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징역에도 "후회 없다"…법정서도 포기 못한 전 조종사의 살인 계획 [사건 플러스]

권경훈 2026. 9. 1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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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기장이 자신의 집을 나서다 흉기에 찔려 숨졌다. 범인은 같은 항공사에서 일했던 전직 부기장 김동환(49)이었다.

부산지법 형사7부(부장 임주혁)는 지난달 21일 살인·살인미수·살인예비·정보통신망 침해·주거침입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동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동환은 3월 16일 오전 5시30분쯤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의 한 아파트에 배달기사로 위장해 들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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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출신 기장 향한 자기만의 '반감'
퇴직 후 상조금 감액 결정에 불만 커
6명 대상 정해 세부계획 문서도 작성
첫 살인 실패 뒤 부산서 결국 범행
"재범 위험성 높아 영구 격리 필요"
항공사 동료 기장을 살해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동환. 연합뉴스

항공기 기장이 자신의 집을 나서다 흉기에 찔려 숨졌다. 범인은 같은 항공사에서 일했던 전직 부기장 김동환(49)이었다. 그가 노린 사람은 한 명이 아니었다. 전 직장 동료 6명을 살해 대상으로 정하고 범행 순서와 장소, 도주 방법까지 적은 계획서를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계획에는 'JUSTICE(정의)'란 '작전명'도 붙였다. 김동환은 공군사관학교 출신 기장들이 이른바 '카르텔'을 만들어 자신을 조직적으로 괴롭혔고 결국 조종사 생활까지 그만두게 했다고 생각한 것으로 파악됐다. 약 8개월 동안 피해자들의 집과 비행 일정을 추적하고 범행 도구를 준비했으며, 첫 살인에 실패한 뒤에도 곧장 다음 목표를 찾아가 결국 한 사람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부산지법 형사7부(부장 임주혁)는 지난달 21일 살인·살인미수·살인예비·정보통신망 침해·주거침입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동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조종사 꿈 접은 뒤 쌓인 원한

게티이미지뱅크

김동환은 어린 시절부터 조종사를 꿈꿨다. 1995년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했지만 시력 기준에 미달해 정보장교로 임관했다. 전역 뒤 조종훈련을 받아 미국연방항공청 조종사 면장을 취득했고 2007년 민간항공사 부기장이 됐다.

그러나 미국에서 비행교육을 받을 때 감염된 풍토병이 재발해 2011년 회사를 떠났다. 2017년 완치 판정을 받고 이듬해 다른 항공사에 다시 입사했지만 2022년 또 다른 질병 진단을 받아 휴직했고, 결국 2024년 4월 조종사 자격을 잃어 회사를 떠났다.

퇴직 뒤에는 상조금 문제까지 겹쳤다. 질병으로 조종사 자격을 잃었다며 조종사 공제회에 1억5,000만 원을 청구했지만, 공제회는 지급액 상한을 5,000만 원으로 낮춘 규정을 적용했다. 김동환은 소송을 냈으나 2025년 6월 일부 패소해 4,166만 원가량과 지연이자만 받을 수 있게 됐다. 재판부는 이 무렵 김동환이 '더 이상 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해 살인을 결심했다고 봤다.

그는 자신도 공사를 졸업했지만 공군 조종사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사 출신 기장들이 자신을 차별하고 음해했다고 여긴 것으로 조사됐다. 상조금 지급이나 비행 평가, 인사에서 불이익을 줬다고 생각한 사람과 자신을 조롱했다고 여긴 사람에게도 원한을 품은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그에게 원한을 살 정도로 괴롭혔다는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계획서 쓰고 범행 리허설

게티이미지뱅크

김동환은 피해자들을 미행하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을 이용해 주거지를 파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 장소와 도주 경로도 여러 차례 답사했다. 퇴사해 회사 운항스케줄을 확인하는 온라인 사이트에 접속할 권한이 없었지만 전 직장동료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이용해 3월 1일부터 17일까지 17차례 접속한 혐의도 받는다. 목적은 피해자들의 비행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계획서는 1월에 작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자별 범행 순서와 장소, 이동 방법, 도주 방법을 정해 놓았다. 지난해 10월에는 부산과 경남 창원, 경기 부천 등의 피해자 주거지를 찾아 주변 환경을 살핀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이를 연쇄 살인을 앞둔 '리허설'로 판단했다.


첫 살인 실패 다음 날 또 범행

게티이미지뱅크

첫 번째 목표는 피해자 A씨였다. 김동환은 3월 16일 오전 5시30분쯤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의 한 아파트에 배달기사로 위장해 들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엘리베이터 점검 안내문을 붙여 A씨를 비상용 엘리베이터 쪽으로 유인한 뒤 공격했지만, A씨가 크게 소리치며 저항해 실패했다.

김동환은 옷을 갈아입고 대중교통으로 부산에 내려갔다. 3월 17일 오전 5시30분쯤 부산 부산진구의 한 아파트에서 피해자 B씨에게 여러차례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추가로 살해할 4명까지 정해둔 상태였다. 이 가운데 한 명의 비행 일정이 바뀐 사실을 확인하자 다음 살해 대상을 바꿨다. 창원과 진주, 김해공항을 거쳐 울산으로 이동해 서울행 고속버스표까지 샀지만, 경찰 추적이 확대됐다는 기사를 본 뒤 호텔로 몸을 숨겼다. 경찰은 3월 17일 오후 8시3분쯤 울산에서 김동환을 긴급체포했다.


"범행 후회 없다"… 법정서도 반성 안 해

게티이미지뱅크

김동환이 원한을 품은 이유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자신이 어려울 때 위로 전화를 하지 않은 사람을 원망하면서도, 전화를 한 사람에게는 자신을 비아냥거렸다며 앙심을 품은 것으로 조사됐다.

법정에서도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결심공판에서는 "아직 남아 있는 5명, 너희 미래는 이미 결정돼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 6명을 죽이는 데 '올인'했다거나 직접 하지 못하면 살인청부업자에게 맡겼을 것이라는 취지의 말도 했다. 검사가 범행을 후회하거나 자책감이 있는지 묻자 오히려 "있을 것 같나요?"라고 되물은 뒤 "전혀 없습니다"라고 했다. 재판장이 피해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전혀 없느냐고 재차 확인하자 "없습니다. 그들이 가해자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김동환이 순간의 분노로 범행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여러 사람을 살해하려 준비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첫 살해 시도가 실패한 뒤에도 바로 부산으로 이동해 실제 살인을 저지른 점을 중하게 봤다. 재판부는 "검거되지 않았다면 피해자들에 대한 살인 범행을 계속 이어 나갔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 사건은 다수의 피해자를 상대로 치밀한 계획하에 연쇄 살인을 시도한 것으로 범행의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임상심리평가와 재범위험성 평가 등을 종합해 살인범죄 재범 위험성이 높다며 사회에서 영구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무기징역 선고와 함께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피해자와 가족에게 접근하거나 연락하지 못하도록 하고 정기적인 정신과 진료와 치료도 받게 했다.

김동환은 1심 판결에 불복해 지난달 28일 항소했다. 검찰은 구형한 무기징역 형량이 그대로 선고돼 항소하지 않았다.

부산= 권경훈 기자 werth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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