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선 여행, 아래선 물류”…4.5m 파도 뚫은 ‘국산 1호’ 타보니[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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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를 걷다 중심을 잃고 벽에 부딪혔다.
3m가 넘는 파도에 몸이 쏠리던 순간부터 바다가 잔잔해진 뒤 가족들이 선내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까지, 이 배에서는 이동과 여행의 경계가 희미했다. 위에서는 아이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팔순을 맞은 어머니들이 여행을 즐겼다.
위에서는 여행이, 아래에서는 물류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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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 355명·컨테이너 254개 동시에…부산~오사카 한 배에 잇는다
해진공 750억 보증으로 건조자금 조달…지난해 4월 한일항로 투입
![한국해양진흥공사의 금융지원을 받아 국내에서 처음 건조된 크루즈페리 ‘팬스타 미라클’호. 해진공은 약 750억원 규모의 채무보증을 통해 선박 건조를 지원했다. [한국해양진흥공사·팬스타그룹 제공]](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12/ned/20260912060225529qywg.jpg)
[헤럴드경제(오사카)=김선국 기자] 복도를 걷다 중심을 잃고 벽에 부딪혔다. 가만히 서 있어도 몸이 한쪽으로 쏠렸다. 지난 6일 오후 2시40분 부산항을 출발해 일본 오사카로 향하던 국산 1호 크루즈페리 ‘팬스타 미라클’호가 마주한 것은 평균 3m가 넘는 거친 파도였다.
![[기상청]](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12/ned/20260912060225768gijb.jpg)
당시 바다가 거칠어진 데는 제24호 태풍 ‘크로반’의 간접 영향도 있었다. 크로반은 한반도에 상륙하지 않았지만 오키나와 부근에서 이례적으로 방향을 여러 차례 바꾸며 이동했다. 제주 해상에는 높은 파도가 일고 풍랑특보가 이어졌다.
2만t이 넘는 거대한 선체도 바다의 힘을 온전히 비켜가지는 못했다. 이날 파고는 최고 4.5m까지 치솟았다. 배가 파도에 밀려 올라갔다 내려앉기를 반복했다. 객실 안에서도 좌우 움직임이 그대로 느껴졌다.
거친 바다와의 씨름은 약 6시간 이어졌다. 오후 8시께 대한해협을 지나자 상황이 달라졌다. 거칠었던 파도가 눈에 띄게 잦아들었고 좌우로 크게 움직이던 선체도 안정을 되찾았다. 불과 몇 시간 사이 같은 배에서 거친 바다와 잔잔한 바다를 차례로 경험했다.
비행기 대신 바다를 건너는 이 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지난해 4월 취항한 팬스타 미라클은 국내 조선소에서 처음 건조된 크루즈페리다. 승객과 화물을 한 배에 싣고 부산과 오사카를 오간다.
![팬스타 미라클호 로비 [팬스타그룹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12/ned/20260912060226073xhhw.jpg)
총톤수 2만2129톤(t) 규모의 배에 올라서면 대형 리조트를 옮겨놓은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102개 객실과 레스토랑, 사우나, 피트니스 시설이 들어섰다. 상부 갑판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이용할 수 있는 야외 수영장도 있다.
![팬스타 미라클호 내부에 마련된 VIP라운지. [팬스타그룹 제공]](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12/ned/20260912060226330mjwg.jpg)
선내에서는 이동 자체를 여행으로 즐기는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두 달간 아시아를 여행 중인 미국인 4인 가족도 그중 하나였다. 오사카와 교토를 여행한 뒤 팬스타 미라클호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는 일정이었다.
이 가족은 “아이들이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과정을 비행기가 아닌 배로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며 “비행기에서는 아이들이 모니터만 보았는데 여기서는 바다도 구경하고 함께 선내를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키즈클럽에서 게임을 즐겼고 가족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라운지에서 함께 식사했다.
울산에서 온 한 가족에게는 이번 항해가 두 어머니의 팔순을 기념하는 여행이었다. 장모와 어머니를 모시고 오사카와 교토를 찾은 이 가족은 고령의 부모가 보다 여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크루즈페리를 선택했다.
울산에서 온 승객은 “바다를 보면서 생각보다 너무 좋아하셔서 뿌듯했다”며 “크루즈를 타는 순간부터 단순히 이동하는 게 아니라 여행을 온 것 같았고, 식사도 맛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두 분과 함께 바다가 보이는 사우나에서 목욕했던 시간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팬스타 미라클호 내부에 마련된 GX룸. [팬스타그룹 제공]](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12/ned/20260912060226620ruzj.jpg)
![팬스타 미라클호 로얄스위트룸. [팬스타그룹 제공]](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12/ned/20260912060226885spuw.jpg)
두 가족에게 팬스타 미라클에서 보내는 시간은 목적지로 가기 위한 이동만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이동 경험을 보여주는 공간이고, 누군가에게는 팔순을 맞은 두 어머니와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여행지가 되는 셈이다.
![팬스타 미라클호에서 바라본 일본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의 야경. 요코하마 코스모월드의 대관람차 ‘코스모 클락 21’이 불을 밝히고 있다. [김선국 기자]](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12/ned/20260912060227122rxir.jpg)
거친 바다에 대비한 기술도 적용됐다. 팬스타 미라클에는 파도에 따른 좌우 흔들림을 줄이는 ‘핀 스태빌라이저’가 설치돼 있다. 선체 양쪽의 날개 형태 장치가 배의 좌우 움직임을 줄여 운항 안정성을 높인다.
비상 상황에 대비한 ‘안전귀항(SRtP)’ 시스템도 적용됐다. 선박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해도 자체 동력으로 가까운 항구까지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된 안전장치다. 추진 방식에는 연료 사용량과 배출가스를 줄이기 위한 하이브리드 기술을 적용했다.
승객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여행을 즐기는 동안 몇 층 아래에서는 전혀 다른 여행이 진행된다. 사람 대신 컨테이너와 자동차가 국경을 넘는 ‘물류의 여행’이다.
![팬스타 미라클호 선내 레스토랑에서 바라본 바다. [팬스타그룹 제공]](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12/ned/20260912060227347ibln.jpg)
팬스타 미라클은 최대 355명의 승객뿐 아니라 20피트짜리 컨테이너 254개(TEU)와 승용차 18대를 함께 실을 수 있다. 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를 세는 단위다. 수영장과 객실이 있는 위쪽 공간만 보면 크루즈지만 아래에는 컨테이너와 자동차를 싣는 화물공간이 자리한다. ‘바다 위 호텔’과 화물선이 한 배 안에 공존하는 셈이다.
팬스타 미라클이 오가는 한일항로는 물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올해 상반기 한일항로 컨테이너 물동량은 112만3364TEU였다. 이 가운데 약 68%는 한국 항만에서 다른 배로 옮겨 실은 뒤 제3국으로 향하는 환적화물이다. 일본에서 출발한 화물이 부산항 등을 거쳐 세계 각지로 이동하는 물류망의 연결고리인 셈이다.
사람과 화물을 함께 싣는 이 거대한 배를 띄우는 데는 금융의 힘도 필요했다. 팬스타 미라클의 선가는 7050만달러다. 팬스타가 자기자본 20%인 1410만달러를 부담하고 나머지 80%인 5640만달러를 금융기관에서 조달했다.
![팬스타 미라클호 조타실에서 승무원이 운항 상황을 살피고 있다. [한국해양진흥공사 제공]](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12/ned/20260912060227621hzfs.jpg)
국내에서 대형 크루즈페리를 건조한 전례가 없어 민간 금융만으로 건조자금을 마련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한국해양진흥공사는 금융기관에서 조달한 자금의 95%인 최대 5358만달러, 약 750억원을 채무보증했다. 정책금융이 신용을 보강하면서 대규모 선박 건조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해진공은 2022년 12월 건조자금에 대한 달러화 채무보증을 지원했다. 건조를 마친 팬스타 미라클은 지난해 4월 인도돼 부산~오사카 항로에 투입됐다.
![부산항을 출발한 팬스타 미라클호가 일본 오사카항에 도착해 정박해 있다. 왼쪽에는 팬스타가 운송하는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김선국 기자]](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12/ned/20260912060227850xafm.jpg)
7일 아침 팬스타 미라클호가 오사카항에 닿았다. 전날 오후 8시께 대한해협을 지난 뒤 잔잔해진 바다를 달려 일본에 도착했다. 부산에서 함께 출발한 승객뿐 아니라 컨테이너와 차량도 밤사이 바다를 건넜다.
3m가 넘는 파도에 몸이 쏠리던 순간부터 바다가 잔잔해진 뒤 가족들이 선내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까지, 이 배에서는 이동과 여행의 경계가 희미했다. 위에서는 아이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팔순을 맞은 어머니들이 여행을 즐겼다. 그 아래 화물공간에서는 컨테이너와 차량이 승객들과 같은 바다를 건넜다.
위에서는 여행이, 아래에서는 물류가 움직였다. 거친 파도를 넘어 부산과 오사카를 잇는 2만2129t짜리 팬스타 미라클의 ‘두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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