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내가 인턴하면 안 되냐? 인턴할 수도 있잖아!

백수진 기자 2026. 9. 12.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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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백수진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230번째 레터는 16일 개봉하는 영화 ‘인턴’입니다. 요즘 ‘인턴’ 예고편 댓글이 화제입니다. 최민식 배우가 출연했던 영화·드라마 속 명대사들을 ‘인턴’ 버전으로 패러디한 건데요. ‘악마를 보았다’ 대사를 가져와 패러디한 “내가 칼퇴하면 안 되냐? 칼퇴할 수도 있잖아!” “내가 볼 때 사장님은 너무 운이 없는 것 같아” 같은 센스 있는 댓글들이 잇달아 달렸습니다. AI로 만든 패러디 영상까지 나왔더라고요.

로버트 드 니로·앤 해서웨이가 주연한 2015년 동명의 할리우드 영화를 한국판으로 리메이크한 영화입니다. 원작은 70대 인턴과 30대 대표의 세대 초월 만남을 그려, 국내에서 360만명 넘는 관객을 모으며 흥행했죠. 최민식·한소희 배우를 캐스팅해 K오피스로 옮긴 ‘인턴’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이럴 거면 굳이 리메이크할 필요가 있었나 싶네요.

영화 '인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전체적으로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패션 브랜드 ‘WOO22(우투투)’의 대표 선우(한소희)는 창업 3년 만에 100억원대 매출을 올린 능력자입니다. 워커홀릭인 선우는 늘 시간이 부족하고, 머릿속이 일로 가득합니다. 가뜩이나 과부하 상태인데 부대표 영환(김준한)이 세제 혜택을 위해 실버 인턴을 채용하고, 조금 부담스러운 인턴 기호(최민식)가 우투투에 출근하기 시작합니다.

기호는 지도책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37년간 일하다 퇴직한 사회생활 베테랑입니다. 대표 직속 인턴으로 배정된 기호는 막내로 회사 생활을 다시 한번 시작하게 되는데요. 처음엔 아무도 일을 주지 않고 ‘깍두기’ 취급을 받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묵묵히 깔끔하게 처리해내며 선우의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영화 '인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세제 혜택을 위해 실버 인턴을 뽑는다는 설정은 꽤나 한국적이죠. 원작의 줄스는 어린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었지만, 한국판의 선우는 커리어 때문에 아이를 가질지 고민하는 인물로 바뀌었습니다. 기호가 ‘MZ들과 일하는 법’을 검색하면서 ‘영크크’ ‘감다뒤’ 같은 유행어를 배우려는 모습도 나옵니다.

디테일을 한국적으로 바꾸긴 했지만, 보고 나면 ‘왜 한국판 인턴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사회가 격변하면서 세대 갈등이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 한국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그저 서로 유행어를 배우고 컴퓨터 쓰는 법을 도와주는 정도로 겉핥기 식으로 세대 차이를 다루고 넘어갑니다. 겉모습은 한국으로 바뀌었지만, 11년 전 원작의 스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영화 '인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댓글 창이 ‘최민식 유니버스’로 도배될 정도로 작품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 최민식은 이번에는 여유롭고 푸근한 얼굴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기호라는 인물 자체가 지나치게 완벽해서 오래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되긴 어려워 보입니다. 언제나 여유롭고, 젊은 사람들과도 금세 어울리고, 적재적소에 현명한 조언을 건넵니다. 주위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60대라기보다는, 젊은 세대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노년’에 가깝게 보입니다. 원작의 벤도 이상적인 캐릭터이긴 하지만, 은퇴 후 찾아온 쓸쓸함이나 공허함이 좀 더 선명하게 느껴졌거든요. 줄스와 함께하면서 좁았던 그의 세계가 조금씩 넓어지는 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한국판 기호는 이 여정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달라졌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AI로 만든 가상의 ‘인턴’ 예고편이 더 강렬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차무식이나 최익현이 실버 인턴이 된다면 천만 관객도 거뜬했을 텐데 아쉽네요. 11년 전 원작을 가져와 한국에서 만든 영화라면,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판 ‘인턴’은 좋은 배우와 좋은 스토리를 갖고도 그에 대해 충분히 답하지 못했습니다. 따뜻하고 무해하지만, 여운은 남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OTT로 원작을 다시 봤는데, 11년 전 영화임에도 훨씬 재밌더라고요. 원작을 한 번 더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번 레터는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는 세상의 창이고 호수이며 거울. 여러분을 그 곁으로 데려다 드립니다.
그 영화 어때 더 보기(https://www.chosun.com/tag/cinema-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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