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30여 곳서 단 한 곳으로…경주 팔우정 해장국거리의 쇠락

황기환 기자 2026. 9. 1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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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 정비·주차난·원도심 공동화 겹쳐…거리 입간판도 철거
게임회사 대표 내려놓은 조영익 씨, 가업 이어 향토음식 지켜
▲ 한 때 30여 곳이 성업 중이었던 경주 팔우정 해장국 거리에 현재는 한 곳만 남아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황기환 기자

경주시 팔우정로터리 일대,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해장국거리'를 알리던 대형 입간판이 최근 철거됐다. 1960년대부터 이어진 경주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거리가 공식적으로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APEC 정상회의 관련 거리 정비 일환이라지만, 70여 년 세월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아쉬움을 남겼다.

현재 이곳에 남아있는 해장국집은 단 한 곳뿐이다. 커다란 고분군 바로 옆, 붉은 벽돌 건물 1층에 자리한 '경주해장국'이다.

식당 안에 들어서자 차림표가 눈에 띈다. 단출하게 해장국과 선짓국 두 가지만을 1만 원에 팔고 있다. 쟁반에 담겨 나온 해장국은 콩나물과 멸치 육수 베이스에 메밀묵, 모자반, 표고버섯 등을 넣은 경주만의 독특한 향토 음식이다.

투박하지만 깊은 국물 맛은 과거 이른 새벽 완행열차 비둘기호 여행객과 상인, 노동자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그 맛 그대로다.

현재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조영익 사장(54)은 "제일 많을 때는 이 골목에 30곳 가까이 식당이 있었다"면서 "새벽 기차 타고 온 전국구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 였다"고 어머니로부터 들은 과거를 회상했다.

6·25 전쟁 직후 우시장 인근에서 처음 장사를 시작한 노부부의 대를 이어, 조 사장의 어머니가 1974년 지금의 자리로 식당을 옮겨왔다.

이후 외숙모가 운영하던 것을 지난해 연말 조 사장이 전수받아 명맥을 잇고 있다. 잘나가던 게임 회사 대표 자리까지 내려놓고 앞치마를 두른 이유는 오직 하나, 가업이자 동네의 역사가 이대로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때 불야성을 이뤘던 해장국거리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결정적 이유는 2007년 시작된 인근 황오동 쪽샘지구 고분군 정비사업이었다. 식당들이 하나둘 시의 보상을 받고 이곳을 떠나는 가운데, 2010년께 경주시의 갑작스러운 행정 조치가 직격탄이 됐다. 가로수를 베어내고 각 식당 앞 전용 주차 공간을 없앤 뒤 공영주차장과 안전지대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조 사장은 "식당 앞 주차장이 사라지자 지나가던 손님들이 차를 댈 곳이 없어 그냥 스쳐 가기 시작하면서 하루 매출이 크게 급감했다" 며 당시의 뼈아픈 상황을 다시 설명했다.

여기에 통근열차 폐지 등 교통 환경의 변화와 신도시 개발로 인한 원도심 공동화 현상까지 겹치며 사람들의 발길은 더욱 뜸해졌다. 결정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치면서 임대료조차 낼 수 없게 된 식당들은 끝내 백기를 들었다. 고령의 식당 주인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거나 무릎 관절 등 건강 악화로 주걱을 놓으면서, 빈 상가들은 시의 매입 후 철거 수순을 밟았다.

홀로 남은 조 사장의 어깨는 무겁다. 시에서는 남은 상가마저 철거하고 완전히 공원화하려는 기류가 흐르지만, 그는 쉽게 자리를 낼 생각이 없다.

최근 넷플릭스 등 방송 매체에 소개되면서 젊은 층과 옛 추억을 잊지 못해 찾아오는 단골들의 발길이 조금씩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 김모(70대) 씨는 "젊은 시절 새벽에 일을 나가기 전 따뜻한 해장국 한 그릇을 먹고 힘을 냈던 곳"이라면서 "서민들이 허기를 채우고 애환을 나누던 거리가 사라질 위기라니 마음 한편이 허전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