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남편 피해 온 영도… 깡깡이질로 배와 삶을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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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이런 시기에 거칠고 험한 깡깡이질은 어쩔 수 없이 삶의 벼랑으로 내몰린 여성들의 몫이었다.
반장 만선(심소영)을 비롯해 길자(임윤진), 부연(오하조) 등 깡깡이 멤버들은 병든 남편을 위해, 어린 형제를 위해, 또는 혈혈단신인 자신을 위해 힘든 노동을 기꺼이 감내하는 이들이다.
송엽은 깡깡이의 막내가 되어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은 선배들의 사랑을 받으며 조금씩 말문을 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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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고쳐서 나가는 곳'
편집자주
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오랜 항해를 마치고 항구로 돌아온 배는 선체가 녹슬고, 따개비와 홍합, 미역과 파래 같은 것들이 들러붙어 있다. 배가 다시 바다로 나가려면 이 이물질을 긁어내고 상한 선체를 손봐야 한다. 배 옆에 매달린 좁은 발판에 올라 망치로 녹을 두드려 깨부수고, 들러붙은 것들을 긁어내고, 사포로 철판을 다듬는 일. '깡깡이질'이라 불린 이 고된 노동은 1970년대 부산 영도에서 주로 여성들이 맡았다. 좁은 발판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녹을 벗겨내던 이들을 '깡깡이 아지매'라고 불렀다.
국립정동극장 '창작ing' 연극 부문 선정작인 '고쳐서 나가는 곳'(박주영 작·연출)은 1970년대 중후반 부산 영도에서 일하는 깡깡이 여성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당시에는 여성의 사회 활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었고, 남편을 내조하며 가정을 건사하는 삶이 여성의 이상적인 덕목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이런 시기에 거칠고 험한 깡깡이질은 어쩔 수 없이 삶의 벼랑으로 내몰린 여성들의 몫이었다. 위험하고 고된 일임에도 여성의 노동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됐다. 여성 노동자로서는 높은 임금을 받았지만, 작품 속 표현을 빌리자면 "여 앉아서 커피만 묵는" 사무직 남성보다 보수가 적었다. 작품은 여성 노동의 열악한 현실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깡깡이 아지매들의 직업적 자부심과 여성 연대를 통해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희망을 보여준다.

작품은 깡깡이 노동자 그룹인 '청락부'에 송엽(정제이)이 "나도 깡깡이 할래요"라며 문을 두드리면서 시작된다. 송엽은 거친 세상 풍파에 시달려 말하는 법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고아인 그는 열세 살부터 식모살이를 했다. 어린 나이에 자신을 살갑게 대하는 남자를 만나 살림을 차렸지만, 남편이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사고에 사로잡힌 놈팡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가장의 역할은 하지 않으면서 권위만 내세우고, 도박에 손을 대고 손찌검도 서슴지 않는 남편을 피해 무작정 집을 나왔다. 그렇게 흘러 흘러 영도에 이르렀다. 과거의 상처로 말을 잃고 밤낮없이 식당 일을 하던 송엽이 세상에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내는 깡깡이들을 보고 입을 연다. "나도 깡깡이 할래요."
반장 만선(심소영)을 비롯해 길자(임윤진), 부연(오하조) 등 깡깡이 멤버들은 병든 남편을 위해, 어린 형제를 위해, 또는 혈혈단신인 자신을 위해 힘든 노동을 기꺼이 감내하는 이들이다. 현실에서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지만 작업복을 갖춰 입고 망치를 들면 누구보다 당당한 일꾼으로 변신한다. 회사 측에 박한 임금에 대해 당당하게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빠듯하게 주어진 시간 안에 맡은 일을 말끔하게 처리한다. 일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그들의 힘찬 망치질은 오랜 항해에 멍들고 상한 배를 고쳐 다시 바다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송엽은 깡깡이의 막내가 되어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은 선배들의 사랑을 받으며 조금씩 말문을 틔운다. 두꺼운 녹을 망치로 털어내고 질기게 붙은 따개비를 긁어내며 조금씩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간다. 은근슬쩍 짐을 넘기는 길자 언니에게 "저도 무거워요"라며 거절하고, 눈치 없는 언니의 허세에는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라는 직언도 망설이지 않는다.

그러나 남편이 그를 찾아오면서 되찾았던 말문은 다시 막히고 만다. 아무리 당찬 언니들이라도 당사자인 송엽이 침묵하고, 남편이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며 아내를 데려가겠다는 주장을 반박할 명분이 없다. 그저 막내가 용기를 내 자신의 의사를 밝혀주기를 기다릴 뿐이다.
작품은 1970년대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노동 현실과 삶 깊숙이 자리한 가부장적 사고 등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지만, 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여성 연대를 통한 회복이다. 지치고 망가진 배를 두드리고 다듬어 다시 바다로 내보내는 언니들은 말을 잃은 송엽이 자신을 억압하던 남편에게서 멀리 떠날 수 있도록 돕는다.
다시 말을 잃었던 송엽은 마침내 영도를 떠나며 용기 내 외친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들의 힘겨운 연대가 따뜻하고 뭉클한 여운을 남기며 공연은 막을 내린다. 언젠가 다시 네 명의 깡깡이 언니들 속에서 활짝 웃는 송엽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면서. 공연은 20일까지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이어진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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