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 얼마짜리 컴퓨터를 사야 하는가[IT 칼럼]

2026. 9. 12.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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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전자 제품의 가격을 메모리가 결정하는 시대가 찾아왔다. 원래 메모리란 쉽게 조달할 수 있고, 여차하면 또 다른 업자로 위험 없이 교체할 수 있는 범용 부품이었다. PC 조립할 때를 생각해보면, 삼성 메모리든 하이닉스 메모리든 어디 메모리든 되는 대로 꽂기만 하면 아무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메모리도 다른 범용 원자재처럼 경기를 탔다.

그런데 AI 시대의 메모리는 HBM을 채용한 GPU 등 AI 반도체에서 볼 수 있듯이, 그 고부가가치 최종 반도체 안에 제조 단계부터 박혀 들어간다. 따라서 메모리가 납품되지 않으면 시스템은커녕 칩조차 만들 수 없다. 메모리가 점점 더 권력 핵심부 안쪽에 자리를 잡게 되니 귀한 몸이 된 것도 이해가 간다.

HBM도 PC용 메모리도 결국 같은 공장의 같은 웨이퍼를 잘라 만든 DRAM이다. 어떻게 깎고 잘라낸 후 쌓느냐에 따라 그 실리콘의 운명은 바뀐다. 아무래도 어려운 공정 쪽이 값을 후하게 쳐주기에 HBM 편애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일반 메모리는 뒤로 밀리다 보니 전 산업에 걸쳐 결핍의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램마게돈’은 그렇게 찾아왔다.

메모리는 언제나 다다익선이었고, 시장은 이를 받쳐주었다. 소프트웨어의 방만함은 무어의 법칙이 방어해주기로 돼 있었다. 하드웨어는 늘 더 널널해질 테니, 소프트웨어는 마음 편하게 서둘러 짜라는 잠언을 모두 믿고 따랐다.

그 말대로라면 지금쯤 우리네 PC는 16GB가 최소 기준, 32GB 정도가 국민 램 용량이 돼야 할 터였다. 그러나 세상은 다시 8GB 정도도 쓸 만하다고 조심스레 말을 바꾼다. 애플의 신제품 맥북 네오는 8GB이고, 마이크로소프트도 빠른 윈도 11을 위해서라면 8GB면 충분하다며 조용히 말을 바꾸었다. 대신 정말 8GB라도 충분하도록 급히 윈도 시스템 경량화 및 최적화 작업에 돌입했다. 각종 게임 기업들도 게이머들의 장비가 진보를 멈출 테니 최적화를 최우선 순위에 두었다. 젖은 수건 짜듯 메모리 효율을 짜내야 한다.

중저가 스마트폰이라면 원가의 반절 가까이가 메모리값이 된다. 사업 유지가 힘들 정도의 시절이다. 그러니 PC 메모리도 이제 기본으로 참아야 한다. 바야흐로 대검약 시대다.

그런데 이리 궁상맞은 PC 업계에 부잣집 AI 업계로부터 럭셔리한 풍조가 찾아들기 시작했다. 엔비디아는 올가을 CPU·GPU·메모리 통합 칩으로 PC 시장에 참전 예정이다. 통합 메모리 128GB에 대신 제품 가격은 500만원도 1000만원도 우스울 수 있다. AI를 방안에서 직접 돌리고 싶은 호사가들을 위한 괴물 설비일 듯한데, 엔비디아의 경쟁자 AMD도 비슷한 구성을 내놓았다. 128에 64를 더 얹어서 192GB 구성도 가능하단다.

메모리 8GB도 충분하다고 되뇌며 쓰는 컴퓨터도 있고, 128GB는 돼야 쓸 만하다고 쓰는 컴퓨터도 있다. 양극화 시대다.

우리는 이제 얼마짜리 컴퓨터를 사야 하는가. 누구라도 살 수 있는 몇십만원짜리 컴퓨터 1대면 공평히 꿈을 펼칠 수 있던 시대는 지나간 것인가. 자동차 가격이 오르는 걸 생각하면, 이동의 자유만큼 창작의 자유를 소유하는 건 비싼 일이 된 건가. 그래서 월급의 몇배 정도를 지출하면 되는 건가. AI가 몰고 온 소비의 혼돈은 현재진행형이다.

김국현 과학기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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