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전 3승 2패 1진행 중…여러 우물 파봐야 안다”

원동욱 2026. 9. 12.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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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대신 창업하는 청년들
“한 우물만 파지 않는다.” 박상욱씨에게 창업은 평생 한 번의 도전이 아니다. 실패도, 성공도 다음 도전으로 이어질 뿐이다. [사진 박상욱]
“6전 3승 2패 1진행 중.”

2013년, 대학교 2학년이던 박상욱씨(34)는 화장품 샘플 유통 플랫폼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여자친구가 매장에서 받은 화장품 샘플을 쓰고 피부가 뒤집어지는 걸 보고서다. 1년 반 만에 고객 4만 명의 데이터를 모았다. 대형 화장품 회사가 그 데이터를 사겠다며 접촉해왔다. 첫 ‘엑시트’였다. 투자금을 회수해 이익을 현금화한 것. 수억 원이 손에 들어왔다. 그는 총 여섯 번의 창업에서 세 번의 엑시트, 두 번의 폐업 뒤 현재 또 다른 도전 중이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39세 이하 청년층 창업은 20만1228건. 전년 대비 2.8% 줄며 하락세를 이어갔지만, 정보통신기술(ICT)은 69.9% 급증했다. 그간 청년 창업을 이끌던 도소매는 16.4% 감소했다. 그 결과 전체 창업 중 기술 기반 창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8.8%에서 올해 21.8%로 뛰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청년들의 ‘창업 지도’가 기술·지식 기반으로 다시 그려지고 있는 것. 중앙SUNDAY가 청년 창업의 여러 얼굴을 살펴보던 중 드러난 윤곽이었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는 “ICT는 한 번 익힌 역량과 데이터로 여러 아이템을 계속 시도해볼 수 있다. 망했다가 다시 시작해도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것도 청년들이 이 분야로 몰리는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아이디어가 밑천…AI 조수 손잡고 연쇄 창업가 뜬다
최근 청년 창업은 두드러진 흐름이 있다. ‘연쇄’와 ‘무한’, ‘공동 혹은 팀’과 ‘글로벌’ 형태다.

# 연쇄 창업 - 낮아진 IT 문턱 덕
“4만 명 데이터를 더 잘 다뤘다면 더 비싸게 팔 수 있었을 텐데!”

박상욱씨는 첫 ‘엑시트’ 후,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리고 전역 후 KAIST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으로 향했다. 정보통신 역량을 키워, 보다 치밀하게 엑시트에 나서기 위함이었다. 실패와 성공은 그의 장단점을 드러냈고 깨달음도 줬다. 군대 가기 전의 음식점 예약 솔루션, 게임 형식으로 만든 전문가 매칭 서비스는 반응이 싸늘했다. 네 번째 도전인 출장세차 서비스 ‘워시카’는 통했다. 월 매출 6000만원까지 찍었다. “VOC(Voice of Customer·고객 목소리)의 중요성을 알았죠. 직접 뛰지 않으면 안 돌아가는 사업도 있다는 것도 깨닫고요.” 이후 박씨가 대학원에서 만든 와인 소셜 앱 ‘더치어스’는 코로나로 좌초 직전까지 갔다. 동료 윤경원(32)씨와 이야기중 “와인은 계속 비싸지니, 마시는 게 아니라 투자 대상으로 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NFT를 붙인 이 서비스는 시드 투자를 받자마자 급성장했고, 2024년 5월 세 번째 엑시트로 이어졌다. 현재는 인사평가를 빅데이터로 분석하는 ‘밸류트랙(Valuetrack)’을 운영 중이다.

“창업한 기업이 자식이라면, 출가(엑시트)한 자식이 잘 커가는 걸 지켜보는 것도 뿌듯하죠.” 박씨의 지론이다. 박씨 같은 청년들이 정보통신업으로 몰리는 배경엔 기술 자체의 문턱이 낮아진 영향이 크다. 스타트업 투자심사역 김모(38)씨는 “예전엔 개발자를 구하지 못하면 아이디어가 있어도 창업 자체가 불가능했는데, 지금은 바이브 코딩만으로 프로토타입을 며칠 만에 만들어내는 창업가들이 많다”며 “박씨처럼 투자 유치나 엑시트를 염두에 둔 창업일수록 처음부터 법인, 그리고 기술 기반 업종을 택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전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법인 형태로 창업한 기업 중 기술기반업종 비중은 42.5%로, 개인사업자 창업(19.8%)의 두 배가 넘는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 무한 창업 - 업종 제한은 없다
“한 우물만 파지 않는다.” 김진흥(오른쪽)씨에게 창업은 평생 한 번의 도전이 아니다. 실패도, 성공도 다음 도전으로 이어질 뿐이다. [사진 김진흥]
“3전 전승. 비결은 트렌드를 읽는 눈과 실행력이죠.”

김진흥(35)씨는 세 번의 사업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물론 역경도 있었다. 두 번째 사업인 중국인 관광객 대상 QR결제 서비스 ‘TNDN’를 사모펀드에 매각할 때였다. 그동안 쌓아온 팀과 서비스가 통째로 정리됐다. 그런데도 그는 매번 다음 사업으로 넘어갔다. 지금 이끄는 ‘브레이브컴퍼니’는 유튜버와 손잡고 브랜드를 만드는 회사다. 4년만에 누적 매출 700억을 달성했다. “업종에 한계를 두지 않으려 해요. 반도체처럼 진짜 하이테크 기반 사업이 아니라면 크게 상관없어요. 토스 대표도 증권사 IB 출신이 아니고,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도 약사 출신이 아니잖아요.” 인공지능(AI) 시대에 이 흐름은 더 가속화됐다는 게 그의 진단.

두 차례 이상 창업한 청년은 드물지 않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전체 창업기업 중 재창업 기업 비율은 29.6%에 달했다. 평균 창업 횟수는 1.4회로, 창업가 10명 중 3명 가까이는 이미 한 번 이상 창업을 경험한 뒤 다시 도전한 셈이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창업가가 성공해서 회수한 돈으로 계속 키워나가는 ‘연쇄 창업’은 미국식 창업 생태계의 핵심 동력이자 선순환 생태계”라며 “일론 머스크도 페이팔 공동창업자로 참여해 얻은 자금으로 다시 테슬라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계론도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사업을 키우다 좋은 기회에 매각하기보다 애초에 엑시트 자체를 목적으로 창업하면 사업의 본질보다 몸값을 부풀리는 데만 골몰하다가 무리수를 둘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 팀 창업 - 협력과 안정의 묘수
아내는 마케팅할 사람이 필요했고, 남편은 옷 만들 사람이 필요했다.

이렇게 패션 디자이너 송현희, MD 최경호 부부가 협업했다. 이 둘은 패션 브랜드 홀리넘버세븐의 창업자다. “남남이 동업했다면 매번 협의하고 조율할 문제들이 부부에게는 훨씬 빠르게 정리돼죠. 각자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서로 어필해요.”(송현희)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하는 게 성공 확률이 훨씬 높다고 후배들한테 항상 얘기합니다. 부부는 관계 자체가 완충 역할을 하죠.”(최경호) 단점도 있다. “계약 관계로 묶여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서로 양보하고 희생해야 유지되는 관계”(송·최 공통의견)

이렇게 붙어 지내며 쌓은 합은 실제 성과로 이어졌다. 지난해 부부는 블랙핑크 월드투어 의상을 맡아 제작했다. 덕분에 최근 홍콩 패션쇼에 초청받았을 때는 국내와 다른 대우를 체감했단다. 수파베이스에 따르면, 올해 세계 스타트업 2000곳 중 39%가 2인 이상의 공동창업자로 구성돼 있다.

황용식 교수는 “공동창업이 세계적으로 8%포인트 떨어지며 주춤하고 있지만, 가까운 관계일수록 이해 충돌이란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며 “다만 가까운 관계보다 우선하는 건 동일한 창업 철학을 공유하느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글로벌 창업 - 더 넓게 봐야 산다
“국내 시장만 바라보면 안 되겠더라고요. 조만간 발리로 거점을 옮기는 것도 그런 이유죠.”

신형훈(33)씨는 세 번째 팀을 꾸리고 있다. “3D 건축 디자인 협업 툴을 무기로 억대 투자까지 받기도 했지만, ‘국내용’으로만 생각하다가 두 번을 실패 해보니 시장 자체를 넓게 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함께 명문대를 나와 취업한 친구들이 하나둘 진급하는 모습도 지켜봤다. 불안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오히려 그런 모습이 사업을 더 열심히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돼요. 직장인으로 산다는 게 저한테는 답이 아닌 것 같아요. 안정적이지 않더라도 내가 바르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주도적으로 헤쳐나가는 게 저한테는 더 중요한 가치입니다.”

신씨가 세 번째로 잡은 방향은 아예 처음부터 해외였다. 그는 레퍼런스와 카피라이팅까지 전부 해외 사례를 기준으로 짰다. 청년 창업가와 투자자들이 몰려 있고 미국보다 진입장벽이 낮은 인도네시아 발리를 새 거점으로 삼을 계획이다.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글로벌 벤처기업 중 80.5%는 창업 당시 해외시장 진출을 목표로 창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창업 후 해외진출에 성공하기까지 소요된 기간은 창업 3년 이내(27.3%), 4년~5년(24.5%), 6년~7년(15.4%), 15년 이상(12.9%)순으로 조사됐다.

다만 전문가들은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다. 황 교수는 “진출하려는 지역·국가에 대한 이해도가 국내 창업보다 훨씬 높아야 한다”면서도 “SNS로 글로벌 소비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건 예전 세대에 없던 강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 창업 너머 취업 - 경력 추가요
모든 청년 창업이 재창업이나 엑시트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이성훈(29)씨는 처음부터 사업을 키울 목적이 아니었다. 원하는 직무의 채용 공고를 보다 “실무 경험 우대”라는 문구가 반복되자, 그는 직접 맛집 추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포트폴리오로 썼다. 그는 이 경험을 앞세워 원하던 대기업 마케팅 직군에 합격했다. 이민철(27)씨는 2023년 정보통신 관련 사업을 과감히 접고 로스쿨로 향했다. 그는 “계약서 하나 쓸 때도 법률 지식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법과 회계는 사업하는 사람에게 교양에 가깝다고 느꼈다”며 “아주 소중한 경력을 추가했다”고 전했다. 국회미래연구원에 따르면 취업 어려움이나 실직 등으로 인한 ‘생계형 창업’ 비율은 전체 창업가의 34.8%에 달하지만, 20~30대만 놓고 보면 21.7%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낮다. 대신 사업 전망이나 아이디어를 실현하려는 ‘기회형 창업’ 비율이 55.4%로 가장 높았다. 창업 후 재취업한 비율이 17.9%에 이른다는 조사도 있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과거 청년 창업이 ‘인생을 건 한 번의 도전’이었다면, 지금은 여러 번 시도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정부는 예비창업패키지·청년창업사관학교 등의 사업을 통해 지원에 나서고 있고, 대학에서는 캠퍼스타운·창업보육센터로 멍석을 깔아주고 있다. 금융권 대출 문턱도 낮아졌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청년전용창업자금과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의 보증부 대출이 대표적이다. 안승호 교수는 “실패해도 큰 비용 없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이 점차 만들어지고 있다”며 “다양한 형태의 도전이 나올 수 있도록 엑시트 환경을 조성하고 재도전 제도가 어우러져 결국엔 지속가능한 사업체들이 자리 잡아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재민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검증 없이 반복해서 지원금을 내주는 방식은 오히려 지원금 의존과 도덕적 해이를 낳을 수 있다”며 “실패했다는 사실 자체를 불이익으로 삼기보다, 이전 사업을 얼마나 책임 있게 정리했는지, 실패 원인을 제대로 분석했는지, 달라진 사업 가설이 실제 시장에서 검증됐는지를 엄격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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