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가는 로봇 국가였는데…20년 동안 무슨 일이? [한국로봇]①

김효신 2026. 9. 12.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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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2008년 세계 최초로 '로봇 특별법'을 제정할 정도로 로봇 선도 국가였습니다.

한국 휴머노이드 개발 초기 빠른 기술 발전의 배경에는 우리보다 한발 앞서 인간형 로봇 개발에 착수한 일본이 있었습니다.

시기적으로는 로봇 선도국인 미국과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에서 '한국형 휴머노이드 플랫폼'을 확보했다는 의미도 컸습니다.

2006년 미국 세계기술평가센터(WTEC)는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한국 로봇 기술을 일본 다음으로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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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2008년 세계 최초로 '로봇 특별법'을 제정할 정도로 로봇 선도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인간형 로봇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을 추격하는 입장이 됐습니다. 최근 2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우리나라 로봇 정책과 산업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고, 본격적인 로봇 시대에 대비하는 기획 보도를 마련했습니다.

■세계 최초 '걷는 안드로이드 로봇'...한국에서 탄생했다고?
*안드로이드 로봇: 외모와 피부, 표정 등이 인간을 닮은 로봇
*휴머노이드 로봇: 인간의 신체 구조(머리, 몸통, 팔다리 등)를 갖춘 로봇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인 2005년, 부산 APEC 전시장에서 당시로서는 생경한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얼굴을 한 인간형 로봇이 등장한 겁니다. 당시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 ‘알버트 휴보’를 향해 한국어로 “감사합니다”고 인사를 건낼만큼 사람과 닮아있었습니다.

2005년 부산 APEC에서 ‘알버트 휴보’가 미국 부시 당시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137센티미터의 키에 57킬로그램 몸무게. ‘알버트 휴보’의 외양만 관심을 끈 건 아니었습니다. 총 66개의 자유도(관절)가 구현됐는데, 머리 부분에만 표정용 서보모터 28개와 목 운동용 모터 3개가 들어갔습니다. 이 모터들이 인공피부에 연결된 와이어를 당기거나 풀면서 표정을 만들어 냈습니다. 웃음과 슬픔, 분노, 놀람 등 10여 가지의 감정 표현이 가능했습니다.

APEC 회의를 계기로 한국의 기술력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기존에 카이스트가 개발한 인간형 로봇 ‘휴보’ 몸체에 할리우드 특수효과 전문 기업 핸슨 로보틱스(Hanson Robotics)가 만든 얼굴을 결합해 급하게 만든 결과물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최초 '걷는 안드로이드 로봇'의 탄생으로 역사에 기록됐습니다.

핸슨로보틱스가 제작한 알버트 휴보의 머리 부분(사진: AP=연합뉴스)


최근 중국 유비테크가 발표한 미남, 미녀의 외양을 갖춘 '감성형 로봇'보다 20년이나 앞선 겁니다. 중국 유비테크의 안드로이드 로봇은 공개 열흘 만에 사전 예약만 3천 800대를 넘어서며 안드로이드 로봇 시장'을 확인시켰습니다.

한국형 안드로이드 로봇 '알버트 휴보'는 판매 시장이 형성되기도 전에 너무 빨리 세상의 빛을 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 휴머노이드 개발 초기 빠른 기술 발전의 배경에는 우리보다 한발 앞서 인간형 로봇 개발에 착수한 일본이 있었습니다.

■한국 로봇 탄생의 '땔감'...일본 인간형 로봇 '아시모'

2000년 11월 20일. 일본 도쿄의 혼다 본사. 세계 외신기자들이 몰려든 가운데 혼다의 아시모 로봇이 베일을 벗었습니다.

미국 SF영화 더 라스트 스타파이터(The Last Starfighter)의 장엄한 주제곡에 맞춰 한발 한 발 내딛는 아시모의 발걸음은 달에 착륙한 최초의 인간, 닐 암스트롱과도 닮아 있었습니다.

일본 혼다 아시모 로봇(사진: 혼다,2000년)


시속 1.6km 이하의 느린 걸음이었지만, 혼다의 전작 P3 로봇이 한발 한발 꾹꾹 눌러가며 넘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느낌이었다면, 아시모는 무게중심이 이동하기 전에 이동, 관절 제어, 발 디딤을 더 세밀하게 조정해 물 흐르듯 이어지게 했습니다. 당시 영상을 보면, 최근 공개되고 있는 중국과 미국의 인간형 로봇과 비견될 정도로 걸음걸이가 자연스럽습니다. 1986년 혼다가 로봇 개발에 착수한 뒤 14년 만에 내놓은 성과였습니다.

혼다 회사가 2000년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ASIMO가 ‘보행 예측 기술(predicted movement control)’을 추가해 더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걷도록 했다고 설명합니다. 로봇의 다음 움직임을 예측하고, 그에 맞춰 무게중심을 미리 이동시키는 방식이었습니다.

아시모는 공개와 동시에 세계 산업계와 로봇 연구계를 매료시켰습니다. 자체 배터리, 무선 송수신, 보행·동작 제어 ECU 등을 갖춘 독립형 시스템이 탑재돼 일반 가정과 같은 복잡한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혼다의 전작들이 연구용 플랫폼으로 개발됐다면, 아시모는 처음으로 가정과 산업 현장 적용을 목표로 개발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용화는 쉽지 않았습니다. 혼다 회사는 당시 “아시모 한 대를 조립하는 데 100만 달러 미만이 들었다”고 밝혔는데요. 시 환율로는 11억 원대, 현재 가치로는 29억 원에 달하는 고가였습니다.

2002년 기준으로 단 20대만 수작업으로 한 땀 한 땀 제작된 탓에 판매는 엄두도 못 낸 채 임대만 가능했습니다. 만들긴 만들었지만 가격도 너무 비싸고 팔 곳도 마땅치 않았던 겁니다.

혼다는 2018년 아시모 개발을 중단했습니다.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보다 성능이 뛰어난 2족 보행 인간형 로봇을 개발하는 등 세계 로봇 시장의 경쟁이 격화된 것과 무관치 않았습니다.

■일본을 뛰어넘어라... 늦었지만, 손동작에서 '우위'

“휴머노이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일본의 ‘아시모’ 때문이었어요. 2000년 아시모의 부드러운 움직임에 세계는 충격에 빠졌죠. 저도 그때 ‘일본이라고 외계에서 부품을 가져왔겠나’라는 호기심으로 휴보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준호 전 카이스트 교수(현 삼성전자 로봇단장), 2015년 인터뷰 中

한국 로봇의 아버지로 불리는 전 KAIST(한국과학기술원) 오준호 기계공학과 교수는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착수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일본 아시모의 탄생이 한국 로봇 학계가 한발 늦었다는 자책과 함께 개발에 속도를 내는 땔감이 된 겁니다.

오준호 교수 연구팀은 일주일에 사나흘씩 밤을 새우며 로봇 개발에 열을 올렸지만, 정부의 지원 신청에서는 계속 퇴짜를 맞았고, 기존에 확보해 놓은 연구비 5천여만 원으로 연구를 시작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렇게 2002년 8월 국내 처음으로 개발된 한국 최초의 2족 로봇, KHR-1(KAIST Humanoid Robot platform-1)이 세상의 빛을 봤습니다. 일본 로봇 아시모가 공개된 지 불과 2년 만입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빠른 개발 속도였습니다.

KHR-1은 키 120cm, 몸무게 48kg의 다리와 몸통으로 이뤄진 휴머노이드형 로봇이었습니다. 21자유도를 갖췄고, 머리와 손은 없었습니다. 로봇 몸체를 가릴 케이스조차 없어 회로와 전선이 그대로 드러난 형태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괴상한 형태의 이 로봇을 일부 해외 언론은 'KAIST의 머리 없는 로봇'이라고 불렀습니다.

카이스트 인간형 로봇 KHR-1(2002년)


오 교수는 “간신히 일어나 조금 움직이면 얼마 가지 못하고 부품이 망가져 버렸습니다. KHR-1을 개발하면서 우리나라의 로봇 관련 부품소재 기술이 일본에 비해 20~30년 이상 뒤처져 있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회고했습니다.

개발팀은 KHR-1의 개발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로봇의 개발에 다시 착수했습니다. 머리 없는 로봇에 머리와 팔을 달아 사람의 모습에 가깝게 만드는 게 일차 목표였습니다. 카이스트 산업디자인과 박사과정 학생이 디자이너로 참여해 외관을 다듬었고, 지지대에 의지해 걷던 데서 완전 독립 보행이 가능하도록 기능을 개선했습니다.

KHR-1이 세상의 빛을 본 지 1년여 만인 2003년 12월. 기능과 외관이 대폭 개선된 'KHR-2'이 공개됐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일본 아시모를 따라잡기 위해 만든 휴보가 손동작 하나에서만은 아시모를 넘어섰다는 겁니다.

당시 산업계에는 선도 제품을 구매해 뜯어본 뒤 부품과 시스템을 답습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카이스트 개발팀은 ‘한국형 로봇’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아시모 실물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시모 초기 모델의 손가락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사실상 ‘집게’ 수준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개발한 덕에 'KHR-2'와 업그레이드 버전인 '휴보'는 5개의 손가락이 각각 다 움직이는 더 높은 수준의 기술을 구현할 수 있었던 겁니다.

■미국,중국, 싱가포르 등에 판매... '상업화' 에도 성공

휴보는 키 약 120~125cm, 무게 약 55kg 수준, 시속 약 1.25km 속도로 걸을 수 있었습니다. 눈에는 CCD 카메라 2대가 들어갔고, 배터리는 가슴 안쪽에 배치됐으며, 한 번 충전으로 약 90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카이스트 휴보(KHR-3), 2004년 공개

휴보의 탄생이 우리 로봇 사에서 갖는 의미는 적지 않습니다.

KAIST 자료에 따르면 HUBO2는 최신 버전이 공개된 뒤, 2012년 미국·중국·싱가포르의 대학·연구 기관·민간기업 등에 연구용으로 수출됐습니다. 로봇 플랫폼 가운데 국내에서 처음으로 상업화에도 성공한 사례입니다.

네 발 로봇은 접지점이 많아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지만, 두 발 로봇은 한 발을 드는 순간 균형이 크게 흔들립니다. 그래서 로봇의 무게중심, 발바닥 접지, 관절 토크, 관성, 충격 흡수, 자세 보정이 실시간으로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발을 뗄 수 있습니다. 휴보를 통해 한국은 안정적인 '이족보행 기술'을 확보하게 됐습니다.

시기적으로는 로봇 선도국인 미국과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에서 '한국형 휴머노이드 플랫폼'을 확보했다는 의미도 컸습니다.

그래픽 장정원

휴보의 탄생은 한국 로봇 기술에 대한 세계인의 시각을 바꿔놓는 계기도 됐습니다. 2006년 미국 세계기술평가센터(WTEC)는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한국 로봇 기술을 일본 다음으로 평가했습니다. 미국과 유럽보다도 앞선 순위였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로봇 특별법'을 만든 배경과 한계를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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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 기자 (shiny33@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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