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법원장의 당연한 말이 당연하게 들리지 않는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헌법상 독립된 국가 기관인 법원이 다른 국가 기관이나 정치권력, 사회 세력으로부터 부당한 간섭이나 영향을 받지 않아야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법치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48년 삼권 분립이 제도적 실체를 갖춘 이후에도 사법권 독립은 갖가지 압력과 간섭 속에서 끊임없이 시험을 받아 왔다”며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헌법적 사명을 흔들림 없이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사법부에 주어진 변함없는 책무”라고 했다.
그동안 대법원장은 기념사에서 ‘재판의 독립 보장’ 원칙을 자주 언급했지만 ‘다른 국가 기관과 정치 권력의 부당한 간섭’을 직설적으로 말한 적은 거의 없었다. 과거 대법원장 기념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강도 높은 언급이다.
사법부 독립이 확립된 나라라면 대법원장이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민주 국가에선 당연한 말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원칙이 안 지켜지기 때문에 대법원장이 권위주의 시대에나 있을 법한 호소를 국민을 향해 한 것이다. 기념사 내용 자체가 한국 민주주의의 심각한 퇴행을 말해준다.
이재명 정부 이후 사법부에 대한 정치 공격은 대법원장이 언급한 ‘부당한 간섭이나 영향’ 수준이 아니었다. 법원의 이념 지형을 바꾸려고 대법관을 두 배로 늘리고, 법왜곡죄를 만들어 재판을 형사 처벌 대상으로 만들었다. 재판소원제를 도입해 대법원의 최고 법원 지위도 무너뜨렸다. 정치 권력이 입법권을 남용해 다른 헌법 기관을 난도질한 것이다.
조 대법원장에 대한 조롱과 모욕은 도를 넘은 지 오래다. 이 대통령은 대법관 후보 제청까지 반려해 대법원장의 헌법상 권한을 공개적으로 침해했다. 이 대통령 선거법 재판을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한 데 대한 보복으로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 개인 문제로 삼권 분립이란 민주주의 근간에 불을 지른 것이다.
조 대법원장은 기념사에서 “법원이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며 “법원은 사법권을 오직 국민을 위해 올바르게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대법원장의 당연한 말이 당연하게 들리지 않는다. 사법부 독립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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