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할 수 없는 고소함, 바삭함
[정동현의 pick] 해물파전
학원을 가야 하는데 어머니가 파전을 부쳤다. 고소한 냄새가 온 집 안에 퍼졌다. 신발을 신고 가방을 챙겨서 현관 앞에 앉았을 때 어머니가 파전 몇 장을 포개어 가지고 왔다. “이거 먹고 가.” 나는 현관 앞에 주저앉아서 파전을 먹기 시작했다.
재료라고 해봤자 부추와 양파, 오징어, 돼지고기 몇 점뿐이었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긁어모아 만든 파전이었지만 바삭한 가장자리가 씹히고 부드러운 안쪽 부분이 입안에 부딪히면 침이 흐르고 이성을 잃었다. 고춧가루를 탄 초간장에 파전을 푹푹 찍었다. 접시에 떨어진 양파 부스러기까지 말끔히 먹었다.
혼자 파전 세 장을 먹고 나서야 나는 접시에 박았던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급하게 먹어서 걱정, 한편으로는 전투에서 승리한 듯한 만족감에 우는지 웃는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입에 묻은 기름기를 소매로 쓱 닦고 가방을 다시 멨다. 그 뒤로 뛰지 말라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작게만 들렸다.
밥보다 파전이 더 좋았기에 그만큼 자주 어머니는 프라이팬을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느 순간 당신이 먹을 식사도 제대로 챙기지 않게 됐다. 어머니 집 냉장고에는 먹다 남은 빵과 수북이 쌓인 탕약 봉지만 있었다. 식당에서 어머니 또래 여자들이 모여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 그 냉장고가 떠올랐다. 서로의 그릇에 반찬을 덜어주고 이야기를 나누느라 숟가락을 잠시 내려놓는 모습에 자꾸 눈이 갔다.

그날도 노원역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다가 한 식당 앞에 모인 사람들을 봤다. 나이 든 여자들이 대부분, 점심시간에 쫓긴 회사원들이 아니라 근처에 사는 이들 같아 보였다. 굳이 동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이라면 100점은 아니라도 80점 이상은 되겠다는 게 경험이었다. 그 집의 이름은 서울 어느 동네를 가도 있을 법한 ‘옛날 칼국수’였다.
가게 안에 들어서니 점원들은 서로에게 존댓말을 하며 주문을 확인했고 테이블을 말끔히 정리하고 나서야 손님을 받았다. 가게 안에도 그 또래 여자 손님이 많았다. 보리밥·칼국수·파전 같은 것을 앞에 두고 밥 한 번, 웃음 한 번이 이어졌다. 밥 한 공기에도 벅차 하는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가게 2층에 자리를 잡았다. 먼저 작은 그릇에 보리밥이 담겨 나왔다. 열무김치와 고추장, 참기름을 넣고 쓱쓱 두어 번 대충 비빈 후 숟가락으로 가득 펐다. 알알이 씹히는 보리쌀과 아삭한 열무김치가 무심히 어울렸다. 옛 어른 말씀대로 꼭꼭 씹을수록 매콤하고 쌉쌀하며 고소한 맛이 입 안에 가득 찼다.
그 사이에 만두 한 접시가 놓였다. 갓 쪘는지 만두피가 탱탱했고 얇고 투명한 피 안으로는 소가 들어찬 것이 보였다. 대충 접시에 던져 놓은 게 아니라 가지런히 열을 맞춰 올려놓은 모습도 마음에 들었다.
젓가락을 잡은 손가락에 힘을 주고 커다란 만두를 들어 올렸다. 씹으니 부드럽고 촉촉한 두부가 먼저 느껴졌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세게 하기보다 담백한 재료를 옹기종기 모아 수더분하게 빚은 만두였다. 양파 간장을 숟가락으로 떠올려 간을 맞추니 맛이 더 다채로워졌다.
곧이어 커다란 사발에 칼국수가 담겨 나왔다. 바지락을 한 움큼 집어넣어 끓인 국물은 미끈한 단맛이 혀에 짝짝 달라붙었다. 바닷물에 담긴 감칠맛을 졸여낸 듯 이음매 없이 꽉 짜인 국물을 그릇째 들이마셨다. 여름 한철 한다는 서리태 콩국수의 콩물은 시멘트 반죽처럼 끈적했다. 면을 들어 올리니 콩물의 무게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소금을 한 꼬집 뿌려 간을 하니 서리태 콩물의 맛이 더 선명해졌다.
커다란 접시에 올려진 해물파전은 양면이 짙은 갈색이었다. 시간을 두고 지긋이 구운 티가 났다. 쪽파와 양파, 말린 홍합, 오징어, 새우 같은 재료들이 서로 이리저리 엉키고 있었다. 쪽파의 흰 부분은 씹을 때마다 단맛이 쭉쭉 뽑혀 나왔다. 말린 홍합은 금속성의 짭짜름한 맛이 강하게 모여 있었고 새우살은 탄력 있게 이에 부딪혔다. 가운데까지 바삭하게 부쳐낸 덕분에 젓가락이 쉬지 못했다.
가게를 나가며 음식 칭찬을 하니 안경을 쓴 주인장은 이가 보이게 씩 웃으며 “열심히 만듭니다”라고 말했다. 어머니도 그렇게 부지런히 우리를 먹이고 또 먹였다. 이제는 반대가 되어야 한다. 나는 어머니 앞으로 밥상을 계속 올릴 것이다. 일을 하듯이 성실하게.
#옛날칼국수(노원): 칼국수 1만원, 수제비 1만원, 만두 1만원, 해물파전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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