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제지공장이 AI 팩토리로…핀란드가 ‘유럽의 텍사스’가 된 이유[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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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럽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허브'로 급부상 중인 나라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유럽에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는 글로벌 기업들이 다들 핀란드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유럽 최대 원자력 발전소인 핀란드 올킬루오토 3호기(1600MW)의 1.5배에 해당하는 전기를 데이터센터가 잡아먹는다는 뜻이죠.
물론 여전히 유럽에선 핀란드만한 데이터센터 입지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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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럽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허브’로 급부상 중인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핀란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바이트댄스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핀란드에서 초대형 데이터센터 건설에 나섰는데요.
왜 기업들이 유럽 중심에서 떨어진 변방의 북유럽 국가로 몰릴까요. 세계 곳곳이 데이터센터 님비현상으로 시끄러운데, 왜 핀란드에선 주민 반발이 크지 않을까요. AI 시대의 새로운 승자로 조용히 떠오르는 핀란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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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센터 몰리는 ‘유럽의 텍사스’
2년(2027~2028년)간 최소 130억 유로(약 20.2조원). 9월 9일 구글이 역대 최대 규모의 유럽 내 투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핀란드에서 운영 중인 하미나 데이터센터를 대폭 확장하고, 3개의 데이터센터를 새로 짓기로 한 거죠. 페테리 오르포 핀란드 총리는 “구글의 결정은 핀란드의 강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증거”라며 이를 환영했는데요.
구글만이 아니죠. 2025년 핀란드에서 ‘틱톡(Tiktok)’ 서비스용 데이터센터 건설에 나선 중국 바이트댄스는 2026년 4월 두 번째 데이터센터 건설을 발표했고요. 영국 퓨어DC, 네덜란드 네비우스, 싱가포르 데이원, 노르웨이 ASP데이터센터 같은 글로벌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개발사들이 2025~2026년 속속 핀란드에서 데이터센터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현재 핀란드에서 건설 중인 데이터센터만 수십 곳이고, 계획 중인 건 100곳이 넘죠.

사실 핀란드는 지리적으로 유럽의 중심보다는 변방에 가깝고요. 아일랜드처럼 영어가 공용어이거나 기술기업의 유럽 본부가 몰려있는 나라도 아닌데요. 그런데도 핀란드가 최적의 입지로 떠오른 건, AI 데이터센터 건설에 꼭 필요한 전기와 땅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핀란드는 어쩌다 이런 조건을 갖추게 됐을까요.
전기와 땅, 이미 다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국가 전체 발전량이 충분하더라도 데이터센터 부지까지 송전망을 새로 깔아야 한다면, 그건 보통 일이 아니죠. 많은 나라에서 데이터센터 구축의 주요 병목지점이 전력망 연결인데요. 핀란드에선 이 문제가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되고 있습니다. 이미 고전압 전력망이 깔려있고, 냉각수 인프라까지 갖춰진 좋은 빈 땅이 많거든요. 바로 폐쇄된 제지공장 부지입니다.
나무가 많은 핀란드는 오래 전부터 제지산업으로 유명했죠. 나무를 종이로 만드는 데 막대한 양의 전기가 들어가는 걸 아시나요? 대형 전기모터가 달린 축구장 절반 크기의 기계가 24시간 돌아가며 펄프섬유를 연마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이 엄청난 전력 공급을 위해 제지공장 옆엔 보통 전용 변전소가 들어서 있어요. 1990년대, 그러니까 디지털 시대가 열리기 직전의 제지업 최대 호황기 땐 핀란드 전체 전력 소비량의 3분의 1을 이 제지산업이 차지했을 정도였다죠.
종이를 만들 땐 전기만이 아니라, 물도 엄청나게 들어갑니다. 종이 제조는 99%의 물에 1%의 펄프 섬유를 섞어 푼 다음, 이를 거르고 탈수하는 과정이니까요. 따라서 제지공장엔 바다나 호수에서 막대한 물을 끌어오는 취수시설, 더러워진 물을 깨끗하게 처리해 방류하는 배수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어요.
송전망과 물(냉각수) 관련 인프라까지 이미 갖춰진 산업용 부지라니.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는 기업이 탐내는 게 당연합니다. 건설에 필요한 기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으니 말이죠. 2000년대 들어 핀란드 제지기업들은 디지털 전환으로 종이 수요가 폭락하고 산업이 쇠퇴하면서 공장을 속속 폐쇄했는데요. 가동을 멈춘 채 녹슬어가던 이 제지공장들이 속속 대규모 데이터센터로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쇠퇴한 사양산업의 유산이 첨단 AI 산업을 위한 완벽한 기반으로 변모한 셈이죠.
데이터센터로 난방까지 해결?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데이터센터 님비(NIMBY) 현상’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전해드린 적 있죠. 데이터센터의 막대한 전력·물 사용에 대한 우려와 함께 미관을 해친다, 냉각팬 소음이 시끌럽다는 주민들 불만이 커집니다. 곳곳에서 주민들이 시위에 나서는가 하면, 얼마 전 미국에선 뉴욕주가 50MW급 이상 데이터센터 신규 건설을 1년 동안 금지하기까지 했는데요.
핀란드라고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논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까진 주민들의 거부감이 그리 크지 않은 편입니다. 일단 데이터센터는 주거지역과 떨어진 기존 산업부지에 들어서요. 원래 공장지대였던 곳이라, 전자파나 소음 관련 민원이 들어올 일 없고요. 오히려 공장 폐쇄로 인구가 줄고 쇠락해갔던 소도시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효과가 있죠.

구글은 현재 핀란드 하미나시에서 데이터센터를 운영 중인데요. 2025년 말부터 이 데이터센터에서 나오는 냉각수를 도시의 지역난방망에 무상으로 제공합니다. 서버를 식히고 미지근해진(약 30도) 냉각수가 파이프를 타고 열펌프 플랜트로 오면, 여기서 85도의 고온으로 만들어서 지역난방 파이프로 흘려보내는 거죠. 이 작은 도시는 이제 난방의 70% 이상이 구글 데이터센터에서 나온 열로 이뤄집니다.
현재 헬싱키 인근 수도권 2곳에 새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도 같은 원리의 폐열 재활용 시스템을 구축 중인데요. 설비 규모 면에서 구글 시설의 10배가 넘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데이터센터 열 순환’ 프로젝트가 될 거라고 하죠.
사실 핀란드에선 수십년 전부터 제지공장이나 제철소에서 나온 산업 폐열을 지역난방에 활용해왔어요. 다만 데이터센터에서 나오는 냉각수는 온도가 난방용으로 쓰기엔 낮은 편인데요. 이를 압축해서 고온으로 가열하는 히트펌프 기술이 결합되기 시작한 겁니다. 다른 나라에선 골칫거리일 뿐인 데이터센터 폐열이 핀란드에선 소중한 에너지 자원으로 전환돼 쓰이고 있죠.
15년 침체 벗어날 절호의 기회
핀란드는 유럽국가 답지 않은 빠르고 투명한 행정이 특징인 나라입니다. 2020년 핀란드 정부는 ‘건축 허가+환경영향평가+용수사용 허가’를 단 하나의 창구에서 동시에 심사·처리하는 패스트트랙을 도입하며 행정효율을 높였죠. 인허가부터 전력망 연결까지 5~10년이 걸리는 서유럽 국가와 달리, 핀란드에선 평균 3년이면 됩니다. 건설기간이 곧 돈인 기업 입장에서 핀란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죠.
그럼, 핀란드를 모처럼 투자자들로 북적이게 만든 이 데이터센터 붐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요. 이를 계기로 핀란드는 유럽 디지털 산업의 변방에서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을까요.

이런 여론을 반영해서 핀란드 정부는 데이터센터에 제공하던 전력세 감면 혜택(연간 약 4700만 유로, 734억원)을 종료했고요. 전력공기업 핀그리드(Fingrid)는 이제 대형 데이터센터 기업들에 ‘사용전력의 최소 30%를 실시간으로 감축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라고 요구합니다. 구글의 이번 발표를 보면 ‘94MW급 배터리 시스템 구축’이 계획에 포함돼 있는데요. 핀그리드의 강화된 요건에 맞추기 위한 거죠. 서버를 끌 수는 없으니, 백업 배터리를 추가한 겁니다.
물론 여전히 유럽에선 핀란드만한 데이터센터 입지가 없습니다. 세제혜택 폐지가 발표됐는데도, 구글이 역대급 투자를 결정한 걸 보면 알 수 있죠. 또 핀란드는 사실 모처럼 찾아온 이 투자 붐을 어떻게든 잡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노키아 쇼크’로 15년 동안 정체된 성장률, 1998년 이후 가장 높은 10%대 실업률을 반전시킬 절호의 기회니까요. AI 산업의 성장에 올라 탄 ‘데이터센터 허브’ 핀란드의 스토리는 이제 시작입니다.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9월 11일(금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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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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