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신문 칼럼 걱정"…'달팽이 박사' 권오길 교수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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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과학으로 대중적 글쓰기를 시도한 1세대 지식인으로 꼽히는 '달팽이 박사' 권오길(權伍吉) 강원대 생명과학과 명예교수가 11일 오후 7시4분께 한림대춘천성심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12일 전했다.
2015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제가 박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구독하던 미국 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서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달팽이 사진을 보게 됐어요. 눈이 번쩍하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이 쓰던 말처럼 딱 꽂혔어요."라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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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어려운 과학으로 대중적 글쓰기를 시도한 1세대 지식인으로 꼽히는 '달팽이 박사' 권오길(權伍吉) 강원대 생명과학과 명예교수가 11일 오후 7시4분께 한림대춘천성심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12일 전했다. 향년 86세.
1940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고인은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중앙대 대학원에서 생물학과 박사 학위를 받았다. 수도여고, 경기고, 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1981∼2005년 강원대 생물학과에서 강단에 섰다.
박사 과정을 준비할 때 본 달팽이 사진 때문에 인생이 바뀌었다. 2015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제가 박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구독하던 미국 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서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달팽이 사진을 보게 됐어요. 눈이 번쩍하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이 쓰던 말처럼 딱 꽂혔어요."라고 회상했다. 이후 전국 곳곳을 다니며 달팽이를 채집했다. 그렇게 평생 정리한 달팽이 표본은 남한 110여종, 북한 것까지 120종에 이른다. 현장 조사를 갔던 거문도와 부산에선 간첩 신고를 당하기도 했다. '한국동식물도감(동물편 연체동물Ⅰ)'을 집필했다. '달팽이 박사'(Dr. snail)라는 별명이 붙었다.
읽기 쉬운 과학책을 쓰겠다며 '과학 에세이' 장르를 개척했다. 서울사대부고 제자인 이원중 지성사 대표의 제안을 받고 20일 만에 쓴 책 '꿈꾸는 달팽이'(1994)를 시작으로 '인체 기행', '생물의 죽살이', '개눈과 틀니', '과학비빔밥' 등 50여권 이상을 펴냈다. 2024년에 나온 '기생일까? 공생일까?:더불어 사는 생물'이 마지막 신간이었다. 책에 고유어(토박이말)를 많이 쓴다고 하여 '과학계의 김유정'이라 불리기도 했다.
2013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자연과 같이하는 시간은 늘 더없이 행복하다"면서 "호기심이 없이는 자연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심부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식이부지기미'(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마음이 가지 않으면 호기심도 없습니다. 호기심이 있어야 뭘 봐도 예사로 보지 않고 가까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마누라가 저보고 '철부지'라고 하는데 과학자는 철부지가 되어야 합니다. 호기심과 동심, 시심(詩心), 과학심은 모두 같습니다."고도 했다.
작고하기 직전까지 신문 칼럼을 썼다. 1994년부터 강원일보에 쓴 전국 신문 최장기 신문칼럼인 '생물이야기'는 지난해 9월3일자 지면에 실린 1284회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까지 이어졌다. 중간에 '교수신문'과 '월간중앙'에도 칼럼을 실었다.
강원도문화상 학술상(2000),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2002), 대한민국 과학문화상(2003), 동곡상 교육학술 부문(2016) 등을 받았다. 2009년 연합뉴스 인터뷰에선 "은사인 김준민 선생님이 93세에 책을 쓰셨어요. 이원중 대표와 그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선생님 기록을 깨야겠지.' 했습니다. 그럼 앞으로 25년 정도 더 쓸 수 있지 않겠어요?"라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아들 권민석씨는 "작년 이맘때는 이미 뇌출혈을 일으킨 상태였는데도 '독수리 타법'으로 한 글자 한 글자 강원일보 칼럼을 쓰셨다"며 "이후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면서도 '강원일보에 보낼 칼럼을 미리 써놓은 게 5편밖에 안 남았다. 더 써야 한다'며 컴퓨터를 가져오라고 성화셨다"고 말했다. 또 "지금까지 마라톤 뛰듯이 사셨는데 이제 골인 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속도를 줄이고 좀 쉬시라고 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도 했다. 유족은 부인 심웅야씨와 1남2녀(권혜성·권효남·권민석) 등이 있다. 빈소는 강원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 발인 14일 오전 8시30분, 장지 춘천 천주교부활성당. ☎ 033-254-5611
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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