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따라오며 흐르는 침묵 [황정은·허태임 교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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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화양읍에 사는 지인을 만나러 갔다가 한적한 동네에 서점이 있어서 들렀습니다. 서점 안으로 곧장 들어가지 않고 마당의 식물을 먼저 만났습니다. 이 특별한 덩굴식물을 뜰 안에 들인 이의 안목이 남다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님께서 안미옥 시인의 산문집과 함께 말씀하신 '최초의 돌봄'에 저도 많이 공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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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14일
청도 화양읍에 사는 지인을 만나러 갔다가 한적한 동네에 서점이 있어서 들렀습니다. 서점 안으로 곧장 들어가지 않고 마당의 식물을 먼저 만났습니다. 담을 따라 제법 무성하게 퍼진 푼지나무가 있었습니다. 이 특별한 덩굴식물을 뜰 안에 들인 이의 안목이 남다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상용 덩굴식물로는 대체로 담쟁이덩굴과 붉은인동, 능소화와 덩굴장미, 클레마티스가 익숙하니까요. 이들 식물은 아주 먼 과거부터 민가 주변에 심었거나, 최근 정원을 가꾸는 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며 꽃집과 농장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푼지나무는 자연에서 더 쉽게 볼 수 있어요. 아직은 야생의 식물입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꽤 오래 산 것 같은데 언제부터였을까. 서점 건물이 들어서기 전부터 이 자리에 버티고 섰던 친구이려나. 뽑히거나 잘려 나갈 위기를 가까스로 면한 거겠지.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은 걸까. 그러고 둘러보니 당단풍나무 두 그루를 베지 않고 그 나무를 피해 서점의 별관을 비스듬히 지은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단풍나무는 푸르고 둥근 수관(樹冠)으로 각진 건물을 꽤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반대로 최근에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오죽은 이식 후 몸살을 앓았는지, 어떤 병에 걸려 크게 아픈 건지 비슬비슬해 보였습니다. 꽃이 핀 개체도 있었습니다. 오죽을 포함해 대나무류는 꽃이 피고 나면 죽습니다. 일생에 딱 한 번 열매를 맺겠다는 목표를 ‘개화’라는 과정을 통해 구현하고 나면 저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곧게 선 채로 말라 죽습니다. 생물학적으로는 나무가 아니라 ‘볏과’에 속하는 초본(草本)이라 그렇습니다.
서점 내부는 천장이 무척 높았습니다. 대나무처럼 키가 큰 책장이 여러 개 있는데 그중 가운데 책장의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작가님의 소설 〈디디의 우산〉이 표지가 정면으로 보이도록 세워져 있었습니다. 꺼내 펼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작정 펼쳤는데 22쪽과 23쪽이었습니다. 얼마 전 우리가 편지에서 나눈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에 대한 묘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온전한 인정과 용납, 이해와 수용은 아니었습니다. 제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지막하게 읽어보았습니다.
“그것들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dd는 잠시 외출한 것 같았다. 어딘가에 틀림없이 있는 것 같았고, 그래서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 혹은 며칠 뒤, 아무렇지 않게 이 공간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그것은 언제일까. 지금이 아니고 아직은 아니지만 다음에서 다음으로 건너가는 지금이자 다음. d는 매 순간 벅차게 그 순간을 실감했고 매 순간 그 실감을 배반당했다(디디의 우산, 창비, 23쪽).”
주인공 d가 dd를 잃은 직후의 상태를 작가님은 쓰셨지요. dd를 만나고서야 d는 작가님의 표현처럼 인간이 “사랑을 가진”다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배웠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dd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작가님께서 이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이 궁금해졌습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게 죽음이라지만 그것을 맞이하는 과정은 공평하지 않을 때가 있으니까요. 어쩌면 이러한 종류의 불공평을 알리고 싶었던 걸까. 궁금해졌습니다. 뜬금없는 고백입니다만, 저는 이 소설을 오래 좋아하고 있습니다.
2026년 7월8일
작가님의 편지를 읽었습니다. 작가님께서 안미옥 시인의 산문집과 함께 말씀하신 ‘최초의 돌봄’에 저도 많이 공감했습니다. 작가님처럼 제가 경험한 맨 처음의 보살핌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제 앞으로 할머니의 얼굴이 크고도 동그랗게 떠올랐습니다.
저는 몇 번을 다시 읽었습니다. 꺼내기 어려웠을, 작가님이 어리고 돌봄이 필요했던 시절 ‘보호자’와의 관계에 대해 적어주신 부분 말입니다. 읽을 때마다 다른 방식으로 마음이 여러 번 아팠습니다. 그리고 다시 몇 번을 읽으면서 또 속상했습니다.
그 문장에 제 손을 가만히 대보았습니다. 제 손안의 온기가 작가님에게 ‘따뜻’하게 도착하기를 바라면서요. 회복될 수 있기를, 복원이 가능하기를 기도하면서요.
복원이라는 것을 인간의 기술로 완벽히 해낼 수 있을까요. 아마도 어려울 것입니다.
복원에 대해 저는 거의 매일 생각합니다. 훼손이 있어야 가능한, 그 훼손의 원인을 찾아야 하는, 잃고 나서야 잃기 전의 가치를 전보다 더 높이 평가하게 되는, 여러 가지가 얽혀 있어 갈피를 잡기 까다로운, 그러한 복원을요. 제가 하는 일이 그것이니까요. 훼손된 숲과 산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한 연구. 작가님께서 알고 있듯이 수목원에서 저는 그 일을 맡고 있습니다.
복원이 찾아가기를 기도합니다
훼손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지요. 깨진 유리잔을 원래대로 복구하기 위해 모든 파편을 찾아내 다시 붙일지라도 깨지기 전의 모습은 결코 아닌 것처럼요. 출토 유물을 복원하는 분야에서도 그렇지요. 땅속에 묻힌 깨진 토기의 조각을 운이 좋게 모두 찾아 이어 붙이더라도 붙인 흔적과 그 균열은 지울 수 없습니다. 틈은 어떻게든 생기고야 맙니다. 그 틈이 벌어져 또 다른 파괴가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복원 이후 모니터링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겠지요. 그 금이 더 번지지 않도록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보수도 합니다. 그럼에도 손상 이전의 토기가 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자연에서는 더욱 어려워요. 사람의 마음은 더더욱 어렵겠지요. 계속해서 노력한다고 완벽한 복원을 이룰 수 있을까요? 복원은 결과가 될 수 있는 범주의 일일까요? 인간의 능력 밖에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우리가 앞의 편지에서 나눴듯이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내가 낫기 위한 “계속되는 노력”이 제가 하는 일을 비롯해 다양한 영역에서 적용되는 복원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그럼에도 저는 작가님이 복원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기였던” 작가님이 “바닥에 내던”져지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직접 데려오지 못하는 저 복원이라는 것이 언젠가 작가님을 찾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어딘가로부터 계속해서 도착하는 돌봄으로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2026년 7월10일
가끔 제가 근무하는 수목원에서 영화를 봅니다. 경북 봉화의 지역 주민들을 초대해서 수목원 야외 잔디밭에 스크린을 펼칠 때가 있거든요. 오늘의 상영회는 밖이 아니라 수목원 방문자센터 안에 있는 대강당이었습니다. 요 며칠 비가 계속 오락가락해서 그걸 대비하는 차원인가 보다 했습니다. 바깥에서 보는 영화가 운치가 있는 건 맞지만 음향이 고르지 못할 때가 많다며, 오늘 영화만큼은 노래에 귀를 기울여야 하니 실내가 적합하다고 담당자는 말합니다. 상영작은 〈나무의 노래〉였습니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과학자의 길을 걸어온 한 여인이 니카라과 밀림에서 100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 있는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1939년생인 그는 놀랍게도 조선의 마지막 공주로 태어났다 합니다. 여의도 면적의 일곱 배가 넘는 밀림을 사들여 훼손된 땅에 그 많은 나무를 심었고 지금도 심고 있다고 해요. 환갑 무렵 찾아온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아무도 모르게 지구에 산소를 만들어주는 것이 소원”이라 말하면서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그 ‘노래’는 다름 아닌 침묵이라는 것을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중 하나인 커다란 나무가 전하는 깊고 묵직한 침묵. 영화가 끝난 직후의 여운은 제법 진했습니다. 엔딩크레디트가 다 올라간 뒤에도 저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얼마간 더 고요해지고 싶었습니다.
상영을 주선한 담당 부서의 진행으로 감독과 관객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당장 뛰쳐나가서 나무부터 심고 싶어요, 지구와 다음 세대에 많이 미안한 마음입니다, 참여와 실천으로 더 나아질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같은 고백과 회심, 때로는 희망의 대화들이 오갔습니다.
정성이 가득한 이 영화를 저는 이웃들과 볼 수 있어서 무엇보다 좋았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영화를 보는 일이 잘 없기 때문입니다. 직접 키운 푸성귀와 사과와 청계의 알 등을 먹어보라며 건네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노인인, 한사코 거절해도 결국 제 품에 안겨줘야 직성이 풀리는, 저의 다정한 이웃들이 객석에 계셨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여쭙고 싶어요. 작가님은 가장 최근에 무슨 영화를 누구와 보셨나요?
2026년 7월17일
모처럼 잠을 좀 푹 잤습니다. 7월 초에 이탈리아에서 돌아와 시차 적응이 안 된 채로 출근하고 출장 다니느라 몸이 다소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출장지에서 짬을 내서 만난, 그리웠던 나무와 숲 덕분입니다.
지난 화요일, 그러니까 음력 유월 초하루 새벽에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 숲에서 기운을 좀 얻었어요.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우중월정(雨中月精), 설중오대(雪中五臺)’라는 낭만적인 말이 있지요? 비 오는 정취는 월정사가 좋고 눈 오는 설경은 오대산 자락이 운치가 있다는 뜻이지요. 비가 내려서 다소 고즈넉한 산사에서 새벽을 맞이했습니다. 사실 저는 해가 충분히 뜰 때까지 더 잘 계획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두세 시간 더 잘 수 있는 여유와 더 자겠다는 의지가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무지 더 잘 수가 없었습니다. 새벽 4시 이전부터 목탁과 염불과 무언가를 알리기 위한 범종, 그 밖의 괘종 소리가 순서대로 이어졌으니까요. 심지어 까마귀마저 까악까악 우짖으며 창호문 밖에서 저를 깨웠습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월정사는 템플스테이와 단기 출가학교와 승가대학이 있어서 승려와 수많은 신자, 관광객이 오가는 곳이니 다른 절보다 사람이 많은 곳이라는 인식이 제게는 있습니다. 다행히 그날은 비가 와서 그런지 평소보다 한적했습니다. 비를 맞으며 새벽 숲길을 걸었습니다. 몸의 감각들이 하나둘 깨어나더니 이내 상쾌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어떤 지점에서는 맨발로 걷기도 했습니다. 수행하는 스님과 절을 찾은 불자와 일반 관광객을 위해서인지 그 길 위에는 맨발로 걷을 수 있도록 평탄하게 다진 흙길이 있고, 발을 씻을 수 있게 매만진 도랑도 있었습니다.
길을 걸으며 떠올려보니 제가 오대산을 처음 와본 건 20여 년 전 당일치기 패키지여행을 통해서입니다. 수능시험을 보고 여유가 생긴 날 동대구역 근처에서 출발한 관광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이 월정사였어요. 월정사에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으로 그곳을 이미지로만 그려본 저는, 그때만 해도 월정사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 절인지도 몰랐습니다. 월정사를 품은 오대산 역시 제대로 모를 때였지요.
버스는 고속도로를 내달리다 어느 휴게소에서 한 번 쉬었고, 다시 얼마를 달려 톨게이트를 빠져나온 후 고불고불한 길을 더 가서야 월정사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네 시간은 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버스에는 사찰 인근의 스키장을 선택한 팀과 월정사 자유투어팀이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집결 시간에 맞춰 다시 버스로 돌아오면 되는 방식이었어요. 저는 무리에서 서둘러 이탈한 후 주차장에서 월정사 쪽으로 눈 내린 전나무 숲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트인 길 중간중간에 설 때면 눈 덮인 오대산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스키장 또한 저 산의 일부려나. 아무래도 그럴 테지. 혼잣말로 묻고 대답도 해보면서요.
시험을 끝낸 직후라 홀가분한 마음이 유독 컸던 탓일까요. 전나무와 전나무 사이에서 오대산을 바라볼 때 저는 심장이 마치 그 산처럼 커지고 넓어지는 희한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때 제 안에 들어찼던 규정할 수 없는 경이로움과 감동에 겨운 마음은 성인이 된 이후 제가 월정사와 오대산을 겨울에 찾아가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우중의 사찰 숲길을 이번에 걸으며 새삼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대산과 월정사와 전나무는 세 개의 명사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이름이자 장소 같다고요. 오대산에 들어가 보지 않아도 그 어귀에서 우리를 압도하는 건 전나무 고목과 월정사의 오래된 사찰과 암자들일 테지요. 전나무를 낳아 키운 건 오대산일 것이고 지금의 큰 나무로 버틸 수 있도록 지킨 배경에는 사찰의 기여가 분명 있었을 테니까요. 이제 저는 월정사의 정확한 위치와 이 절을 품고 있는 오대산과 그곳의 전나무가 얼마나 멋진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다 연결되어 있다고 가늠합니다.
작가님께서 수목원에 왔을 때 고산습원 안쪽의 깊은 숲을 거닐며 제가 이런 말을 꺼냈지요. 나무도 사람처럼 제 명만큼 살고 죽는 것 같다고요. 나무마다 운명이 있을 것이라고요. 제가 뭐라고 거기에 개입해서 어떤 나무를 지키고 돌보겠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요. 처음에는 할 수 있을 거라 여겼으나 실제로 겪어보니 나무에게는 쓸데없고 과한 참견일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고요. 나무는 저보다 나은 생명체라 알아서 처신을 잘하므로 그들이 아니라 저 자신을 더욱 살필 줄 알아야 한다는, 일종의 성찰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말로 그 대화가 끝났던 것 같아요. 말하는 저와 듣는 작가님, 우리가 함께 하하 웃었던 것도 같고요.
기적과 같은 월정사 전나무 숲
사람보다 나무가 훨씬 오래 살기 때문에 그들이 죽는 현장을 우리는 잘 볼 수 없습니다. 그에 비해 사람 손에 잘려서 죽게 되거나 죽은 나무는 너무 쉽게 봅니다. 오대산 월정사 나무들의 현재 평균 수령은 100살 정도라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수백 살 된 나무는 별로 없습니다. 일제강점기를 통과하며 엄청난 남벌이 있었으니까요.
광복 후에도 사찰림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권을 도로 찾은 이후에는 비극적인 전쟁에 직접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남과 북의 대치로 폐허가 된 땅과 황폐해진 숲이 많이 생겼습니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전쟁의 시간을 통과하고도 월정사의 전나무 숲을 지금의 모습으로 지킨 것은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축구장 아홉 배에 달하는 숲에서 1000여 그루가 넘는 전나무가 지금 생존해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과거를 회상하며 미래를 희망하다가도 작가님, 저는 밀려오는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환경은 전나무를 포함한 고산의 침엽수를 전처럼 지켜내지 못하는 쪽으로 자꾸만 바뀌고 있잖아요. 인간이 삼가는 태도 없이 그간 제멋대로 해온 여러 활동으로 기후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는 현실을 우리는 더는 외면할 수 없습니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의 나무들도 언젠가는 죽을 테죠. 그 임종의 시간이 더 빠르게 찾아올 수 있습니다. 지금의 인류는 그 심각성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을까요. 모든 국가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고르게 노력하고 있을까요. 200만 종(種)이 넘는 생물을 품고 사는 지구가 과연 인간이라는 한 종에게만 겪어보지 못한 변동에 대처할 특혜를 줄까요.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무엇에도 장담할 수가 없는 요즘입니다. 전쟁과 지진, 산불과 홍수의 피해 소식을 보고 듣는 것이 참담하고 버거운 나날입니다.
그런 우울감 속에서도 저는 월정사 숲길에서 만난 전나무들로부터 기운을 받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잠을 덜 자고도 숲길을 걸으면서, 걷고 나서 개운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며칠 전 수목원에서 본 영화에서 나무가 부른 그 노래를 다시 듣는 묘한 기시감도 있었습니다. 나무들은 저마다의 자리에 서서 곧고 푸르고 웅장했으며, 그들의 정적은 계속해서 저를 따라오며 흘렀으니까요.
목요일에는 군산 하제마을에 사는 팽나무를 만났습니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저는 들떴습니다. 그를 목적지로 찍고 가는 길이 몹시 설렜습니다. 사연이 있는 이 나무를 작가님도 알고 계실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몇 가지 이유로 꽤 유명한 나무이기도 해서요. 이 나무 얘기를 시작하려고 보니 앞에서 화요일의 전나무 이야기가 너무 길었네요. 더 보태면 안 될 것 같아 다음 편지에서 마저 전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줄입니다.
춘양에서, 태임
허태임 (식물분류학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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