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하신 표현께서 나오셨습니다, 시비 걸지 마세요”

한성우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2026. 9. 12.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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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한성우의 요즘 이 말]
사물마저 존대하는 높임법 폭주
‘압존’ 가고 ‘막존’이 온 이유는
서울 시내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생들이 손님이 주문한 음료를 준비하는 모습. 서비스 현장에서는 ‘커피 나오셨습니다’ 같은 사물 존대 표현이 흔히 쓰인다. /뉴스1

“아가씨, ‘주문한 커피 나오셨습니다’가 뭐야. 커피가 나보다 높아?”

한 커피숍, 높일 것과 낮출 것을 가리는 압존(壓尊)의 시대를 살아온 고희의 어르신이 무엇이든 마구 높이는 ‘막존’의 시대를 사는 방년의 ‘알바생’에게 호통을 치신다. 이른바 ‘사물 존대’를 둘러싼 촌극이다. ‘이 상품은 품절되셨습니다’와 같은 사물 주체 높임 표현에 대해 국립국어원이 지난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7.1%가 자연스럽지 않다고 답했으니 어르신의 말씀이 옳은 듯하지만 현실에서 압존은 사그라들고 막존은 확산일로에 있다.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손님’은 없고 ‘고객님’만 있다. 이들이 파는 옷은 고객님에게 잘 ‘어울리셔야’ 하고 커피는 ‘나오셔야’ 한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됐을까? 이러한 표현의 기원은 흔히 ‘간접 높임’이라 일컬어지는 ‘선생님의 따님이 참 예쁘시네요’나 ‘할아버지는 수염이 많으시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선생님과 할아버지를 높이려는 의도에서 결과적으로는 ‘따님’과 ‘수염’을 높이는 ‘시’를 쓴 경우이다. 둘 다 어색할 수도 있지만 ‘따님’은 사람이니 조금 낫고, ‘수염’ 또한 할아버지의 일부이니 받아들일 만하다.

그런데 이 높임법이 폭주하기 시작한다. 사람이나 신체의 일부가 아닌 사물, 즉 요금·상품·옷·커피 등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작은 1970년대 이후의 호칭 인플레이션과 고객 만족 서비스에 있다. ‘손님은 왕’이라는 구호 아래 남자 손님은 ‘사장님’으로, 여자 손님은 ‘사모님’으로 부르게 된다. 이 호칭이 시장통에서도 흔하게 들리게 되니 ‘손님’을 ‘고객님’으로 바꾸고 이 고객님과 관련된 모든 것에 높임의 ‘시’를 붙이기 시작해 모든 서비스 업종에 급속도로 퍼져 나간다.

이러한 사물 존대의 어색함과 거북함은 거의 모든 이들이 알고 있다. 이런 표현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국어학자는 물론 말에 대해 까다로운 시각을 가진 이들이 수없이 지적해 왔기 때문이다. 신문 기사에서는 상술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했고 신문 사설에서는 사람을 기계적으로 대하는 ‘암묵의 적의’라고까지 몰아세웠다. 이러한 지적의 결과인지 지난해 국립국어원 조사에서는 국민의 93.3%가 이러한 과도한 높임 표현을 개선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거의 모두가 알고 있고, 나아가 개선해야 한다고 하는 이 표현은 확산일로에 있다. 이 표현에 대한 첫 조사에서 부정적인 인식이 2010년에는 54.9%였는데 2025년에는 67.1%로 증가했다. 2012년에 실시된 조사에서 휴대전화 콜센터 상담사의 86%가 이 표현이 잘못된 것임을 알지만 69%가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결국 이 표현이 잘못된 것을 몰라서 쓰는 것은 아니다. 이 표현을 쓰도록 교육받았다는 이는 0.8%도 되지 않으니 업체의 강요 때문도 아니다.

“교수님, ○○님께서 아프셔서 오늘 수업에 못 나오신대요." 대학 수업에서 출석을 불렀을 때 들려오는 이 대답은 압존법의 종말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물 높임 표현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할아버지, 아버지는 밥 안 먹는대요’와 같이 말하는 이가 문장 속의 주체와 듣는 이 사이의 관계를 고려해 높임을 조절하는 것을 뜻하는 이 압존법은 이제 거의 사라져 가는 단계다. 복잡한 관계를 따질 것도 없이 높여야 할 대상이라면 무조건 높이고 보는 상황인 것이다.

압존의 시대가 가고 ‘막존’의 시대가 왔다. 높임법이 어렵고 잘못 사용했다가는 시빗거리가 되니 마구 높이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기준은 간단하다. 말을 듣는 이나, 말 속에 등장하는 이 모두를 높이는 것이다. 나아가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나 아닌 모든 것을 높이면 어떤 시비로부터든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사장님, 대표님, 고객님이라고 불린 상대가 싫어하는 경우는 없는데 ‘커피 나왔어요’라고 하면 자신을 대접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상황이 됐으니 더욱더 그렇다.

말은 들으라고 하는 것이니 모든 기준은 듣는 이에게 맞춰진다. 듣는 이를 높이기 위해 쓰인 간접 높임이 사물 높임으로까지 나아가다가 급기야 ‘주문하신 커피께서 나오신’ 상황이 됐다. 이래야 듣는 이가 만족하고 어색해도 대접을 받는 느낌이니 자신이 그렇게 말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잘못인 줄 알지만 쓰게 된다. 주문하신 표현께서는 그렇게 나와서 퍼져 나갔다. 그리고 머잖아 바른 어법으로 자리를 잡을지도 모르니 탓하지만 말고 익숙해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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