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고향' 제주 송당…마을길 따라 신화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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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구좌읍 중산간에 자리 잡은 송당마을은 제주에서 '신들의 고향'으로 통한다.
제주 신당(神堂)의 원조 격인 송당본향당이 있고, 마을을 지키는 당신(堂神)의 어머니로 불리는 '백주또'와 수렵·목축신 '소천국'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백주또'는 송당본향당의 당신(堂神)이고 '새미'는 샘을 뜻하는 제주어다.
백주또와 소천국의 자손들이 제주 곳곳으로 흩어져 각 마을의 당신이 됐다고 전해지면서 송당은 제주 당신앙의 뿌리와 같은 곳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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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또·소천국 신화부터 본향당·밭담까지…자연과 삶 한데
!['신들의 고향' 제주 송당리 전경 [제주관광공사 비짓제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t1.daumcdn.net/news/202609/12/yonhap/20260912090201817dnbx.gif)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시 구좌읍 중산간에 자리 잡은 송당마을은 제주에서 '신들의 고향'으로 통한다.
제주 신당(神堂)의 원조 격인 송당본향당이 있고, 마을을 지키는 당신(堂神)의 어머니로 불리는 '백주또'와 수렵·목축신 '소천국'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마을을 둘러싼 오름과 곶자왈, 초지와 밭담 사이에도 오랜 세월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켜켜이 쌓여 있다.
최근 이들을 하나의 길로 연결한 '송당 ㅁ+ㆍ실길(송당 마실길)'이 만들어졌다.
'마실'은 '마을'을 뜻하는 제주어다.
송당 마을길을 따라가다 보면 아름다운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새로 난 길을 따라 송당의 오래된 이야기를 만나본다.
오름 넘어 곶자왈로…길마다 다른 송당의 얼굴
송당마을을 둘러보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오름을 넘고 곶자왈을 지나기도 하고, 밭담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오래된 신당과 마주한다.
제주도는 2024년부터 올해 8월 말까지 10억원을 들여 송당리 일대 8개 오름과 송당곶자왈, 마을을 잇는 33㎞ 길이의 '송당 마실길'을 만들었다.
길은 천년의 풍토길(13.45㎞), 백주또 새미길(10.2㎞), 소천국 두렁길(8.9㎞) 등 3개 코스로 나뉜다. 모두 걷는 데 약 7시간이 걸린다.
![송당곶자왈 [제주관광공사 비짓제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12/yonhap/20260912090201996jmkg.jpg)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천년의 풍토길은 당오름과 송당마을을 지나 송당곶자왈로 이어진다.
백주또 새미길을 따라가면 당오름과 송당본향당, 백주또부부 신당 쉼터를 만난다. '백주또'는 송당본향당의 당신(堂神)이고 '새미'는 샘을 뜻하는 제주어다.
소천국 두렁길은 당오름과 초지를 지난다. 수렵과 목축을 관장하는 신 '소천국'과 논밭 가장자리의 '두렁길'을 합쳐 이름 붙였다.
길 주변에는 제주 중산간의 풍경이 펼쳐진다.
거슨세미오름 생태체험관 주변에선 비자나무 아래 370m 길이의 화산송이길을 맨발로 걸을 수 있다. 600m 길이의 제주밭담길에서는 구불구불 이어지는 돌담을 가까이서 만난다.
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린 밭담과 초지, 오름은 단순한 풍경에 그치지 않는다.
거센 바람과 척박한 화산섬 환경에 적응하며 농사를 짓고 소와 말을 키웠던 제주 중산간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남은 흔적이다.
송당의 역사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이 같은 실제 삶이 신화 속 이야기와 겹쳐 있다는 점이다.
마실길에 '백주또'와 '소천국'이라는 낯선 이름이 붙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냥꾼 소천국과 여신 백주또가 만나다
제주에는 마을마다 신이 있다.
마을을 지키는 신을 '본향신'(本鄕神), 그 신을 모신 곳을 '본향당'(本鄕堂)이라 한다.
신이 어디에서 태어나 어떻게 살아왔고 왜 그 마을에 자리 잡게 됐는지를 풀어낸 이야기가 '당본풀이'다.
송당에도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송당본풀이'다.
이야기는 바다 건너에서 온 여신과 제주에서 태어난 남신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중국 강남천자국의 백모래밭에서 솟아난 '백주또'(금백주할망)는 오곡의 종자와 송아지, 망아지를 이끌고 제주로 내려온다.
제주에는 한라산에서 사냥하며 살아가던 '소로소천국'이 있었다.
둘은 만나 부부가 된다.
백주또는 사냥으로 살아가던 남편에게 농사를 지어 살 것을 권한다.
두 신은 아들 18명과 딸 28명을 낳았고 그 자손들은 다시 제주 곳곳으로 뻗어나가 여러 마을의 당신이 됐다고 전해진다.
![제주 송당리 본향당굿 '신과세제' (제주=연합뉴스) 정유년 정월 대보름을 이틀 앞둔 지난 2019년 2월 17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본향당에서 심방이 큰 굿인 신과세제(新過歲祭)를 주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12/yonhap/20260912090202341hkao.jpg)
한 편의 옛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 속에는 제주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가 숨어 있다.
제주 땅에서 솟아난 수렵·목축신 소천국과 바다 건너 오곡의 종자를 가지고 온 백주또의 만남은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로, 떠돌던 삶에서 한곳에 뿌리를 내리는 정착생활로 변화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해석이다.
송당본풀이가 더욱 특별한 이유가 있다.
백주또와 소천국의 자손들이 제주 곳곳으로 흩어져 각 마을의 당신이 됐다고 전해지면서 송당은 제주 당신앙의 뿌리와 같은 곳으로 여겨졌다.
송당본향당을 '제주 신당의 원조'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토착 남신과 외부에서 온 여신의 결합, 수렵에서 농경으로의 변화 등에서 탐라건국신화와 닮은 모습을 찾아 송당본풀이를 탐라건국신화의 원류 가운데 하나로 보기도 한다.
무엇보다 송당의 신들은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도 송당본향당에서는 해마다 음력 1월 13일 '신과세제'(神過歲製)가 열린다.
![제주 신에게 바치는 정성 (제주=연합뉴스) 지난 2023년 2월 3일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본향당에서 마을주민들이 아침 일찍부터 정성껏 마련한 제물을 올리고 있다. 신과세제는 마을주민들이 새해를 맞아 마을의 수호신에게 문안을 드리고 한 해의 무사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당굿이자 공동체 제의다.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12/yonhap/20260912090202487geyp.jpg)
새해를 맞아 마을을 지키는 신에게 세배를 올리고 마을의 무사안녕과 풍요, 가정의 행운을 비는 날이다.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은 대나무로 짠 바구니인 '차롱'에 술과 밥, 과일, 떡, 생선 등을 담아 본향당을 찾는다.
심방('무당'을 뜻하는 제주어)이 굿을 시작하면 오래전 백주또와 소천국의 이야기가 다시 펼쳐진다.
심방은 송당본풀이를 노래하고 사람들은 신에게 저마다의 소원을 빈다. 과거에서 전해진 신화가 오늘의 마을에서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다.
이처럼 송당에서는 자연과 사람의 삶, 신화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소와 말을 키우던 초지에는 소천국의 이야기가 남았고, 밭과 마을에는 오곡을 가지고 왔다는 백주또의 이야기가 전한다. 마을 한쪽 본향당에서는 지금도 주민들이 두 신의 이야기를 노래하며 한 해의 안녕을 빈다.
그리고 이제 그곳을 '송당 마실길'이 잇는다.
길은 새로 생겼지만 그 길이 품은 이야기는 오래됐다.
오름과 곶자왈, 밭담과 신당 사이를 걷다 보면 '신들의 고향' 송당이 왜 특별한 마을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제주=연합뉴스)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상공에서 바라본 한라산 일대에 낮은 구름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12/yonhap/20260912090202638umil.jpg)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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