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단기알바 예산 20% 늘릴 때…직업훈련 지원은 ‘주요국 바닥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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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스터고를 졸업한 뒤 19세에 품질관리(QA) 연구원으로 취업한 A 씨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회사 프로젝트가 중단되면서 첫 직장을 떠나야 했다. 고졸 학력과 짧은 경력 탓에 재취업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생소한 기술과 강도 높은 훈련을 견딘 끝에 서버관리원 정규직으로 재취업했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AI 도입으로 대규모 직무 재편이 필요할 때 사용자의 인사권과 근로자 동의권의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며 "불확실성이 크면 기업은 재배치보다 해고나 외주를 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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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노동, 새 판을 짜자
<3회·끝>고용안정서 ‘이동안정’으로
산업 재편에 사라지는 직무 많지만
노사 갈등에 인력 재배치 등 소극적
이·전직 훈련비용 개인 부담 굳어져
직업훈련 지출 ‘GDP의 0.07%’ 수준
“韓, 채용·훈련 인센티브 병행해야”

마이스터고를 졸업한 뒤 19세에 품질관리(QA) 연구원으로 취업한 A 씨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회사 프로젝트가 중단되면서 첫 직장을 떠나야 했다. 고졸 학력과 짧은 경력 탓에 재취업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낮에는 카페, 밤에는 주방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결국 정보기술(IT) 분야로 방향을 틀었다. 생소한 기술과 강도 높은 훈련을 견딘 끝에 서버관리원 정규직으로 재취업했다. 첫 직장을 떠난 지 5년 만이었다.

외국계 대기업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한 B 씨도 2024년 회사 경영난으로 갑작스럽게 실직 통보를 받았다. 별도의 기술이나 전문 자격이 없는 인문계 사무직 출신이라는 한계를 절감한 그는 사무직을 포기하고 조경 분야에 뛰어들었다. “뙤약볕 아래 보호복을 입고 예초기를 돌리는 야외 실습을 하루 7시간씩 7개월간 견뎠다”는 그는 수십 곳에 지원서를 낸 끝에 대학 조경·시설관리팀에 새 일자리를 얻었다.
인공지능(AI) 확산이 본격화되면 이처럼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하는 노동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산업과 기술은 빠르게 재편되는데 사람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제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 내부에서는 사라지는 직무의 인력을 성장 분야로 옮기기 어렵고 일단 일터 밖으로 밀려나면 훈련과 재취업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개인이 떠안는 구조가 굳어져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까지 4년간 줄어든 청년 일자리 28만 5000개 가운데 94%인 26만 8000개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 집중됐다. AI가 문서 작성과 단순 코딩 등 초급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면서 신입 채용은 줄고 경력직 선호가 강해지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기술 변화가 빨라질수록 한 직무에 머무는 기간은 짧아지고 새로운 업무와 일자리로 옮겨야 할 필요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업 내부의 선제적인 인력 이동부터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업 재편 과정에서 특정 직무가 사라지거나 축소돼도 전환 배치를 둘러싼 노사 간 권한과 절차가 불명확해 기업이 인력 재배치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AI 도입으로 대규모 직무 재편이 필요할 때 사용자의 인사권과 근로자 동의권의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며 “불확실성이 크면 기업은 재배치보다 해고나 외주를 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사업 재편에 맞춰 인력을 유연하게 재배치할 수 있도록 예측 가능한 제도를 마련하는 동시에 근로자가 재직 단계부터 새로운 일을 준비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더라도 실직 이후에야 훈련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퇴직 전부터 필요한 교육과 재취업 경로를 연결해 장기 실업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지원 체계는 실직 이후에 집중돼 있다는 평가가 많다. 구직자는 국민내일배움카드 등을 활용해 스스로 교육과정을 찾아야 하고 재정투자 역시 노동 이동을 뒷받침하는 분야에는 상대적으로 인색하다. 서울경제신문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자체 분석한 결과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고용서비스와 직업훈련 지출 비중은 각각 0.066%, 0.072%에 그쳤다. 반면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만드는 직접일자리 지출은 GDP의 0.138%로 독일(0.024%)의 5.8배에 달했다.
기업 내부의 선제적 전직 지원도 아직 활성화되지 못했다. 정부 부처 한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회사가 직업훈련 대상자를 선정하는 순간 구조조정 대상자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며 “재직 중 새로운 직무를 준비할 기회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대형 은행 지점장을 지낸 C 씨의 사례는 노동 이동 과정에서 고숙련 인력의 경험과 전문성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퇴직 전 연봉이 2억 원에 달했던 그는 법정관리인과 중소기업 부사장, 은행 감사직 등을 거쳤지만 모두 단기 일자리에 그쳤다. 결국 전기기능사와 승강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40여 곳을 두드린 끝에 고등학교 시설관리원으로 재취업했다. 월급은 은행 시절의 6분의 1 수준이다. C 씨는 “재직 중 눈치 보지 않고 퇴직 이후를 준비할 체계가 있었다면 시행착오를 크게 줄였을 것”이라고 짚었다.
독일은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과 공공이 함께 근로자의 재교육과 다른 기업으로의 이동을 연결하는 ‘잡허브’ 방식 등을 활용하고 있다. 고용 유지 책임을 개별 기업에만 맡기기보다 직무가 사라지기 전부터 다른 일자리로 옮길 수 있도록 지역·산업 단위의 연결망을 가동하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이제 노동정책의 중심을 특정 일자리를 지키는 데서 노동자가 직무와 기업을 옮겨도 경력과 소득이 단절되지 않도록 하는 쪽으로 옮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AI는 미숙련 노동자에서 화이트칼라 전문직, 고숙련 블루칼라까지 영향을 넓히고 있다”며 “성장 산업과 유망 중소기업으로 인력이 원활히 이동하도록 훈련과 채용 인센티브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종곤 고용노동전문기자 ggm11@sedaily.com양철민 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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