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이어 근로자 추정제 논란

김아사 기자 2026. 9. 12.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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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프리랜서 등 독립 사업자
분쟁 땐 근로자 판단… 혼란 예고
정부가 개인 사업자인 보험설계사, 배달기사 등을 근로자로 간주하는 ‘근로자 추정제’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 시작 전 ‘노동계 추천’ 근로자위원이 ‘특고(특수형태근로종사자)·플랫폼 (노동자) 적정 보수’ 등의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고 국민의례를 하는 모습이다.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스1

독립 사업자 성격을 갖는 프리랜서 등을 근로자로 우선 판단하는 ‘근로자 추정제’ 입법안이 국회 소관 상임위에 상정된 데 이어 정부가 올해 내 입법 완료를 공언하자, 산업계를 지탱해 온 기존 고용·계약 질서가 뿌리부터 흔들릴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사용자성 전쟁’을 치르고 있는 기업 입장에선 ‘근로자성 전쟁’이란 이중고를 겪게 되는 셈이다.

최근 A 보험사는 자사와 위촉 계약을 맺고 일하는 보험 설계사들의 업무 방식을 조사하고 있다. 보험 설계사는 보험 가입자 유치 성과에 따라 회사에서 수수료를 받아가는 독립 사업자다. A사는 이들이 정기적으로 회사의 업무 내용을 공유하거나 출퇴근 지시를 받는 경우가 있는지 확인했다고 한다. ‘근로자 추정제’ 입법안이 통과되면, 이럴 경우 보험 설계사들이 A사의 ‘근로자’로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퇴직금, 연장·야간·휴일 근로 수당 등을 지급해야 해 선제적으로 점검에 나선 것이다.

현행 법 체계에선 사업자 성격을 가진 보험설계사·배달기사·골프장 캐디, 프리랜서 등 노무제공자가 법적 보호를 받으려면 자신이 근로자임을 직접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근로자 추정제가 도입되면 공수가 뒤바뀐다. 민사 분쟁에서 이들을 우선 근로자로 추정하고, 사업주가 직접 근로자가 아니라는 걸 입증해야 한다. 노무 제공자가 근로자가 된다는 건 기업들이 퇴직금, 주휴 수당, 연장·야간·휴일 근로 수당 등을 줘야 한다는 뜻이다.

◇기업들 ‘사용자성’ 이어 ‘근로자성’까지 다퉈야할 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올해 내 ‘근로자 추정제’를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올해 내 입법이 완료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근로자 추정제 입법의 가장 큰 문제는 노란봉투법처럼 법 조항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사실상 ‘정부안’으로 불리는 김주영 민주당 의원의 발의 법안 등엔 근로자로 추정하기 위한 요건이나 기업이 이를 뒤집기 위해 무엇을 어느 정도 입증해야 하는지 등이 명확하게 담기지 않았다. 법안은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을 근로자로 추정한다고 돼 있다. 이럴 경우 전문직이나 소득이 매우 높은 개인 사업자도 기업과 일한다는 이유로 근로자로 분류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반대로 기업이 근로자가 아님을 입증하는 반증 요건은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다. 현행 법률 체계에서 ‘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보다 ‘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 훨씬 까다롭기 때문이다. “특정한 시점이 아니라 기간 전체, 법률 관계 전반에 걸쳐 ‘근로자가 아니었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 만큼 기업들이 매우 어려운 법률 책임을 지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벌써부터 대형 로펌 등에는 “업무 지시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되는 것이냐” “출퇴근 시간과 장소를 통제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냐” “프리랜서가 다른 업체와 자유롭게 거래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하는 것이냐” 등의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회사가 업무 수행 방법을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까지 입증해야 하는지 등을 현재로선 전혀 알 수가 없다”며 “예측 가능성이 제로(0)인 상태라 현장에 극도의 혼란이 우려된다”고 했다.

프리랜서와 일하는 경우가 많은 플랫폼, 금융, 방송, IT(정보기술), 교육 업계 등에선 근로자성 확대를 대비해 일부 직무 자체를 재설정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표적인 게 보험 업계다. 보험 업체의 지점장, 팀장은 통상 설계사의 영업 실적을 관리하고 회의나 교육을 진행하는 등 설계사에 대한 관리자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근로자성 인정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영업 지원, 정보 제공만 하는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 명의 근로자성 인정이 비슷한 방식으로 일해 온 설계사들의 집단적인 임금·퇴직금 청구로 이어질 수 있는 게 문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보험 설계사 수는 71만명 가량인데 근로자 추정제에 따라 보험 업체들이 조 단위 추가 부담을 해야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골프장 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 등은 최근 근로자 추정제 관련 대응 전략을 논의하는 회의를 열었고, 이 자리에서 캐디 없이 골프를 치는 ‘노 캐디 라운드’ 확대 등 골프 문화 자체가 바뀔 가능성에 대한 의견도 오갔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근로자 추정제와 노란봉투법이 결합할 때 발생하는 ‘연쇄 폭발’ 효과다. 기업 입장에선 근로자인지를 따지는 분쟁뿐 아니라, 직접 근로 계약을 맺지 않은 원청이나 플랫폼 사업자까지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하는지를 따지는 분쟁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원청·플랫폼 기업은 직접 채용하지 않은 수만 명 프리랜서에 대한 임금 인상 요구 등을 마주할 수 있다.

민주당과 정부가 근로자 추정제를 민사 소송에서만 적용하겠다고 하지만, 형사 책임 문제로 비화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기업이 특정 노무 제공자를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해 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 임금 체불을 처벌하게 돼 있는 근로기준법 위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후에 근로자로 추정되고 기업들이 뒤집지 못하면 민사상 지급 책임뿐 아니라 형사 책임도 질 수밖에 없다”며 “기업들 입장에선 분쟁을 피하기 위해 프리랜서 직접 계약을 줄이고 업무를 아예 외부 업체에 넘기는 방법을 택하게 돼 결국 영세 프리랜서들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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