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우스 집에 올 때 깐깐한 관객도 돌아왔다

2026. 9. 12.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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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필름 IN] 2026 극장가 다시 활기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돌아왔다. 관객도 극장으로 돌아왔다. 며칠 전 극장에 갔다가 과거의 영광을 다시 느꼈다. 극장에 사람이 많았다. 극장은 언제나 사람이 많은 곳 아니었냐고? 아니다. 지난 몇 년간 극장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나는 많은 매체에 비슷한 제목의 칼럼을 썼다. ‘극장은 망하는가’ 혹은 ‘영화 산업은 이걸로 끝인가’ . 물론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쓴 글들이다. 그때는 모두가 극장이 곧 망할 줄 알았다. 독자 여러분도 그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오디세이’
2025년은 할리우드도 한국영화도 붕괴 직전이었다. 지난해 미국 박스 오피스 1위는 ‘주토피아 2’였다. 북미 성적은 4억 달러 남짓. 10위인 ‘드래곤 길들이기’가 2억6000만 달러였다. 10위권 영화들이 모두 고만고만했고, 압도적 흥행작은 없었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불과 재’도 전작에 미치지 못했다. 수퍼히어로 장르인 DC의 ‘슈퍼맨’과 마블의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은 수퍼하지도 판타스틱하지도 않았다.

할리우드는 그래도 선방은 했다. 한국은 참사 직전이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한 ‘주토피아 2’는 770만 명이 봤다. 천만 영화는 나오지 않았다. ‘아바타’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도 죽을 쒔다.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지킨 건 560만 명이 본 ‘좀비딸’이 유일했다. 그나마 한국 극장을 지킨 건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과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이었다. 각각 570만과 340만을 기록했다. 최근 일본은 새로운 ‘고질라’ 시리즈도 그렇고, 옛 IP로 야금야금 조용히 돈을 잘 벌고 있다.

2025년엔 누구나 “극장은 망했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요즘 극장은 바글바글하다. 극장에 사람이 이토록 많은 건 오랜만이다. 물론 두 편의 압도적인 블록버스터 덕분이다. ‘오디세이’와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다. 전 세계 10억 달러 흥행을 넘어선 두 영화는 한국에서도 함께 천만을 넘어가는 중이다. ‘오디세이’는 ‘인터스텔라’에 이어 크리스토퍼 놀런의 두 번째 천만 영화가 됐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전성기 마블 영화의 영광을 되찾았다. 곧 900만을 넘어 천만 관객에 돌입할 예정이다.

2025년 상반기 북미 박스 오피스는 59억 달러를 벌었다. 2026년 상반기는 21%나 오른 72억 달러다. 2025년 상반기 한국 극장 관객 수는 4250만 명이다. 올해는 34%나 오른 5705만 명이다. 한국 반등 폭이 미국보다 크다. 2025년은 누구나 ‘극장은 망했다’라고 한탄할 만했다. 2024년보다 관객이 14%나 감소했다. 그래프는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영진위(KOFIC)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한국영화 매출은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거의 회복했다. 2025년이 한국 극장 산업의 종말을 예견하게 만들었다면, 2026년은 언제나처럼 예견은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증명한 해가 됐다.

대체 무엇 때문인가. 지난해가 너무 나빠서 상대적으로 좋아 보일 뿐이라는 사람도 있다. 물론이다. 아직 극장이 코로나 팬데믹 이전으로 완벽하게 부활했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이미 나는 지난해에 극장이 망한다고, 한국 영화 산업이 위기라고 여기저기서 떠들었지만 어긋난 예측이었다. 올해 예측도 어긋날지 모른다. 어쩌겠는가. 박스 오피스라는 게 그렇다. 반도체나 자동차 산업처럼 서서히 올라가고 서서히 내려가는 산업이 아니다. 매해 개봉하는 영화의 예측 불가능한 성적에 달려 있다.

‘왕과 사는 남자’
올해 한국 극장가를 살린 것은 몇 편의 압도적인 기록이다. 천만을 넘어선 ‘왕과 사는 남자’ ‘오디세이’, 천만으로 달려가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각각 600만과 450만을 기록한 ‘군체’와 ‘호프’다. 미국 역시 ‘오디세이’와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가 박스 오피스를 이끌고 있다. 기쁘지만 불안한 지점이다. 결국 극장가 부활은 압도적으로 거대한 영화 몇 편의 역사적인 성공에 기대고 있다는 이야기라서다. 크리스토퍼 놀런은 내년에 신작을 내놓지 않을 것이다. 한 편 한 편 장인의 손길로 천천히 만드는 감독이다. ‘스파이더맨’도 내년에 속편이 나오진 않는다. 올해 하반기 마블이 그토록 공을 들인 ‘어벤져스: 둠스데이’가 또다시 극장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겠지만, 마블도 요즘 그렇게 희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어벤져스: 둠스데이’
그래도 희망이 보인다. 어째서냐고? 독자 여러분은 올해 몇 번이나 극장을 찾으셨는가. 내 어머니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어머니는 극장에 자주 가는 분은 아니다. 한국 노년 관객이 그렇듯이 극장이 주요 놀이터는 아니다. 올해 나는 어머니 전화를 몇 번이나 받았다. “‘왕사남’ 재미있어?”가 시작이었다. 어머니는 친구분들과 함께 오랜만에 극장으로 놀러 가 ‘왕사남’의 1600만 관객 중 한 명이 됐다. 어머니는 또 전화를 하셨다. “‘호프’는 재미있나?” “‘오디세이’는 아이맥스에서 봐야 한다며?” 어머니는 ‘호프’는 지나치셨다. 그녀가 견딜 만한 영화는 아니었을 것이다. ‘오디세이’는 보셨다. 어머니 세대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기다렸다가 극장에 보러 가는 경우는 잘 없다.

교훈은 간단하다. 관객은 극장을 떠난 게 아니다. 그저 극장에 가서 아무 영화나 보는 습관을 완전히 버린 것이다. 팬데믹 이전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극장에 갔다. 큰 영화가 매진이면 중간 영화를 봤다. 중간 영화가 매진이면 작은 영화를 봤다. 뭐라도 봤다. 극장은 자연스러운 놀이터였다. 팬데믹은 사람들 습관을 완전히 바꿨다. 극장가뿐만이 아니다. 먼 훗날 역사책은 2019년 이후 몇 년간을 ‘인류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완전히 변화시킨 역사적 시기’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영화와 극장 산업에 있어서 2025년은 인류의 영화 관람 습관이 붕괴된 해로 기록될 것이다.

가장 크게 붕괴된 건 플랫폼이다. 2025년 할리우드와 한국 최고 흥행작이 뭐라고 생각하시는가.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다. 지금까지 누적 6억 뷰를 돌파,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이 본 오리지널 영화가 됐다. 2025년 세계 박스 오피스를 다루며 오로지 극장 매출에만 매달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이야기하지 않는 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짓이다. 극장 박스 오피스가 매해 영화의 대중적 규모를 측정하는 유일한 잣대이던 시대는 2025년에 확실히 종말을 맞이했다.

이게 무슨 의미냐고? 극장 산업은 팬데믹 이후 부침을 겪었지만, 콘텐트로서 영화는 죽은 적이 없다는 의미다. 사람들은 영화에 질린 것이 아니라 극장으로 가는 습관을 바꾼 것이다. 극장에 가지 않아도 그해 최고의 영화를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면 넷플릭스가 극장 관객을 모조리 흡수하지 않겠느냐는 걱정이 남는다. 아직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넷플릭스가 큰돈을 베팅한 자사 플랫폼용 블록버스터 영화는 대부분 망했다. 퀄리티가 아직 극장용 블록버스터를 따라잡질 못하고 있다. 디즈니, 유니버설, 파라마운트 등 전통의 강자들에게 아직 기회가 있다는 이야기다.

2026년은 그런 기회가 되살아난 해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극장에 가는 버릇은 버렸지만,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에 대한 열망은 버리지 않았다. 2025년에는 굳이 극장에 가고 싶어지는 영화가 없었다. 2026년에는 그런 영화가 되살아났다. ‘왕사남’은 지난 천만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입소문’의 힘을 되살렸다. 한국 영화는 세대를 넘어서는 입소문의 화력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나 다름없다. 그 화력이 아직 살아 있다면 미래의 한국 영화에도 기회는 있다. 사람들이 ‘오디세이’를 어떻게든 더 나은 스크린으로 보기 위해 암표를 사고 있는 현상도 흥미롭다. 영화관에서 암표라는 말을 대체 언제 마지막으로 들었는지 기억도 잘 나질 않는다. 아마도 1990년대 초였을 것이다. 관객은 극장을 버리지 않았다. 다만, 더 깐깐하게 선택하기 시작했다.

로코·드라마 장르 등 ‘중간급’ 실종
‘오디세이’와 ‘스파이더맨’ 흥행으로 최근 다시 활기를 띠고 있는 영화관 풍경. [뉴스1]
문제는 중간급 영화다. 대형 영화는 살아나고 있다. 독립 영화는 조용히 전진하고 있다. 중간급 영화는 길을 확실히 잃었다. 중간급 영화는 개봉 후 티브이로, 혹은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으로 봐도 충분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올해 박스 오피스 20위권 안에 중간급 영화라고 할 만한 건 거의 없다. 그 영역을 장악하던 로맨틱 코미디나 드라마 장르는 거의 사라졌다. 어쩌면 지금 전 세계 극장가는 팬데믹 이후 또 한 번의 개편을 경험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꼭 극장에서 봐야 할 거대한 블록버스터와, 기대하지 않은 입소문이 터진 작은 영화들(이를테면 ‘왕사남’이나 ‘살목지’ ‘백룸’ ‘옵세션’ 같은 독립 영화 규모의 호러 영화들)이 앞으로의 극장가를 이끌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결국 바뀐 것은 없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을 보러 간다. 너무 평범한 결론 아니냐고? 아니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을 보러 간다. 다만, 보고 싶은 것을 예전보다 훨씬 더 깐깐하게 선택하기 시작했다. 올해 미국도 한국도 개봉작 수는 적었다. 2019년 미국 여름 와이드 릴리즈 영화는 44편이었다. 올해는 33편이다. 그럼에도 매출은 훨씬 높아졌다. 영화를 많이 만들어 많이 풀어서 돈 버는 시대는 끝났다. 극장용 영화에 있어서 선택과 집중이 지금처럼 중요했던 시절은 없었다. 극장은 아직 살아 있다. 관객은 그걸 안다. 만드는 사람들만 깨달으면 된다.

김도훈 영화평론가, 작가, 칼럼니스트. 영화 주간지 〈씨네21〉 기자, 온라인 미디어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지냈다.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 합시다』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 『낯선 사람』 『나의 충동구매 연대기』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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