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엔트로피 지나치게 낮아지면 우울증과 강박증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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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용어 가운데 몇몇은 어떤 계기로 대중에게 익숙해지고, 때로는 비과학 영역으로 넘어가 어떤 현상을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데도 쓰인다.
깊은 잠에 빠져 있거나 우울증을 겪을 때는 뇌의 엔트로피가 낮았고, 꿈을 꿀 때나 조현병(정신분열증) 초기 상태에서는 뇌의 엔트로피가 높았다.
오늘날 흔한 우울증, 강박증, 중독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뇌 엔트로피가 지나치게 낮아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경쟁과 비교가 심한 한국 사회 분위기 탓에 우울증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뇌 엔트로피를 다시 끌어올릴 방법을 찾는 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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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는 1865년 독일 물리학자 루돌프 클라우지우스가 처음 만든 열역학 용어로, 쉽게 말하면 '무질서도'를 뜻한다. 자연 상태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 무질서도가 커진다. 물이 담긴 컵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잉크가 서서히 퍼져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대표적 예다. 반대로 이미 퍼진 잉크가 저절로 다시 한 방울로 뭉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1948년 미국 천재 수학자 클로드 섀넌은 엔트로피를 '정보'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했다. 섀넌에 따르면 담을 수 있는 정보가 많은 시스템일수록 엔트로피가 크다. 같은 바둑알 10개라도 단 한 가지 배열만 가능한 검은 바둑알 10개보다, 252가지 배열이 가능한 검은색·흰색 혼합 바둑알의 엔트로피가 훨씬 크다. 같은 개념을 클라우지우스와는 다른 각도에서 설명한 것이다.
다시 70년 가까이 흐른 2014년 이번에는 신경과학자가 '엔트로피 뇌 가설'이라는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영국 런던대의 로빈 카하트해리스 박사 연구팀은 학술지 '인간 신경과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사람의 의식 상태를 엔트로피로 설명했다. 연구팀은 뇌 네트워크가 움직이는 패턴을 분석해 이를 엔트로피 수치로 계산했다. 패턴이 단순해서 예측하기 쉬우면 엔트로피 값이 작고, 패턴이 복잡해서 예측하기 어려우면 값이 크다. 깊은 잠에 빠져 있거나 우울증을 겪을 때는 뇌의 엔트로피가 낮았고, 꿈을 꿀 때나 조현병(정신분열증) 초기 상태에서는 뇌의 엔트로피가 높았다. 그렇다고 뇌 엔트로피가 무조건 클수록 좋은 것은 아니다. 너무 커지면 오히려 뇌가 뒤죽박죽 상태가 되는데, 조현병이 그런 경우다.
점점 낮아지는 현대인의 뇌 엔트로피
인류 뇌는 진화 과정에서 엔트로피를 적당한 수준으로 낮춰왔다고 볼 수 있다. 별다른 일을 하지 않을 때도 작동하는 DMN(Default Mode Network)이 대표적 예다. 이 네트워크는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 정체성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인간 뇌에서 가장 고도로 발달한 부위가 바로 이 DMN인데, 신기하게도 아이가 다 자랄 무렵에야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성인 뇌는 마치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처럼 작동한다. 문제는 이렇게 위계질서가 잡히면서 우리가 자기 내면에만 몰두하게 됐고, 그만큼 자연이나 외부 세계로부터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흔한 우울증, 강박증, 중독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뇌 엔트로피가 지나치게 낮아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뇌 안의 특정 회로만 반복해서 쓰이다 보니 생기는 현상인 것이다. 나이가 들 때도 뇌 엔트로피가 함께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생각이 굳고 하던 대로만 하려는 습성이 강해지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경쟁과 비교가 심한 한국 사회 분위기 탓에 우울증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뇌 엔트로피를 다시 끌어올릴 방법을 찾는 일이 시급하다.
요즘 지자체나 백화점 문화센터에는 각종 프로그램이 개설돼 있다. 대부분 뇌 엔트로피를 높이는 활동이다. 특히 예술 활동, 그중에서도 시 창작 교실이 그렇다. 새로운 언어의 네트워크를 창조해내는 시인이야말로 뇌 엔트로피가 높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과유불급이라고, 시인이 조현병 위험성이 가장 크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명상 역시 뇌 엔트로피를 높이는 활동이다. 석가모니는 6년간 고행과 명상 끝에 '무아(無我)'라는 깨달음 경지에 이르렀다. 뇌과학 용어로 표현하면 '더는 DMN의 지배를 받지 않는 상태'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명상으로 이런 극적인 효과를 보기는 무척 어렵다.
그런데 이걸 손쉽게(?) 해결할 대안이 있다. 이름만 들어도 움찔하게 되는 사이키델릭(psychedelic) 약물, LSD다. 한국에서는 환각제로 알려졌지만, 이는 '할루시노젠(hallucinogen)'의 번역어다. 사이키델릭은 그리스어 '정신(psyche)'과 '발현하다(deloun)'의 합성어다. 대다수 과학 분야에서 채택한 용어로 아직 번역어가 없다.
뇌 엔트로피, 어떻게 깨울까
1938년 스위스 화학자 알베르트 호프만이 합성한 LSD는 우울증·중독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보여 한때 '기적의 신약'으로 불렸다. 1960년대 히피가 반전운동을 하며 LSD를 의식 고양용으로 애용하자 당국은 이를 마약으로 규정해 소탕했다. 그 여파로 세계는 이 물질을 위험한 것으로 각인했다. 하지만 난치성 정신질환이 만연하자 2000년대 들어 LSD가 다시 의학계로 복귀했다. 지금은 임상연구가 한창이다.핵심은 뇌 엔트로피다. 2024년 학술지 '네이처'에는 LSD와 구조가 비슷한 실로시빈 투약이 DMN과 다른 영역 간 네트워크를 약화한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특히 앞쪽 해마와의 연결 약화는 투약 후 수주 뒤까지 이어졌다. 앞쪽 해마는 자아와 시공간 개념을 관장하는 곳이다. 사이키델릭 체험자 다수가 "투약 후 인생관이 바뀌었다"고 말한 것도 우연은 아닌 셈이다. 최근에는 사이키델릭 경험이 없는 62명에게 실로시빈을 투약한 뒤 뇌 활동 변화를 분석한 논문이 네이처에 실렸다. 연구에 따르면 사이키델릭은 단순히 뇌 네트워크를 뒤흔드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게 적응하는 유연성을 키웠다. 음악 감상을 할 때는 곡이 더 생생하게 들리고 명상을 할 때는 쉽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다.
서구 학계에서는 사이키델릭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호주는 2023년부터 치료저항성 우울증에 실로시빈을 처방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언급을 꺼리는 환각제일 뿐이다. 뇌 엔트로피가 낮은 사회라 고정관념에서도 잘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2011년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는 생전 LSD 체험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으로 꼽았다.
"나는 LSD를 통해 심오한 체험을 했어요. 정말 제 인생에서 중요한 경험이었죠. 사물에 숨어 있는 새로운 면들을 봤거든요. (중략) 이제는 단순히 돈을 버는 것보다 좀 더 인간의 의식과 역사에 의미 있는 것들을 창조하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이 순간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 손에 스마트폰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강석기 칼럼니스트는… 서울대 화학과 및 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 연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를 거쳐 2012년부터 과학칼럼니스트이자 프리랜서 작가(대표 저서 '식물은 어떻게 작물이 되었나')로 활동하고 있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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