '바다 위 유지보수'

바다 위 발전기는 설치한 뒤부터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된다. 바람과 파도, 염분에 계속 노출되는 데다 고장이 나도 육상 발전기처럼 곧바로 장비와 인력을 투입하기 어렵다.

작업을 위해서는 기상 조건부터 살펴야 한다. 파도가 높거나 바람이 강하면 정비 인력이 발전기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 대형 부품을 교체하려면 전용 작업선과 이를 뒷받침할 항만도 필요하다.

블레이드와 나셀, 타워 등 수십~수백t에 이르는 구조물을 옮기고 보관하려면 아무 항만이나 이용할 수도 없다. 해상풍력 산업에서 항만과 설치선, 전문 인력이 터빈 기술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다.

전남해상풍력 1단지는 15년간 장기 유지보수 체계를 운영한다. 현장에는 약 10명의 인력이 상주하고 주요 예비부품도 미리 확보해 고장 발생에 대비한다.

김 부사장은 "대형 부품을 육상에서 운반하는 단계부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항만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해상풍력의 수익성은 발전기가 얼마나 큰 출력을 내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바람이 불 때 고장 없이 전기를 생산하고, 문제가 생기면 얼마나 빨리 복구하느냐가 실제 이용률을 좌우한다.

전남해상풍력 1단지에 있는 풍력발전기를 가까이서 본 모습. [사진=홍성효 기자]

앞 터빈이 바람 가리면 뒤쪽 발전량 줄어

현장에서 가장 자주 언급된 단어는 역시 ‘바람’이었다.

화력·가스발전은 연료 투입량을 조절해 발전량을 관리할 수 있지만 풍력발전은 자연조건에 의존한다. 바람이 약하면 발전량이 줄고 너무 강하면 발전기를 멈춰야 한다.

높이에 따라 풍속과 방향이 달라지는 ‘윈드시어’도 변수다. 블레이드 위쪽과 아래쪽에 서로 다른 세기의 바람이 불면 난류가 발생하고 터빈의 기계적 피로가 커질 수 있다.

발전기 배치도 중요하다. 앞쪽 터빈을 통과한 바람은 속도가 떨어지고 흐름도 불규칙해진다. 이 바람을 뒤쪽 터빈이 다시 받으면 발전량이 감소하는 ‘후류 효과’가 발생한다.

전남해상풍력 1단지는 이를 줄이기 위해 터빈 사이에 약 950m, 터빈 열과 열 사이에는 약 2.3㎞의 간격을 뒀다.

하지만 앞으로 조성할 2·3단지는 여러 사업자가 인접 해역을 함께 이용하면서 1단지보다 터빈 사이 간격이 좁아질 가능성이 있다. 바람 자체가 좋아도 터빈 배치에 따라 실제 이용률은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9.6MW에서 15MW로…터빈도 더 커진다

1단지에 설치된 터빈은 10MW급 플랫폼을 기반으로 출력을 9.6MW로 설정한 설비다. 향후 조성할 2·3단지에는 15MW급 터빈을 적용할 예정이다.

터빈이 커지면 같은 면적에서도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고 설치해야 할 터빈 수도 줄일 수 있다. 반면 블레이드와 타워, 하부구조물이 함께 커지기 때문에 이를 운반하고 설치할 선박과 항만도 더 큰 규모를 갖춰야 한다.

세계 풍력발전기 시장에서는 이미 18MW 이상의 대형 터빈이 개발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20MW를 훌쩍 넘는 초대형 모델도 등장했다. 국내에서도 15MW급 국산 터빈이 개발되고 있지만 아직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1단지 터빈이 설치된 해역의 평균 수심은 약 15m다. 해저 지반에 박아 터빈을 지탱하는 모노파일 하부구조물은 지점에 따라 길이가 40~60m에 달한다. 바다 위에서 보이는 타워보다 훨씬 깊은 곳까지 구조물이 이어져 있는 셈이다.

전남해상풍력 1단지. [사진=한국풍력산업협회]

파도 소리 뒤로 멀어진 10개의 ‘바다 발전소’

배가 터빈 가까이 접근하자 블레이드가 만드는 거대한 원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바람이 바뀔 때마다 날개의 각도가 미세하게 움직이고 나셀도 방향을 조절했다.

거대한 크기와 달리 기계음은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배 위에서는 터빈 소리보다 선체를 때리는 파도와 바람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귀항을 위해 배가 방향을 돌리자 발전기들은 다시 수평선 위의 작은 점으로 줄어들었다. 가까이에서는 고개를 젖혀야 끝이 보였던 구조물이 불과 몇 분 만에 바다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

전남해상풍력 사업자는 각각 399MW 규모의 2·3단지를 추가해 전체 설비용량을 약 900MW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현장에서 확인한 해상풍력은 단순히 바다에 큰 발전기를 세우는 사업이 아니었다. 바람을 읽어 터빈을 제어하는 기술, 거대한 구조물을 운반할 항만과 설치선, 고장이 발생했을 때 바다로 나갈 정비 인력과 예비부품까지 맞물려야 했다.

수평선 위에서 천천히 돌아가는 블레이드 뒤에는 발전기를 20년 넘게 멈추지 않고 돌리기 위한 거대한 산업 생태계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홍성효 기자(shhong0820@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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