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공식 잃어버린 ‘영화 명가’ CJ ENM, ‘대작’에 승부수 던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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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CJ ENM의 영화 라인업은 곧 한국 영화의 흥행 공식과 다름없었다. 《명량》 《광해, 왕이 된 남자》 《베테랑》 《극한직업》 《기생충》 등 한국 영화사를 대표하는 굵직한 작품들이 CJ ENM의 손에서 나왔다.
대작 흥행 실패가 이어지면서 '영화 철수설'까지 흘러나왔으나, CJ ENM은 이를 부인했다.
업계도 CJ ENM의 하반기 성적이 한 배급사의 흥행 여부를 넘어 한국 영화시장의 활성화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라인업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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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 《국제시장》 등 검증된 IP·감독 작품에 ‘선택과 집중’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한때 CJ ENM의 영화 라인업은 곧 한국 영화의 흥행 공식과 다름없었다. 《명량》 《광해, 왕이 된 남자》 《베테랑》 《극한직업》 《기생충》 등 한국 영화사를 대표하는 굵직한 작품들이 CJ ENM의 손에서 나왔다. 그러나 투자·배급 시장을 이끌었던 '큰손'의 공식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흔들렸다. 극장 시장이 회복세로 돌아선 이후에도 흥행작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고, 한때 극장가를 주도했던 존재감도 점차 희미해졌다.
이제 CJ ENM은 다작에서 벗어나 검증된 IP와 감독의 작품에 투자를 집중하며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전략을 택했다. 추석 연휴 개봉을 앞둔 《타짜: 벨제붑의 노래》를 비롯해, 하반기 출격을 대기하고 있는 《실낙원》 《국제시장2》 등은 CJ ENM이 '영화 명가'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를 보여줄 결정적 장면이 될 전망이다.

상반기 극장가에서 보이지 않는 그 이름
영화진흥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2026 상반기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는 극장가가 되살아나는 흐름 속에서도 CJ ENM의 입지가 얼마나 좁아졌는지를 보여준다. 올 상반기 극장가 매출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94% 이상을 회복했지만, 활황을 맞은 극장가에서 CJ ENM의 이름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올 상반기 극장가의 성장을 견인한 주역은 《왕과 사는 남자》로, 1690만 명 가까이 관객을 모은 이 영화의 배급사는 쇼박스다. 쇼박스는 매출액 2814억원, 점유율 48.6%로 전체 영화 배급사 사이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CJ ENM의 매출은 57억원으로 전체의 1%에 불과했고, 관객 수는 61만 명으로 1.1%에 그쳤다. 주요 배급사 중 10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상영작 기준으로도 한국·외국 영화를 통틀어 5위 내에 들지 못했다.
과거 CJ ENM이 '명가'로 불렸던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2012년 12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이어 2014년 《명량》은 역대 흥행 1위 기록(1761만 명)을 썼고, 2015년에는 《베테랑》이 1341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정점을 찍은 시기는 《극한직업》(1626만 명)과 《기생충》(1031만 명)이 개봉된 2019년이다. 《기생충》은 미국 아카데미 4개 부문 수상이라는 이례적 성과도 달성했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쉽지 않았다. 팬데믹 시기 대작들의 잇단 흥행 실패가 부진을 키웠다. 《외계+인》 1부의 경우 손익분기점이 730만 명이었지만 154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고, 28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더 문》의 관객 수는 손익분기점(600만 명)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51만 명에 불과했다. 대작 흥행 실패가 이어지면서 '영화 철수설'까지 흘러나왔으나, CJ ENM은 이를 부인했다.
다행히 2024년 《베테랑2》가 손익분기점을 훌쩍 뛰어넘으면서 희망의 불씨가 살아나는 듯했다. 당시 증권가에서는 "영화시장이 정상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주요 투자 영화의 흥행이 실패했다"며 "《베테랑2》와 《하얼빈》 등의 개봉으로 하반기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3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하얼빈》은 결국 손익분기점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듬해 8월 개봉한 《악마가 이사왔다》는 손익분기점(170만 명)에 한참 못 미치는 43만 명으로 막을 내렸고, 같은 해 9월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 관객 수는 294만 명에 머물렀다. 해외 선판매 수익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겼으나, 관객 동원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산업 전체가 휘청이던 와중에 대작 흥행이 참패하면서 사업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 됐다. 투자팀에서 문제를 책임진 경우도 있는 것으로 들었다"며 "상대적으로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하는데, 기존 감독들의 이름값만 믿고 게으르게 군 점은 반성할 지점이다. 이 흐름 속에서 쇼박스는 발 빠르고 가볍게 시장의 빈틈을 잘 노렸다"고 평가했다.

입증된 IP로 하반기 승부수…통할까
다작의 공식을 버린 CJ ENM이 취한 전략은 '확실한 작품'에 베팅하는 것이다. 주목도가 높은 대작이거나, 유명한 감독의 작품, 검증된 시리즈물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다작의 경우 편성 면에서는 유연하지만 손실 관리가 어렵다. 작품 수를 줄여 투자 효율과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지만, 라인업이 축소된 만큼 개별 작품의 흥행 여부가 실적에 미치는 영향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올 하반기는 전략의 성패와 영화 배급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중대 시점이다. 특히 CJ ENM은 대형 영화를 하반기에 집중 배치한 상황이다. 추석 연휴라는 대목이 먼저 다가오는 만큼, 성공한 지식재산권(IP)이 실제로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도 CJ ENM의 하반기 성적이 한 배급사의 흥행 여부를 넘어 한국 영화시장의 활성화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라인업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우선 9월23일 《타짜: 벨제붑의 노래》가 개봉한다. 20년간 이어진 《타짜》 IP의 마지막 작품으로 최국희 감독이 연출하고 변요한이 주연을 맡았다. 원작자 허영만 화백이 가장 애정을 드러낸 시리즈로 알려졌다. 하반기 개봉을 앞둔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2》는 2014년 1426만 관객을 동원한 전작의 계보를 잇는 작품으로, 세대를 아우르는 가족 서사를 통해 관객들을 불러들일 예정이다. 역량이 검증된 감독의 작품을 배치한 것도 눈에 띈다. 《부산행》 《군체》 등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의 신작 《실낙원》은 10월21일 개봉한다. 앞서 토론토국제영화제 공식 상영 4회 차, 약 2300석을 매진시킨 작품인 만큼 국내 관객 반응에 대한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멜로부터 사극까지…쇼박스는 극장가에서 '독주'
올 상반기 한국 극장가에서 독주한 배급사의 이름은 쇼박스다. 쇼박스의 상반기 매출액은 2814억원으로 상반기 전체 극장 매출(5790억원)의 절반에 육박했다. 《만약에 우리》 《왕과 사는 남자》 《살목지》 《군체》 등 배급한 4편의 영화가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장르도 멜로, 사극, 공포, 좀비물까지 다양했다. 대작 한 편의 우연한 흥행에 기대기보다 여러 작품에서 고르게 성과를 내면서 상반기 배급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갔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특히 《왕과 사는 남자》는 2024년 《범죄도시4》 이후 약 2년 만의 '1000만 영화'다. 매출액 기준 역대 박스오피스 1위, 관객 수 기준으로 《명량》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김성희 영화진흥위원회 정책본부 정책개발팀 객원연구원은 "쇼박스는 배급작 4편을 모두 흥행시키며 2~6월까지 5개월 연속 배급사 순위 1위를 기록했다"며 "《왕과 사는 남자》는 전 연령대의 고른 지지와 개봉작 감소에 따른 경쟁작 부족으로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기간도 59일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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