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훈의 시네마 경영 <23> '오디세이'] 랄프 로렌은 왜 매출 감소를 감수했나… 성공의 기준을 바꾸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2016년 랄프 로렌(Ralph Lauren)은 새로운 경영 계획 '웨이 포워드(Way Forward)' 를 발표했다. 회사가 내건 목표는 수익성 기반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고품질 매출이었다. 랄프 로렌은 왜 매출 감소를 감수하면서까지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2016년 랄프 로렌은 성공의 기준을 다시 세웠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16년 랄프 로렌(Ralph Lauren)은 새로운 경영 계획 ‘웨이 포워드(Way Forward)’ 를 발표했다. 회사가 내건 목표는 수익성 기반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고품질 매출이었다. 이에 따라 할인 판매를 줄이고 재고와 상품 수를 축소했으며 실적이 부진한 매장도 정리하기로 했다. 더 많이 파는 것보다 어떤 매출을 만들 것인지에 무게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대가는 곧 나타났다. 2016년 12월 말로 끝난 2017 회계연도 3분기 매출이 전년보다 12% 줄었다. 그런데도 할인 수준을 낮추고 재고를 23% 줄였으며 상품 수도 20% 이상 축소했다. 매출이 줄어드는데도 방향을 바꾸지 않은 것이다. 랄프 로렌은 왜 매출 감소를 감수하면서까지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트로이를 무너뜨린 목마
크리스토퍼 놀런(Christopher Nolan)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The Odyssey, 2026)’에서 오디세우스는 10년 동안 이어진 트로이 전쟁을 끝내기 위한 계략으로, 안에 군사를 숨긴 거대한 목마를 남기고 그리스군이 철수한 것처럼 꾸민다. 젊은 병사 시논은 홀로 남아 그리스군이 떠났다고 트로이 사람들을 속이는 미끼가 된다. 그는 작전의 전모를 알지 못한 채 죽는다. 목마 속에 숨어 있던 오디세우스는 발각되지 않기 위해 그 희생을 감수한다. 트로이 사람들이 목마를 성안으로 들인 뒤 밤이 되자, 목마 속에 숨어 있던 그리스 병사들이 밖으로 나와 성문을 연다. 힘으로 넘지 못한 성벽을 지략으로 무너뜨린 것이다. 트로이는 불타고 10년 전쟁은 마침내 그리스의 승리로 끝난다.
그러나 승리와 함께 죽음과 파괴도 남았다. 트로이 전쟁은 끝났지만, 오디세우스가 감당해야 할 일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훗날 저승에서 다시 만난 시논은 자기 죽음에 대해 오디세우스를 원망한다. 이타카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사람을 잃는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을 빠져나오고, 마녀 키르케의 섬과 세이렌의 바다를 지나 저승까지 다녀오는 동안 함께 트로이를 떠난 동료가 하나둘 사라진다. 결국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었던 오디세우스는 혼자 이타카에 닿는다.
그 사이 이타카에도 시간이 흘렀다. 오디세우스가 떠날 때 어린아이였던 아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를 찾아 나설 만큼 자랐고, 아내 페넬로페는 권력을 차지하려는 구혼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스무 해를 버텼다. 그가 없는 동안 가족도 각자의 시간을 살아낸 것이다. 20년 만에 돌아온 그는 거지로 위장한 채 집 안을 살핀다. 마지막 연회에서 누구도 당기지 못하던 자기 활을 들어 아내를 괴롭히던 구혼자들을 쓰러뜨리고 마침내 아내와 집과 왕국을 되찾는다. 그러나 그는 왕좌에 앉지 않는다. 텔레마코스에게 이타카를 맡기고 페넬로페와 함께 서쪽으로 떠난다. 죽은 사람들을 기리고, 전쟁에 나서기 전 두 사람이 꿈꿨던 삶을 위해.
무엇을 승리로 볼 것인가
좋은 결정을 내리려면 어떻게 이길 것인가보다 무엇을 승리로 볼 것인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성공의 기준이 달라지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지키며, 어디까지 감수할 것인지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결과를 보고 거꾸로 결정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결과가 좋으면 그 결정까지 현명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결과 편향(outcome bias)’이라고 부른다. 기업에서는 매출과 점유율, 이익 같은 수치가 그런 결과의 자리를 차지한다. 수치가 좋을수록 무엇을 목표로 삼았는지, 그 수치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는지는 잊어버리기 쉽다.
물론 결과는 판단을 되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신호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면 처음의 전제와 선택을 다시 살펴야 한다. 하지만 성과가 좋더라도 원래 정했던 성공의 기준이 무엇이었고, 목표를 좇는 동안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잃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수치를 좇은 웰스파고, 고객을 지킨 존슨앤드존슨
미국의 종합 금융회사 웰스파고는 판매 목표를 직원 평가와 보상에 강하게 연계했다. 더 많이 팔수록 좋은 평가를 받는 구조였다. 이 때문에 일부 직원은 고객 동의 없이 계좌와 신용카드를 만들고 기존 계좌의 돈을 새 계좌로 옮기기도 했다. 판매 수치가 성과의 기준이 되자 고객에게 그 상품이 정말 필요한지는 뒤로 밀렸다. 2016년 미국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이 제재에 나서면서 문제가 드러났다.
미국의 헬스케어 기업 존슨앤드존슨은 다른 기준이 있었다. 1982년 이 회사 제품인 타이레놀에 청산가리가 섞여 7명이 숨지자 회사는 제품을 모두 거둬들이고 소비자 안전을 먼저 챙겼다. 1943년부터 이어온 ‘우리의 신조(Our Credo)’에는 환자와 의료진,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에 대한 책임이 적혀 있었다. 경영진은 이 기준에 따라 대규모 회수에 나섰다. 타이레놀은 당시 회사의 핵심 상품이었다. 제품을 회수하면 매출과 시장점유율이 떨어질 것이 뻔했다. 그래도 경영진은 사고 원인이 밝혀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제품부터 거둬들였다. 판매보다 소비자의 안전을 먼저 지켜야 한다는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공의 기준을 다시 세우다
2016년 랄프 로렌은 성공의 기준을 다시 세웠다. 매출 규모에 매달리는 대신 수익성 기반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고품질 매출에 무게를 뒀다. 기준이 달라지자 할인과 재고, 상품과 판매처를 다루는 방식도 달라졌다. 당장의 매출 감소는 그 과정에서 감수한 대가였다. 이후 전략의 이름과 세부 방식은 달라졌지만, 브랜드를 고급화하고 할인 의존도를 낮추며 장기 성장을 추구하는 방향은 이어졌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지난 3월 말 끝난 2026 회계연도 매출은 전년 대비 15% 늘었다. 환율 효과를 제외해도 12% 증가했다. 이어 6월 말 끝난 2027 회계연도 1분기에도 평균 판매 단가는 15% 오르고, 매출은 14% 증가했다.
트로이 전쟁에서 오디세우스의 목표는 분명했다. 10년 동안 이어진 전쟁을 끝내고 적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그 기준으로 보면 목마는 완벽한 선택이었고 오디세우스는 분명히 승리했다. 하지만 전쟁 이후 이어진 20년의 항해에서 그는 동료를 잃고, 자기 결정으로 희생된 사람을 다시 마주하고, 자기가 없는 사이 가족이 견뎌야 했던 힘든 시간을 보게 된다. 이 모든 경험은 오디세우스가 승리를 바라보는 기준을 바꿔놓았다. 어렵게 되찾은 왕좌를 아들에게 넘기고 페넬로페와 떠난 이유다.
좋은 결정은 이기는 방법을 고르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무엇을 승리로 볼 것인지 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