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자료 버젓이 사고팔고… “불법 알지만 나만 없으면 손해” [녹취·리셀로 얼룩진 강의실·(上)]

김지수·박소영·성은찬·오민성 2026. 9. 1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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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암리 공유되던 ‘족보’ 거래 대상으로
“성적에 큰 영향… 살 수 밖에 없는 분위기”
시험문제 반복 출제… “필수 인식 생겨”
“자연스러운 문화, 저작권 고민하지 않아”

대학 강의실이 위기다. 녹취와 리셀(되팔기·resell)의 대상이 된 교육 콘텐츠 때문이다. 교수자의 강의 내용은 불법녹취 대상이 됐고, ‘족보’에서 진화한 교육자료에는 P(프리미엄)가 붙어 유통된다. 기술변화가 불러온 이 강의실의 변화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른다는 걸, 강단에 선 교수와 책상에 앉은 학생 모두 알고 있다. 이런 현실을 극복할 방법은 학생들의 자정 노력에 있다./편집자 주

경기도내 한 대학교 도서관의 열람실 모습. /경인일보DB

‘유빈아카이브’는 2023년 개설됐다. 지금까지도 운영 중인 유빈아카이브는 정부 단속에 의해 한 차례 중단됐다. 중단 전 1기 유빈아카이브는 교육자료를 공유하고 거래하는 문화 확산의 시발점이었다. 1기 공유방 가입자 수는 33만명을 넘어섰다.

유빈아카이브는 개설 직후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곳에선 학원 사설 모의고사나 유명 강사의 자체 교재같은 유료 교육 자료가 통째로 스캔돼 PDF(Portable Document Format) 파일로 변환돼 무료로 나돈다. ‘불법 PDF 공유방’ 형태인데 유료 교육자료를 무단으로 유포하는 온라인 채널의 대명사가 바로 유빈 아카이브다.

불법성을 인지한 문화체육관광부가 단속해 2025년 8월 1기 유빈 아카이브는 폐쇄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2기가 다시 개설됐고 현재 가입자 26만명을 돌파해 성행 중이다.

텔레그램 유빈아카이브 교육자료 공유방 캡쳐


유빈아카이브가 개설된 2023년 고등학생이었던 재학생들은 현재 대학생이 됐다. 손쉽게 접한 고등학생 시절 불법 공유의 달콤함은 대학에까지 이어졌다. 녹취된 강의자료를 공유하고 각색을 거쳐 되팔아 수익을 거두는 행위까지 나아갔는데, 이 모든 과정이 범법행위에 대한 자각 없이 이뤄진다.

교육자료 불법 공유는 특히 대학 중간·기말고사 시험시기 집중됐다. 자료 공유 방법이 진화한 ‘족보’는 리셀(되팔이) 대상이 되어 활발히 사고팔리고 있다.

취재진은 대학생 전용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단국대학교 페이지에서 검색어 ‘족보’가 포함된 게시물 수를 자체 집계했다. 지난 1월 16개였던 관련 게시물은 중간고사 기간인 4월 368개까지 급증했다. 시험이 끝난 5월에는 99개로 줄었지만, 기말고사 기간인 6월에는 다시 374개로 증가했고 학기가 끝난 7월에는 23개로 감소했다. 족보 관련 게시물이 중간·기말고사 기간에 집중된 것이다.

그래픽/박주우기자 neojo@kyeongin.com


대학 시험 족보는 과거에도 선후배 사이 암암리에 공유됐다. 그러나 현재는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이 일상화되며 공유 범위가 넓어졌고, 기프티콘이나 현금을 대가로 한 거래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차이다. 에브리타임에서 족보 판매 또는 구매 글을 올린 학생들과 접촉해 실제 거래 경험을 들어봤다.

족보 판매 경험이 있는 단국대학교 공과대학 재학생 이혁준(가명)씨는 “족보가 성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과목을 수강하면 시험을 잘 보기 위해 구매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있다”며 “나 역시 같은 이유로 작년에 족보를 구매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족보를 구매하는데 3~4만원 가량을 사용했다.

족보 거래는 한 번의 구매에서 그치지 않고 재판매로 이어졌다. 교양과목 ‘그리스 로마 신화’ 족보를 판매한 최민철(가명)씨는 기존 족보를 1만2000원에 구매한 뒤 직접 시험을 치르며 확인한 내용을 추가해 다음 학기에 다시 판매했다고 밝혔다. 1만원씩 7명에게 다시 판매해 한 차례 구매한 족보로 총 7만원의 판매대금을 받은 셈이다. 이렇듯 기존 족보의 구매자가 다시 판매자가 되고, 새로운 시험 내용이 더해지며 한 번 만들어진 족보가 다음 학기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 같은 거래가 지속될 수 있는 배경에는 시험 문제의 반복 출제가 있다. 과거 출제된 문제가 다시 시험에 등장하면 이전 시험 정보를 담고 있는 족보의 가치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씨 역시 “족보와 동일한 문제가 시험에 나오는 경우가 있어 학생들 사이에 족보가 필수라는 인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족보 구매 경험이 있는 단국대학교 김나연(가명)씨는 “많은 학생이 족보를 구매하는 상황에서 나만 족보 없이 시험을 보면 손해라고 느껴 구매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동시에 “당시에는 저작권이나 윤리적 문제를 고민하지 않았다. 선후배끼리 족보를 주고 받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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