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아빠 딸, 곰인형 안고 80살 됐어”…끝내 가족 찾은 ‘전사자 X-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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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여름, 한살배기 바버라 캐너번에게 아버지가 남긴 것은 작은 곰인형 하나였다. 미 해군 중령 프레더릭 R. 슈레이더는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할 것을 알고 출항 전 두 딸을 위해 미리 곰인형을 사뒀다.
10일(현지시각) 존 피게레스 디피에이에이 선임 작전담당관은 한겨레 등 외신기자들과 만나 법의학연구소에 놓인 당시 재매장식 사진을 가리키며, 성조기를 전달받을 때 테디를 대신 들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바버라가 "80년 넘게 제가 들고 있었어요. 아버지가 제게 마지막으로 준 물건입니다"라며 거절했다고 전했다.
이날 디피에이에이 법의학연구소에서 만난 한국계 미국인 법의인류학자 제니 진 박사는 뼈와 치아뿐 아니라 생전 의료기록, 가족이 남긴 편지, 안정동위원소 분석까지 동원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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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여름, 한살배기 바버라 캐너번에게 아버지가 남긴 것은 작은 곰인형 하나였다. 미 해군 중령 프레더릭 R. 슈레이더는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할 것을 알고 출항 전 두 딸을 위해 미리 곰인형을 사뒀다. 그러나 그는 그해 10월13일 항공모함 USS 호넷에서 F6F-5 헬캣 전투기를 몰고 당시 포모사, 지금의 대만을 공격하다 대공포에 격추됐고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바버라는 곰인형에 ‘테디’라는 이름을 붙여 아버지를 대신하듯 간직했다. 한동안은 아버지의 나비넥타이를 테디에게 매어주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나비넥타이가 해질 때까지, 여러 차례 이사할 때도 테디는 늘 함께였다. 바버라는 훗날 미 해군에 “테디는 내게 아버지를 상징했고, 아버지를 찾는 어린 시절의 꿈과 함께했으며 슬프거나 아플 때 위안이 됐다”고 회고했다.
무명 유해를 가족 품에 돌려드리기까지
전환점은 수십년 뒤 찾아왔다. 미 해군 비행장교 출신 민간 연구자 매슈 로빈스는 정보공개 청구 등을 통해 대만에서 수습된 미군 무명 유해 기록을 추적하다 X-136의 자료에 주목했다. 이 기록에는 1944년 10월13일 도코 수상기 기지 부근에서 대공포에 격추됐고, 해당 조종사가 ‘애나폴리스(미 해군사관학교) 졸업생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당시 대만 상공에서 실종된 해사 졸업생은 4명뿐이었다.
로빈스 등은 4년에 걸쳐 기록을 조사해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에 관련 자료를 제공했다. 디피에이에이는 2022년 X-136이 슈레이더 중령 또는 또 다른 미 해군 조종사 헨리 프타체크 소위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후보를 총 2명으로 좁혔다. 그해 8월11일 X-136의 유해를 발굴해 분석에 들어갔고, 치과·법의인류학적 분석과 당시 기록 등 정황증거를 종합해 9월27일 마침내 슈레이더의 신원을 확인했다.
2023년 4월13일, 여든살이 된 바버라는 아버지가 사준 테디를 품에 안고 펀치볼로 돌아왔다. 곰인형의 가슴에는 해군 조종사의 금빛 날개가 달려 있었다. 10일(현지시각) 존 피게레스 디피에이에이 선임 작전담당관은 한겨레 등 외신기자들과 만나 법의학연구소에 놓인 당시 재매장식 사진을 가리키며, 성조기를 전달받을 때 테디를 대신 들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바버라가 “80년 넘게 제가 들고 있었어요. 아버지가 제게 마지막으로 준 물건입니다”라며 거절했다고 전했다.

디피에이에이가 전쟁이 끝난 지 수십년 뒤에도 이처럼 이름 잃은 유해의 신원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은 디엔에이(DNA) 분석 덕분만은 아니다. 이날 디피에이에이 법의학연구소에서 만난 한국계 미국인 법의인류학자 제니 진 박사는 뼈와 치아뿐 아니라 생전 의료기록, 가족이 남긴 편지, 안정동위원소 분석까지 동원한다고 설명했다.
뼈는 기억한다, 당신이 어떤 물 마셨는지도
특히 뼈에는 사람이 오랜 기간 먹고 마신 것의 흔적이 남는다. 진 박사는 뼈가 대략 7~10년에 걸쳐 재형성된다는 점을 이용해 탄소·질소·산소 등 안정동위원소를 분석하면 생전 식생활과 생활지역을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탄소 동위원소를 보면 쌀이나 밀 등 어떤 식품을 주로 섭취했는지 짐작할 수 있지만, 음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진 박사는 자신을 예로 들어 “미국에서 25년을 살아도 나는 오늘 아침에도 쌀을 먹었다”며 “하지만 한국에서 생수를 계속 가져와 마실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람이 마신 물에 포함된 산소 동위원소의 특성이 뼈에 남기 때문에 이를 지역별 물의 산소 동위원소와 비교하면 장기간 어느 지역에서 생활했는지를 좁힐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신원 확인에도 이런 방식이 쓰였다. 진 박사는 어린 시절 벨기에 가정에 입양돼 그곳에서 성장한 뒤 한국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인물의 사례를 소개했다. 입양됐기 때문에 비교할 가족 디엔에이 표본을 확보할 수 없었지만, 안정동위원소 분석 결과 뼈에서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장기간 생활한 사람에게 맞는 신호가 나타났다. 그의 성장 기록과도 맞아떨어지면서 신원 확인의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70여년 전 어머니가 쓴 편지 한 장이 마지막 퍼즐이 되기도 했다. 한국전쟁 전사자 한 명의 디엔에이를 분석해 후보를 5명까지 좁혔지만 특정인으로 확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유해를 분석한 법의인류학자는 팔과 허리에서 오래전 골절이 아문 흔적을 발견했다.
진 박사가 후보자 5명의 생전 기록을 뒤지자 1955년 한 어머니가 미군에 보낸 편지를 발견했다. 군이 ‘아들을 찾게 될 경우 신원을 알아볼 특징이 있느냐’고 묻자 어머니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아들이 다섯살 때 팔이 부러졌고, 14살 때 높은 곳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쳤다는 내용이었다. 편지의 내용은 유해에 남은 두 부위의 골절 흔적과 맞아떨어졌다. 진 박사는 당시를 떠올리며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이름을 되찾아 어머니 곁에 묻혔다.
피게레스 선임 작전담당관은 “이것은 결국 가족과의 감정적 연결에 관한 일”이라며 “80년이 넘게 지났어도 가족이 느끼는 감정은 그가 어제 세상을 떠난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호놀룰루(미국 하와이주)/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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