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이론에 머문 '플라스틱 섞임' 첫 확인…접착제 없이 붙는 플라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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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자의 구조를 재설계해 서로 다른 플라스틱 층을 안정적으로 붙일 방법이 나왔다.
서로 다른 고분자가 경계면에서 얼마나 잘 섞이는지는 고분자 소재 간 접착 안정성에 영향을 미친다.
현재는 서로 다른 고분자 소재를 별도의 접착제를 첨가해 붙이고 있다.
실험결과 선형 고분자끼리는 화학 성분이 같음에도 경계면이 거의 섞이지 않았지만 한쪽을 고리형으로 바꾸자 서로 다른 소재의 고분자가 섞인 범위의 폭이 1.9nm에서 5.0nm로 약 2.6배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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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자의 구조를 재설계해 서로 다른 플라스틱 층을 안정적으로 붙일 방법이 나왔다. 이 기술은 식품 포장재, 디스플레이 소재 등 플라스틱 층을 여럿 겹쳐 붙여야 하는 제품을 제조하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서울대는 김소연 공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팀과 김경택 자연과학대 화학부 교수팀이 분자의 화학 성분은 그대로 둔 채 실처럼 생긴 고분자를 고리 모양으로 바꾸는 것만으로 잘 섞이지 않던 두 플라스틱 층의 경계면이 자연스럽게 섞이도록 만드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고 11일 밝혔다. 연구결과는 3일 국제학술지 'ACS 센트럴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플라스틱 제품은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여러 고분자 소재를 겹쳐 만드는 경우가 많다. 서로 다른 고분자가 경계면에서 얼마나 잘 섞이는지는 고분자 소재 간 접착 안정성에 영향을 미친다. 서로 다른 플라스틱 소재가 잘 붙어 있지 못하면 내구성이 저하된다.
현재는 서로 다른 고분자 소재를 별도의 접착제를 첨가해 붙이고 있다. 제조 단계에서부터 두 종류의 고분자 소재를 붙여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분자는 실에 구슬을 길게 꿴 것처럼 생겼다. 고분자를 구성하는 '구슬'을 단위분자라 부른다. 같은 단위분자를 꿴 고분자라도 단위분자를 길게 꿴 것과 짧게 꿴 것은 서로 잘 섞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짧은 고분자 사슬이 긴 고분자 사슬 사이로 들어갈 때 형태가 제한된다. 키 큰 어른으로 가득 찬 만원 버스에 어린아이가 들어가게 되면 어른들 사이에 끼어 쉽게 버스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형태가 제한되는 현상을 '형태 엔트로피 손실'이라고 부른다.
연구팀은 작은 고분자 사슬의 끝을 연결해 고리처럼 만들었다. 작은 고분자 고리가 긴 고분자 사이에 들어가기도 쉽고 긴 고분자가 고리 안으로 들어가는 등 새로운 형태로 섞여 서로 다른 종류의 고분자가 잘 섞일 수 있는 방법이다.
고리형 고분자가 선형 고분자와 만날 때 긴 실이 고리 안을 통과하는 것처럼 서로 얽히는 '스레딩(threading)' 현상이 일어나면 분자들이 배열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늘어나 고분자가 잘 섞일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1986년 나왔다. 이를 '위상학적 엔트로피 효과'라 부른다.
순도 높은 고리형 고분자를 합성하기 어렵고, 엔트로피 효과만을 분리해 측정하기가 까다로워 실제 계면에서 위상학적 엔트로피 효과를 입증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연구팀은 분자 하나하나의 길이가 균일한 선형·고리형 폴리락타이드(PLA·생분해성 플라스틱)를 합성했다. 이를 분자량이 더 큰 중수소 치환 PLA 박막 위에 쌓아 이중층 필름을 만들고,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연구용원자로인 하나로(HANARO)의 REF-V 중성자 반사율 측정 장치를 이용해 두 층의 경계면이 섞이는 정도를 나노미터(nm·1nm는 10억분의 1m) 수준에서 측정했다.
연구진은 화학 성분이나 열처리 조건이 아니라 오직 고분자의 ‘모양’이 만드는 효과만을 분리해 확인하기 위해 사슬 길이가 같은 선형·고리형 고분자끼리 얼마나 잘 섞이는지도 관찰했다.
실험결과 선형 고분자끼리는 화학 성분이 같음에도 경계면이 거의 섞이지 않았지만 한쪽을 고리형으로 바꾸자 서로 다른 소재의 고분자가 섞인 범위의 폭이 1.9nm에서 5.0nm로 약 2.6배 증가했다.
연구팀은 향후 이 원리가 다양한 고분자와 가공 조건에서도 확인될 경우 별도의 화학적 접착제를 추가하지 않고도 서로 다른 고분자 물질을 안정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소연 교수는 "화학 구조를 전혀 바꾸지 않고 분자의 모양만으로 섞이지 않던 계면을 섞이게 만들 수 있다는 40년 된 이론 예측을 실험으로 처음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이번 연구에서는 한국원자력연구원 하나로의 중성자 반사율 측정 장치가 위상 효과를 직접 확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doi: 10.1021/acscentsci.6c00828
[김소연 기자 leci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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