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강국의 역설’ 깨뜨릴 국가전략…‘한국의 핵안보 프로젝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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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설계·건조 기술을 자랑하며 수출 시장을 누비는 대한한국.
『한국의 핵안보 프로젝트 6: 에너지 안보와 핵잠재력』(블루앤노트)은 이러한 기술적 강점과 외교·제도적 제약 사이의 딜레마를 정면으로 파고든 국가전략 보고서이자 학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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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잠재력은 핵무장 아닌 미래 선택지…에너지 주권이 곧 안보 주권"
[이데일리 윤정훈 기자]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설계·건조 기술을 자랑하며 수출 시장을 누비는 대한한국. 하지만 화려한 외형 뒤에는 원전의 심장인 농축우라늄을 전량 해외에 의존하고, 발전소 부지마다 사용후핵연료가 꽉 들어차 출구를 찾지 못하는 ‘원전 강국의 역설’이 자리 잡고 있다. 북한의 핵 위협이 고도화되는 상황에서도 최종 억제력 판단을 동맹국의 결단에 의지해야 하는 현실 역시 한국 안보의 명암이다.

한국핵안보전략포럼이 엮고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을 비롯해 송승종, 류인석, 박동순, 이기태, 장영희, 피터 워드, 한지성 등 외교·안보·원자력 분야의 대표적 전문가 8인이 공동 집필했다.
책은 단순히 “한국도 농축과 재처리를 해야 하는가”라는 이분법적 질문을 넘어, 국제사회의 신뢰를 유지하면서 불확실한 안보 환경에 대응할 전략적 선택지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핵잠재력은 핵무장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저자들이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하는 핵심 개념은 ‘핵잠재력(Nuclear Latency)’이다. 이는 당장 핵무기를 개발·보유하겠다는 정치적 선언이 아니다. 고도화된 원자력 기술과 산업 인프라, 전문 인력을 책임 있게 축적함으로써 심각한 안보 불확실성에 직면했을 때 국가가 행사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 능력을 의미한다.
책은 농축과 재처리를 민감 기술이라는 이유로 논의 자체를 금기시하는 태도와, 뛰어난 기술력만 믿고 국제정치적 제약을 쉽게 돌파할 수 있다고 믿는 낙관론 모두를 경계한다.
특히 58장과 60장에서는 한미 원자력협정이 지닌 ‘두 얼굴’을 냉철하게 분석한다. 협정이 한국 원자력 산업의 성장을 이끈 제도적 기반이었던 동시에, 농축과 재처리를 제한해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관리해 온 도구였다는 점을 짚어낸다.
이어 다국적 농축기업 유렌코(URENCO)와의 협력 모델이나 프랑스 라아그(La Hague) 사례를 통한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기술 협력 등 한미동맹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실리적인 자율성을 넓힐 수 있는 ‘제3의 길’을 현실적으로 제시한다.
역사적 교훈부터 핵추진잠수함 생태계까지 종합 조명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역사적 반성과 미래 전력 구축에 대한 실용적 접근에 있다. 박정희 정부 시절의 핵개발 시도(62장)와 대만의 핵개발 실패 사례(63장)를 재평가하며, 강력한 지도자의 결단만으로는 국가 전략이 성공할 수 없음을 증언한다. 특히 정보기관의 추적과 내부 협조자 문제(64장)를 다루며 “핵안보에서 가장 취약한 지점은 때로 원자로나 미사일이 아닌 사람과 조직”이라는 뼈아픈 성찰을 전달한다.
아울러 미국 중심의 안보관에서 벗어나 한국·일본·프랑스·영국·독일이 참여하는 ‘전략적 중강국 5개국 안보협력체(SMP5)’ 구상을 제안(65장)하는가 하면, 최근 안보 지형의 화두인 핵추진잠수함 도입 논의를 ‘건조’에서 ‘인력 양성 및 정비·통합 운용유지(MCO)’로 확장(66~68장)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프랑스의 승조원 교육체계와 IPER(계획대정비) 생태계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책 실무자들에게도 상당한 시사점을 준다.
“연료를 남에게 맡긴 원전 강국은 완전한 원전 강국이 아니며, 에너지 주권 없는 안보 주권은 없다.”
총 484쪽에 달하는 거대한 담론을 관통하는 이 메시지는, 불확실성이 심화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이 수동적 수혜자에서 능동적 안보 설계자로 거듭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이정표다.
윤정훈 (yunright@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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