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의 시선] 헌법의 수호자, 폴 디디에 판사

모성준 고법판사(사법연수원 교수) 2026. 9. 12.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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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론은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는 공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권력을 나누어서 견제와 균형을 도모할 수 있다거나, 법률로 권력의지를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이 현실에서 구현되려면 권력자가 헌법의 객관적 의미를 넘어서려 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헌법을 지켜낼 수호자가 필요했다.

그때그때 다를 수 있다고, 이번에는 헌법 문언의 객관적 의미를 넘어서도 된다고 말하는 자들이 모여 있는 '권력자의 지배'의 반대편에서, 제아무리 독재 권력이라도 헌법 문언의 객관적 의미를 넘어설 수 없다며 이에 맞설 수 있는 판사의 용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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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원수에게
모두 충성할 때
‘하수인’ 되기
혼자 거부한 기개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론은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는 공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권력자의 권력의지를 기껏 종이에 적힌 법률 문언에 가둘 수 있다는 발상부터가 그렇다. 기분에 따라 법을 뒤집고 바른말 하는 사람을 숙청하는 것이 일상이던 자들을 상대로 말이다. 대권(大權)을 억지로 셋으로 쪼개 서로 다른 기관에 맡기면 충돌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이 나온다는 발상도 마찬가지였다. 인류의 역사와 권력의 속성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허무맹랑한 소리라 여겼을 법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공상과도 같은 이론을 헌법상 원칙으로 채택해 권력의지를 통제해 보겠다는 나라들이 생겨났다. 1787년 미국은 행정, 입법 및 사법부의 권력분립을 핵심 원칙으로 삼는 헌법을 만들고, 1789년 연방정부를 출범시켰다. 1789년 혁명으로 구체제를 무너뜨린 프랑스 또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통해 "권리보장이 확보되어 있지 않고, 권력분립이 규정되어 있지 아니한 사회는 헌법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권력을 나누어서 견제와 균형을 도모할 수 있다거나, 법률로 권력의지를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이 현실에서 구현되려면 권력자가 헌법의 객관적 의미를 넘어서려 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헌법을 지켜낼 수호자가 필요했다.

그런데 헌법을 수호해야 할 양국의 법원은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프랑스 법원은 혁명정부와 제국을 거치며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판사들로 채워졌으며, 독립된 권력이 아니라 '법의 입'으로만 기능했다. 이후 나치 독일에 협력한 비시 정권 시절, 법원 내에 공산주의자를 처벌하기 위한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판사들에게 충성맹세가 강요되었을 때 이를 공개적으로 거부한 판사는 폴 디디에 단 한 명뿐이었다. 그가 파면당하고 수용소에 수감되었을 때, 국가원수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 대다수의 판사들은 법률가로서의 양심을 버리고, 소급효금지원칙에 반하는 법률을 적용하여 레지스탕스 대원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유대인지위법을 앞세워 동료 판사들을 법정에서 몰아낸 것도 그들이었다. 프랑스 법원은 '권력자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했기에 이후 제대로 된 권력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 결과 사법부 수장인 파기원장은 공식 의전서열상으로 하원의원 577명, 상원의원 348명 등 1,000여 명의 뒤에서야 자신의 서열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반면, 대서양 건너 미국의 법원은 완전히 상반된 역사를 걸었다. 연방대법원은 대통령이 국가 안보나 비상사태를 들어 헌법의 한계를 넘어서려 할 때 굴복하지 않았다. 연방대법원은 1952년 영스타운 철강회사 대 소이어 사건에서 대통령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제철소를 징발한 조치를 위법하다고 판단했고, 1974년 미국 대 닉슨 사건에서 권력의 일탈에 단호한 입장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연방대법원은 대통령이라도 헌법과 법률을 넘어설 수 없다는 '법의 지배' 원칙에서 물러서지 않았고, 이는 미국이 권력자의 변덕에 휘둘리는 것에서 벗어나, 예측 가능성과 합리성에 기반한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프랑스와 미국 법원의 역사는 공상에 불과할 수 있었던 헌법을 살아 있는 규범으로 만드는 힘이 권력에 맞서는 판사의 용기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때그때 다를 수 있다고, 이번에는 헌법 문언의 객관적 의미를 넘어서도 된다고 말하는 자들이 모여 있는 '권력자의 지배'의 반대편에서, 제아무리 독재 권력이라도 헌법 문언의 객관적 의미를 넘어설 수 없다며 이에 맞설 수 있는 판사의 용기 말이다. 1941년 파리 법원 청사에서 다른 판사 모두가 손을 들어 페탱에 대한 충성을 맹세할 때 손을 들 수 없었던,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부당한 지시에 따르는 것은 판사의 책임에 대한 배신'이라는 신념을 버리지 못하고 외롭게 그 자리에 서 있던 폴 디디에 판사. 우리가 헌법의 수호자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그런 판사뿐이다.

모성준 고법판사(사법연수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