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임신중절 합법화’ 이끈 페미니스트 정치인 엠마 보니노 별세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이 강했던 이탈리아에서 임신 중절 합법화를 주도했던 페미니스트 정치인 엠마 보니노가 별세했다. 향년 78세.
보니노가 속했던 이탈리아 자유주의정당 ‘+유럽’은 11일(현지시간) 페이스북을 통해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그는 불법 임신 중절, 세계 기아, 정당 정치의 억압, 여성 할례, 징벌적 사법, 집단학살, 그리고 모든 형태의 권위주의에 맞서 싸웠다”고 썼다.
보니노는 26세에 당시 불법이었던 임신 중절을 했으며 경찰에 자수했다. 그는 자신의 임신 중절 경험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경찰에 체포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보니노는 1975년 피임·임신 중절 정보센터 설립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단체는 임신 중절이 합법화되기 전 낙태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실제 임신 중절 시술을 제공했다.
보니노의 행보는 1978년 이탈리아의 임신 중절 합법화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보니노는 당시 임신 중절 경험을 언급하며 “다시는 누구도 이런 굴욕을 겪어서는 안 된다고 결심했다”고 말한 바 있다.
보니노는 28세에 급진당 소속으로 하원의원에 당선됐으며 당시 임신중절과 이혼 합법화, 원자력 발전 금지 정책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보니노는 정계에 입문한 후 약 50년 동안 하원의원에 6차례, 상원의원에 2차례 당선됐으며, 2000년대와 2010년대 중도좌파 정부에서 유럽연합(EU) 집행위원, 이탈리아 외교장관, 통상장관 등을 지냈다. 1999년에는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당시 남성 중심이었던 EU 집행위원회 회의에서 바지를 입은 최초의 여성이기도 했다.
보니노는 임신 중절, 안락사 등에서 가톨릭 교회와 견해가 달랐음에도 고 프란치스코 전임 교황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니노는 “어떤 투쟁을 더 해야 하냐”는 질문에 “인권, 세계 기아, 자유로운 과학 연구 등 아직 해야 할 투쟁이 너무 많다. 열 번의 삶을 살아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하곤 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보니노를 추모하며 “비록 우리의 배경과 관점은 달랐지만, 그것이 그가 우리 나라의 공적 생활에서 차지한 중요성과 역할을 인정하는 데 결코 방해가 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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