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집총 거부, 총부리 대신 식물채집망을 든 사내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미국 버몬트주 샬럿 마을에 사이러스 거언지 프링글(Cyrus Guernsey Pringle, 1838~1911)이라는 농부가 있었다.
프링글의 숙부까지 나서서 그 돈을 대신 내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그러나 프링글은 이후 35년간 북미와 멕시코의 식물을 채집하며 50만 점에 이르는 표본을 남기고, 이제껏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식물 1200여 종을 세상에 소개했다.
그런데 프링글의 이야기가 오늘 더 깊이 와 닿는 지점은 따로 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국 버몬트주 샬럿 마을에 사이러스 거언지 프링글(Cyrus Guernsey Pringle, 1838~1911)이라는 농부가 있었다. 결혼한 지 다섯 달 만인 1863년 7월, 그에게 군대 소집영장이 날아든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그는 퀘이커 교도였다. 총을 들지 않는다는 신앙 하나로 그는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와 맞서게 된다.
돈 내고 빠질 기회를 걷어차다
당시 미국 정병법에는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다. 삼백 달러만 내면 대신 싸울 사람을 사서 군복무를 면제받을 수 있었다. 프링글의 숙부까지 나서서 그 돈을 대신 내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사람을 사서 대신 죽이러 보내는 짓이야말로 전쟁 자체보다 더 비겁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정부의 군사적 보호를 요구한 적도, 감사히 여긴 적도 없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 해도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같은 마을 퀘이커 두 사람, 피터 데이킨과 린들리 매컴버와 함께 그는 징병심사위원회에 출두해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셋은 총검을 든 병사들 사이에 갇혀 보스턴 항의 군막사로 끌려갔다. 프링글은 그 안의 풍경을 일기에 남겼다.
"스물다섯이나 서른 마리 우리에 갇힌 사자들처럼, 사람들이 이 건물 안을 하루 종일 어슬렁거린다."
말뚝에 묶여도 굽히지 않다
군당국은 이들을 회유하려 애썼다. 총을 대신 들어줄 테니 병원 잡무나 하라는 제안도 나왔고, 심지어 다른 퀘이커들조차 그 정도는 신앙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설득했다. 프링글은 "가장 잔인한 타격은 바로 우리 친우(퀘이커)들에게서 온다"고 썼다. 결국 셋은 버지니아 전선까지 끌려가 강제로 총을 지급받았다. 총을 거부하자 병사들이 몸에 총을 억지로 채웠고, 총구는 어깨에 걸려 질질 끌렸다. 병사들이 비누 거품 낀 더러운 개울물을 마실 만큼 목이 말라도 행군은 멈추지 않았다.
절정은 상관의 총을 닦으라는 지시를 거부했을 때다. 프링글은 사지가 벌어진 채 땅바닥 말뚝에 묶였다. 몇 시간 뒤 풀려났을 때는 걷기도, 생각을 이어가기도 힘들 만큼 쇠약해져 있었다. 이 모든 일이 소총 한 자루를 손에 쥐기를 거부했다는 이유 하나로 벌어졌다.
이 소식은 결국 워싱턴까지 전해졌고, 1863년 11월 7일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의 직접 지시로 프링글과 동료들은 병역에서 풀려났다. 후유증으로 귀향길에 헛소리를 할 만큼 앓아누운 그는, 몇 주가 지나서야 정신을 되찾았다.
전쟁이 앗아간 몸으로 남긴 것
여기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그저 한 사람의 신념 이야기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프링글은 이후 35년간 북미와 멕시코의 식물을 채집하며 50만 점에 이르는 표본을 남기고, 이제껏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식물 1200여 종을 세상에 소개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신종을 발견한 식물학자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성과다. 총을 들라는 명령에 몸으로 저항했던 사내가, 대신 채집망과 압지(壓紙)를 들고 대륙을 걸어 다니며 자연을 기록한 것이다. 그의 남북전쟁 일기는 사후인 1913년 잡지에 실렸고, 1918년에는 『퀘이커 양심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되어 지금도 읽힌다.
한국이 곱씹을 만한 대목
한국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오랫동안 감옥행을 뜻했다. 해마다 수백 명이 실형을 살았고, 2018년에야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 없는 처벌을 위헌이라 판단해 비로소 대체복무제가 자리를 잡았다. 프링글이 150년 전 겪은 국가와 개인양심의 충돌이, 한국에서는 최근까지도 현재진행형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프링글의 이야기가 오늘 더 깊이 와 닿는 지점은 따로 있다. 2024년 12월 3일 밤, 국회에 투입된 군인들 가운데 상부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속도를 늦추거나, 총을 겨누라는 명령 앞에서 머뭇거린 이들이 있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명령에 대한 복종이 곧 정의는 아니라는 사실, 제복을 입은 사람도 얼마든지 부당한 지시 앞에서 걸음을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을 프링글은 몸으로 증명했다. 말뚝에 묶이면서도 총을 들지 않은 농부와, 국회로 진입하라는 명령 앞에서 잠시 멈춰 선 병사 사이에는 160년의 시간차가 있을 뿐 본질은 다르지 않다.
명령에 따랐다는 이유로 훗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원칙 또한 그가 남긴 유산과 이어진다. 12·3 내란사태 관련 재판에서 지휘관과 실행자 모두가 "명령이었다"는 말만으로는 면책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는 지금, 프링글의 일기는 160년 전에 이미 답을 적어 두었다. 총을 든 손이라도 양심에 어긋난다면 멈출 수 있고, 멈춰야 할 때가 있다고.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김성수 <함석헌 평전> 저자]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靑, 김승원·용혜인 논란에 "국민 목소리 귀기울여 듣고 있다"
- 호르무즈 이어 홍해도 폐쇄되나…외신 "모카 접수 뒤 홍해 섬 진출한 후티, 이란이 지휘"
- 20대 '호르무즈 파병 반대' 22%,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 자연 재해, 어디에서나 똑같다? 재난과 구호는 '정치적'이다
- [속보] 정부, 호르무즈 파병 한다면서 이란에는 "재외국민 안전 당부"?
- 민주당 "용혜인, 국민 눈높이에서 엄정히 보겠다"
- '언더조직' 인정한 용혜인, 8년 전엔 "알지 못한다" 외면
- 김민석 "김승원, 볼수록 잘된 인사"…野 비판엔 "검찰개혁 좌천 음모"
- [갤럽] 李대통령 지지율 38% 최저치…김승원·용혜인 '부적합' 압도적
- "성능은 알지만 원리는 블랙박스"…AI란 거대한 실험, 위험성은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