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벗어나 해외무대로 … 판권 팔던 K뮤지컬, 英런던서 판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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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런던 이즐링턴의 킹스헤드 시어터. 한국 창작뮤지컬 '유앤잇(You&It)'의 런던 프로덕션이다. 연출과 무대·조명 디자인, 영어 가사를 모두 현지 창작진이 맡았다.
이응규 EG뮤지컬컴퍼니 대표는 이번 런던 공연을 "한국 프로덕션을 그대로 옮겨야만 가능한 작품인지, 다른 문화권의 창작진이 자신들의 언어로 다시 만들어도 힘이 유지되는 작품인지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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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런던 이즐링턴의 킹스헤드 시어터. 영국인 배우 두 명이 대구 북성로를 배경으로 한국인 부부를 연기했다. 한국 창작뮤지컬 '유앤잇(You&It)'의 런던 프로덕션이다. '돌쇠' '흙' 같은 태명이 한국어 발음 그대로 흘러나왔지만 무대에 한국 배우는 한 명도 없다. 연출과 무대·조명 디자인, 영어 가사를 모두 현지 창작진이 맡았다.
올 하반기 런던 오프웨스트엔드에는 한국 제작사가 개발했거나 투자한 작품이 잇따라 오른다. '유앤잇'이 이달 26일까지 공연하고, 에이콤의 'Franz&Marie'가 이달 28일부터 11월 14일까지 채링크로스 시어터 무대에 선다. 신시컴퍼니의 신작 '네로'는 11월 2일부터 12월 5일까지 사우스워크 플레이하우스 엘리펀트에서 트라이아웃에 들어간다. 앞서 5월에는 네오프로덕션의 1인 뮤지컬 '더 라스트맨'이 같은 극장에서 영국 초연을 마쳤다.
한국 뮤지컬의 잇단 영미권 진출은 국내 시장이 포화에 이르렀다는 진단에서 비롯됐다. 이헌재 네오프로덕션 대표는 최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세대는 대극장에 들어갈 수 없어 대학로라는 시장을 만들었다"며 "이제 다음 세대 프로듀서들은 새로운 장르든 해외든 자기 시장을 새로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대학로마저 신규 진입이 몰려 공급이 수요를 앞질렀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제작사가 고용을 유지하고 창작자가 계속 일하려면 시장 자체를 넓혀야 한다는 얘기다.

런던은 뉴욕보다 부담이 덜한 진출지로 꼽힌다. 무대가 되는 오프웨스트엔드는 런던극장협회(SOLT)가 관리하는 상업극장 밖의 200~350석대 극장군이다. 세계 각국 관객과 공연 관계자가 모여드는 '핫플'이지만 신작을 시험하는 비용이 뉴욕보다 훨씬 낮다. '식스' '오퍼레이션 민스미트'처럼 이곳에서 출발해 웨스트엔드로 옮겨간 사례도 적지 않다. 웨스트엔드에 진입하면 지난해 기준 관객 1764만명, 매출 10억8400만파운드(약 2조원) 규모의 시장이 열린다.
작품별 접근방식은 제각각이다. '네로'는 신시컴퍼니가 2022년 메인 프로듀서로 합류해 되살린 기획이다. 뉴욕과 런던에서 워크숍을 6차례 거쳤고 제작비 전액을 신시컴퍼니가 댔다. 라이선스 대작을 들여오던 제작사가 영어권 신작 개발에 초기 단계부터 참여한 것은 처음이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극작가 스티븐 세이터와 작곡가 덩컨 시크가 손을 잡았고, 브로드웨이 '디어 에반 핸슨'의 앤드루 바스 펠드먼이 타이틀롤을, 린지 포스너가 연출을 맡았다. 신시컴퍼니는 런던 반응을 반영해 작품을 다듬은 뒤 한국 공연을 논의할 계획이다.
신시컴퍼니에 따르면 '네로'는 고대 로마의 악명 높은 폭군 네로 황제를 소재로 권력과 욕망, 정치와 선동, 독재와 대중의 관계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조명한다. 역사 재현을 넘어 정치를 거대한 연극으로 받아들이고 대중의 환호를 권력 유지 수단으로 삼았던 네로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의 권력자와 정치 현실을 비춘다.
'Franz&Marie'는 에이콤이 2005년 개발에 착수해 영국 창작진과 8년간 워크숍을 거친 뒤 2014년 국내에서 '보이첵'으로 초연한 작품이다. '보이첵'은 독일 작가 게오르크 뷔히너의 미완성 희곡이 원작으로, 가난한 하급 군인을 주인공으로 계급과 빈곤, 인간 소외와 사회적 억압을 다룬 작품이다. 에이콤은 영국 공연을 앞두고 각색을 새로 하면서 마리를 프란츠와 극의 중심에 세우고 제목도 그에 맞춰 바꿨다. 브레녹 오코너와 제이드 오즈월드가 두 인물을 맡고, 14명이 연주까지 겸하는 액터뮤지션 방식으로 꾸린다. 개발 기간만 20여 년이다.
'유앤잇'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아내를 잃은 남편 규진이 아내 미나의 모습과 기억을 재현한 인공지능(AI)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2인극이다. 아내의 외형과 말투, 습관, 기억까지 닮은 'AI 미나'를 마주한 규진을 통해 AI가 사랑하는 사람의 빈자리까지 대신할 수 있는지, 기억은 사랑하는 사람 그 자체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은 무엇인지 물음을 던진다.

'유앤잇'은 2019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창작뮤지컬상을 받은 뒤 2년간 영어 대본을 다듬고 2024년 에든버러 프린지에서 반응을 확인했다. 이응규 EG뮤지컬컴퍼니 대표는 이번 런던 공연을 "한국 프로덕션을 그대로 옮겨야만 가능한 작품인지, 다른 문화권의 창작진이 자신들의 언어로 다시 만들어도 힘이 유지되는 작품인지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첫 성적표는 냉정했다. 이달 1일 프레스나이트 뒤 현지 리뷰가 쏟아졌지만 호평은 드물다. 런던시어터1은 별 세 개를 주면서 80분 남짓한 러닝타임 탓에 죽은 미나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관객이 알 수 없어 후반부 갈등이 힘을 잃는다고 지적했다. 역시 별 세 개를 준 런던펍시어터스는 기술은 미래를 상상하지만 로맨스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며, 남자를 위해 아름답게 고통받는 여성이라는 낡은 구도를 되짚지 않고 반복한다고 봤다. 영어 가사가 어색하고 같은 표현을 되풀이한다는 지적은 호평을 한 매체에서도 나왔다. 한옥을 옮겨온 무대와 두 배우의 호흡은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런 지적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2024년 6~7월 채링크로스 시어터에서 공연된 '마리 퀴리'는 100분 안에 스무 곡 넘게 눌러 담아 인물이 숨 쉴 틈이 없고, 번역과 각색을 거치며 감정이 옅어졌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번 '유앤잇' 평과 겹친다. 작품 하나의 문제라기보다 현지화 방식이 안고 있는 문제에 가깝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더 라스트맨'은 현지 매체에서 별 네 개 평가를 여럿 받았고, 한국어 '정'의 정서를 옮긴 대목이 처음부터 영어로 쓰인 것처럼 자연스럽다는 반응도 나왔다. 그러나 작품 전체에는 유보적인 평이 붙었고, 무대 밖에서 걸린 것도 많았다. 이헌재 대표는 "시장에서 실패와 성공을 겪어야 다음 도전이 가능하다"며 "영국 법인에 현지 인력을 두고 한국 창작진과 협업하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정부도 뮤지컬 해외 진출 지원에 나서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하는 'K-뮤지컬 로드쇼 인 런던'이 11월 열린다. 2016년 시작된 이 사업은 선정작을 영국 창작진·배우와 함께 영어 낭독 쇼케이스로 올린 뒤 현지 프로듀서와 극장·투자 관계자를 만나게 한다. 올해는 6월 국내 쇼케이스에 오른 여덟 편 중 라이브의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과 '소란스러운 나의 서림에서' '아! 경숙씨!' 세 편이 뽑혔다. '마리 퀴리'도 2022년 이 쇼케이스로 영국에 소개된 뒤 2년 만에 정식 프로덕션으로 이어졌다. 로드쇼가 오프웨스트엔드 진입의 전 단계로 자리 잡은 셈이다.
'Franz&Marie'는 다음달 5일, '네로'는 11월 6일 프레스나이트를 치른다. 이응규 대표는 "이번 공연은 다음 단계를 위한 출발점"이라며 "2027년 영국 지역 투어를 거쳐 2028년 웨스트엔드 진입을 목표로 잡았다"고 밝혔다.
[구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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