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유치 경쟁 데이터센터, 이제는 건립 반대 왜

노유선 2026. 9. 1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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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난제 된 ‘데이터센터’
지난 8일 서울 금천구청 앞에서 주민들이 데이터센터 설립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갈등은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노유선 기자
“오늘로 191일째예요.”

지난 8일 오전 서울 독산동 금천구청 앞. 주민 김모(64)씨는 데이터센터 건립 반대 집회 현장을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주민 동의 없는 데이터센터 허가 철회하라’는 현수막을 뒤로하고 주민 30여 명이 ‘데이터센터 결사반대’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우리 동네 우리의 땅, 우리가 지켜낸다’는 구호가 노래로 흘러나왔다. 지난해 10월 금천구청역 인근에는 대지면적 1356㎡(약 410평)에 지상 8층짜리 데이터센터가 착공한 이래 풍경이다.

AI데이터센터(AIDC)는 반도체·피지컬AI와 함께 정부가 추진하는 3대 메가프로젝트 중 하나다. 지난 6월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어느 나라보다 빠른 속도로 인공지능의 핵심 요소를 확보해야 한다”며 “전국 각지에 AIDC를 구축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정보기술(IT)업계도 오늘날 AIDC 확충 자체는 불가피하다는 데 입을 모은다. 생성형 AI의 학습·추론과 클라우드 서비스를 뒷받침하려면 대규모 연산 설비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한때 데이터센터는 선호시설이었다. 2019년 네이버가 제2 데이터센터 공개모집 때 전국 지방자치단체 등 118곳에서 136개 부지의 유치의향서를 낸 게 대표적 사례다. 전후로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서울 22곳 구청장 기준 강화안 통과
하지만 이젠 다르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경기 김포시 구래동, 인천 미추홀구 도화동, 대구 수성구 대흥동 등에서도 금천구와 비슷한 반발이 나왔다. 김포 데이터센터는 허가 후 착공까지 약 4년이 걸렸고, 대구시에서 SK컨소시엄이 추진하던 데이터센터는 사실상 무산됐다. 지난달 문화일보·오픈서베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가 차원의 AIDC 건립·확대에는 67.3%가 찬성하지만, ‘거주지 반경 1∼2㎞ 이내 데이터센터 건립’에 대해서는 64.1%가 유보 또는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정부가 2035년까지 총 18.4GW 규모 AIDC를 구축하겠다는 것이 목표인 만큼 이런 갈등이 늘어날 수도 있다. 현재 국내 가동 데이터센터 전체 용량은 약 2GW 내외다.

주민들은 냉각탑 소음부터 고압선 전자파 노출, 배터리 화재, 주거환경 침해 등을 이유로 든다. 2022년 10월 SK C&C의 판교 데이터센터의 화재가 주민들의 불안감을 키웠다. 전자파의 경우 실측해 보니 데이터센터 앞이 인근 주택가보다 높지 않다는 결과(고양)가 나온 곳도 있지만 반대론이 꺾이진 않았다.

불과 1~2년 사이 여론 급변이라 당국은 대비하지 못했다. 김현진 금천구 데이터센터전담 태스크포스(TF)팀 팀장은 “건축허가 과정에서 주변 주민 의견을 받도록 하는 법정 절차는 없다”며 “다만 금천구에는 별도의 사전예고 제도가 있었는데, 당시 데이터센터는 대상에 명시돼 있지 않아 그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서 금천구에서 허가·운영된 데이터센터 4곳에서는 별다른 민원이 없어 이번에도 집단행동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예견했다”고 했다. 최근 주민들은 좁은 도로 탓에 화재 때 대응이 늦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구청은 인허가 과정에서 소방당국 검토를 거쳤고 주민 반발 이후 추가 검증 가능성도 문의했지만 별도 근거가 없다는 답을 받았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주민의 반발은 구체화되고 있다. 김익현 비대위 사무국장은 현재 부구청장 산하인 데이터센터 TF에 주민과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고, 이미 마련된 데이터센터 체크리스트에도 주민 추천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보완하라고 요구했다. 검증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정치권과 행정이 마주 앉은 자리도 있었다. 지난달 13일 민선 9기 첫 당정협의회에는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금천구청장, 시·구의원 등이 참석해 데이터센터 갈등을 논의했지만 뚜렷한 해법은 나오지 않았다. 지난 3일 주민소통회에서도 주민들은 건축허가 취소를 요구했지만, 구청은 선을 그었다. 김 팀장은 “건축허가는 법에 부합하면 나가야 하는 기속행위의 성격이 있다”며 “허가 취소는 불가하다”고 전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서울 자치구들은 자치구대로 대안 마련에 나섰다. 지난달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22개 구청장이 참석한 서울시구청장협의회 정기회의에서는 입지 기준 강화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데이터센터를 서울시 건축심의 대상에 포함하고 자치구 건축심의를 의무화하는 한편, 제1종 일반주거지역에 적용되는 입지 제한을 제2·3종 일반주거지역까지 넓히는 내용이다. 주거지역엔 사실상 데이터센터를 건립하지 못하게 하는 방향이다.
미국선 환경 부담 줄이고 지역 편익 환원
지난 7월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서 열린 데이터센터 건립 반대 전국 시위에서 한 여성이 팻말을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현상은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이미 데이터센터는 뜨거운 주제다. 데이터센터 반대 움직임을 추적하는 연구기관 데이터센터워치에 따르면 올해 2월 중순까지 미국 주의회에 관련 법안 300건 이상이 발의됐고, 14개 주에서는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 유예안까지 나왔다. 올해 1분기에만 지역사회 반대로 취소 20건 등 차질을 빚은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75건이다. 1300억 달러 규모다. 지난해엔 취소 25건을 포함, 1560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가 타격을 받았다. 이와 관련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데이터센터가 어떻게 미국의 가장 뜨거운 정치적 쟁점 중 하나가 되었는가’란 제목의 기사에서 “근본 원인은 단순하다”며 “미국인들이 AI에 회의적이고, 이를 개발하는 기업들을 불신하고, AI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최근엔 전력·용수 부담, 환경 영향, 주민 참여, 지역사회 환원 등으로 논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고 한다. 메릴랜드주 프레더릭 카운티에서는 이달 초 이미 승인된 데이터센터 사업을 두고 개발사가 1억1000만 달러 규모의 지역사회 지원과 환경 부담 저감 방안을 담은 협약안을 내놨다. 개발 면적을 약 20% 줄이고 식수 사용을 80% 감축하는 한편 자연보전구역을 조성하고, 학교·지역시설·직업교육·태양광·소방 장비 등에 투자하는 내용이다. 최근 뉴저지주는 데이터센터 전력망 확충 비용이 일반 전기 이용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별도 요금 체계를 도입하고, 물·전력 사용량을 정기적으로 공개하도록 법제화했다.

한국 정부도 내년 3월 시행될 AIDC 특별법 하위법령을 마련하고 있다. 특별법에는 국가와 지자체가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지역사회 기여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가 담겼다. 과기정통부는 이를 토대로 주민 의견 수렴 등에 관한 기준과 원칙을 마련해 지자체에 제시할 계획이다. 다만 특별법 시행 전까지는 데이터센터에 별도의 주민 의견 수렴 의무가 없는 만큼, 조례 등을 통한 대응은 각 지자체 자율에 맡긴다는 입장이다.

상대적으로 수도권을 선호하는 업계와, 그럴수록 갈등 소지가 높다는 건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업계 관계자는 “네트워크 이동 시간이 짧아지면서 오히려 전력이나 물 수요가 줄어들어 효율이 높아진다”며 “인구가 몰린 수도권에 데이터센터는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부에선 “정부가 수도권 데이터센터 확대를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마다 데이터센터에 대한 수요와 입장이 크게 다른 만큼 지자체에 자율성을 두는 것이 현재의 방향”(장기철 과기정통부 AI데이터진흥과장)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수도권에서 데이터센터 개발을 추진 중인 한 시행사 관계자는 “AI 산업 확대로 데이터센터가 필수 인프라가 되고 있지만 입지 지역의 부담까지 주민에게 일방적으로 감수하라고 할 수는 없다”며 “공항 주변 소음 피해 보상처럼 환경 부담을 줄이고 지역에 실질적인 편익을 돌려주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공갈등을 연구하는 한 행정학과 교수는 “데이터센터가 들어섰을 때 세수가 얼마나 늘고 고용이나 연관 산업에 어떤 효과가 생기는지부터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며 “그 결과를 토대로 입지 지역이 떠안는 부담과 사회 전체가 얻는 편익을 비교해 환원 방식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허가가 난 뒤 주민 반대가 불거지고 그때부터 설명과 설득에 나서는 방식으로는 같은 갈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입지 검토 단계부터 주민과 사업자, 지방자치단체가 정보를 공유하고 논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자치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법과 조례를 바꿀 권한이 있는 중앙정부와 국회, 광역자치단체도 함께 논의에 들어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유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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