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철의 문향 오디세이] 청주에서 만난 방혜자

고승철(언론인·저술가·전 동아일보 출판국장) 2026. 9. 12.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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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청주대 입구까지 가는 데는 100분이 걸린다. 거기서 10분 걸어가면 우뚝 솟은 청주 국립현대미술관이 나타난다.

서울대 미대에 다닐 때 이응노, 김병기, 유영국 등 대가들에게서 배운다.

청주 특별전에 나온 대표작은 '하늘의 땅'(2011년 작)으로 지름 179㎝의 원형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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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청주대 입구까지 가는 데는 100분이 걸린다. 거기서 10분 걸어가면 우뚝 솟은 청주 국립현대미술관이 나타난다. 품격 있는 미술관인데다 의미 있는 기획전시회가 자주 열리기에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가끔 찾는다.

오는 9월 27일까지 열리는 '빛의 화가' 방혜자(1937~2022) 개인전은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유현(幽玄)한 우주를 표현한 여러 그림들이 눈길을 끈다. 프랑스에서 거장으로 손꼽히는 방 화백의 작품 67점과 일기장, 편지, 경기여고 졸업앨범 등 자료 2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방 화백에 대한 찬사를 쓴 육필 원고지도 보인다.

그녀는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기에 한국에서는 덜 알려진 화가이다. 프랑스의 유서 깊은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할 정도로 현지에서는 대가로 인정받았다. 2024년 6월 현대미술의 메카인 퐁피두 센터에서 방혜자 회고전이 열렸다. 화가로서 세계 정상급 성취를 이루었다는 증거이다.

필자는 신문사 파리특파원 시절에 방 화백을 몇 차례 만나 인터뷰하고 식사를 함께했다. 아담한 체구에 화장기 없는 얼굴은 수녀 또는 여승(女僧) 분위기를 풍겼다. 차분한 말투에서 삶을 달관한 풍모가 비쳤다. 세월이 흘러 그녀와 나눈 대화는 세세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빛, 우주를 화두로 삼아 그림에 정진한다"는 발언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그녀는 1937년 7월 5일 경기도 고양군 능동(현재 서울 광진구)에서 7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외조부가 서예가, 화가여서 미술 재능을 물려받은 듯하다. 1945년 4월 소학교(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처음 몇 달은 일본어로 교육받았다. 그해 8월 광복을 맞으며 9월부터는 한국어로 배웠다. 1954년 경기여고에 입학해 미술반에 들어간다. 미술교사 김창억의 인솔로 경주를 여행하며 신라 불상에 관심을 갖는다.
방혜자, 〈하늘의 땅〉(2011), 지름 179cm,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대 미대에 다닐 때 이응노, 김병기, 유영국 등 대가들에게서 배운다. 1960년 4·19혁명 때 시위에 참여한 친구가 피살돼 큰 충격을 받는다.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를 하는 계기가 됐다. 1961년 2월 대학을 졸업하면서 첫 개인전을 열고 판매수익으로 파리행(行) 항공권을 샀다. 국비 유학생 1호로 프랑스에 가 이응노 화백 부부와 재회하고 국립고등미술학교에 등록한다. 남동생 방훈이 바이올린을 공부하러 파리에 와 남매가 공동작업실을 마련한다.

미술평론가 피에르 쿠르티옹(1902~1988)이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1967년 휴스턴브라운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도록 주선해 준다. 그해 그녀는 한국민속학을 연구하는 인류학자 알렉상드르 기유모즈(1941~2021)와 혼인한다. 남편은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과 파리7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했다. 소설가 권지예 박사는 파리7대학에서 그의 강의를 들었다.

방 화백은 1971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한지를 재료로 활용하기 시작한다. 1980년 파리에서 개인전을 가졌을 때 평론가 쿠르티옹은 도록 서문에 '그녀의 그림에서 땅, 공기, 불을 본다. 그 신성한 불은 그녀의 마음속에 있다'고 썼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우주의 성운(星雲)을 연상시키는 원형을 즐겨 그린다. 이 작품을 본 천문학자들이 "과학자가 첨단 망원경으로 관찰한 우주를 예술가가 직관으로 포착했으니 경이롭다"고 평가했단다. 1993년 10월 파리 클라크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 이런 그림들이 다수 전시됐다. 그때 관람하러 간 필자에게 그녀는 "네팔, 인도를 여행하고 우주, 윤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청주 특별전에 나온 대표작은 '하늘의 땅'(2011년 작)으로 지름 179㎝의 원형 그림이다. 캔버스에 닥종이를 으깨어 붙여 천연 안료로 색칠했다. '원(圓)에 무한이 담겨 있다'는 화가의 신념을 표현했다.

방 화백은 매일 새벽에 일어나 기공체조를 한 후 순면 옷을 입고 방바닥에 캔버스를 펼쳐 놓고 작업했다. 구도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가 동영상에서 남긴 발언이 귓가에 맴돈다.

"어둠과 재난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는 빛이 필요해요. 색을 더한다는 건 평화, 균형, 기쁨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에요."

고승철(언론인·저술가·전 동아일보 출판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