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성 사라진 K뷰티…미국·유럽 오프라인 진출이 화장품 산업 성장 공식 바꾼다
한국 화장품 산업의 전통적인 성장 공식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2분기를 정점으로 하반기 실적이 둔화하는 ‘상고하저’가 뚜렷했지만, 올해는 3분기와 4분기에도 성장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한국 화장품의 오프라인 유통망 진입이 본격화하면서 기존의 계절성이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한국 화장품 산업의 2분기 강세는 선크림 성수기와 미국·유럽 유통업체들의 연말 홀리데이 시즌 재고 확보가 주요 원인이었다. 통상 6월까지 제품을 생산해 선적해야 10~11월 현지 판매에 맞출 수 있기 때문에 2분기까지 생산이 집중됐다. 이후 3분기에는 비수기가 나타나고 4분기에는 유통업체의 재고조정이 발생하는 것이 지난 2년간의 일반적인 패턴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이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2분기 실적 발표 전까지만 해도 하반기 매출이 상반기보다 약 10%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일반적이었지만, 주요 ODM 업체들의 실적 발표 이후 전망이 반대로 바뀌었다. 하반기 매출이 상반기보다 약 10% 증가하고, 이에 따라 하반기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은 약 35%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상반기 성장률 약 25%보다 하반기의 성장 속도가 오히려 빨라지는 셈이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 K뷰티로
성장 구조가 달라진 가장 큰 이유는 해외 진출 방식의 변화다. 그동안 미국에서 K뷰티의 성장은 아마존과 틱톡 등 온라인 채널이 주도했다. 하지만 미국 화장품 시장에서 오프라인 채널 비중은 약 85%에 달한다. 한국과 달리 온라인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미국 전체 시장을 장악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올해부터 한국 브랜드들이 미국 주요 오프라인 리테일러에 본격적으로 입점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에서 판매가 확대되자 유럽 오프라인 시장으로 진출하는 브랜드도 늘고 있다. 올해 미국과 유럽에 새롭게 들어간 브랜드들은 아직 초기 단계여서 내년에도 매출 증가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ODM 시장의 변화는 이를 뒷받침한다. 2분기 기준 코스맥스의 매출은 7,949억원으로 세계 ODM 업체 가운데 가장 컸고, 한국콜마 화장품 부문도 6,064억원을 기록해 이탈리아 인터코스의 4,658억원을 크게 앞섰다. 한국콜마와 인터코스의 매출 격차는 1분기 848억원에서 2분기 1,406억원으로 확대됐다.
한국콜마 역시 별도 기준 2분기 매출 4,304억원, 영업이익 708억원으로 각각 31.2%, 44.3% 증가했다. 선케어 수요 확대와 다국적 기업 매출 증가, 신제품 출시가 실적을 끌어올렸다.
멕시코·브라질까지…해외 시장 지형도 변화
K뷰티의 해외 진출 지역도 중국 일변도에서 벗어나고 있다. 중남미가 대표적이다. K뷰티 해외 유통의 핵심 기업으로 꼽히는 실리콘투는 멕시코 법인을 7월부터 가동하기 시작했고, 12월에는 브라질 법인을 추가로 설립할 계획이다. 브라질은 세계 3위권 화장품 시장으로 일본보다 시장 규모가 크며, 멕시코 역시 한국보다 큰 화장품 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장기간 역성장을 기록했던 한국 화장품의 중국 수출이 5월부터 증가세로 돌아섰으며, 특히 중국 10대 소비층을 중심으로 글로벌 브랜드와 제품을 직접 경험하려는 소비 패턴이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에이피알과 달바글로벌 등 일부 한국 브랜드는 중국에서 대규모 마케팅을 하지 않았음에도 20~30%대 매출 증가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중국 시장이 다시 K뷰티의 추가 성장 지역이 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원화 강세 영향은 기업마다 다르다
원화 강세는 화장품 수출기업에 부담이지만 모든 기업의 실적이 같은 폭으로 악화되는 것은 아니다. 환율이 10% 하락하고 비용이 그대로라면 달러 매출을 원화로 환산한 매출도 약 10% 감소한다. 비용까지 동일하다면 영업이익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그러나 화장품 브랜드 업체들은 미국에서 발생하는 비용도 달러로 지출한다. 아마존 물류비, 마케팅비, 인플루언서 비용, 현지 유통업체 판매수수료 등이 대표적이다. 현지에서 사용할 달러를 미리 보유하는 브랜드도 있어 원화 강세의 실제 수익성 영향은 단순 환산 효과보다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 ODM 업체들은 브랜드사들로부터 수주를 받아 납품하는 제조 중심의 비즈니스 구조를 갖고 있기 대문에 환율 영향이 없다.
반면 실리콘투 같은 무역·유통업체는 상대적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달러를 빠르게 원화로 환전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리콘투의 경우 2021~2024년 매출총이익률이 약 3%포인트 상승했는데, 당시 원화 약세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따라서 원화 강세 국면에서는 반대로 마진에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하이드로겔 마스크는 공급 부족…설비 진입장벽 높아
제품별로도 과거와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하이드로겔 마스크다. 한국 화장품 제조업은 대부분 자동화가 진행됐지만 하이드로겔 마스크 생산라인은 아직 자동화가 충분하지 않다. 과거 2억~3억원 수준이었던 생산라인 구축 비용은 현재 약 5억원으로 높아졌다.
라인 하나를 운영하려면 약 30명의 인력이 필요하고, 생산라인 길이도 약 30m에 달한다. 별도의 R&D 인력과 장비 오퍼레이터까지 필요하다. 설비업체 자체도 많지 않아 단기간에 생산능력을 늘리기 어렵다.
이 때문에 하이드로겔 마스크는 수요가 증가하는데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제닉을 비롯해 코스맥스, 코스메카코리아, 엔코스, 아이큐어 등 생산능력을 갖춘 업체가 제한적이라는 점도 공급 부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선크림은 미국 규제 변화, 쿠션은 서구 소비자 인식 변화
선크림 역시 중요한 성장 카테고리다. 미국은 자외선 차단제를 OTC 의약품으로 분류해 허용 원료가 제한적이었지만, 최근 약 20년 만에 새로운 자외선 차단 원료가 승인되면서 선택지가 하나 늘었다.
다만 미국에서 허용되는 자외선 차단 원료는 기존 6개에서 7개로 늘어난 수준이다. 한국·유럽·일본 등이 20개 이상의 원료를 활용해 다양한 사용감과 제형을 구현하는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규제가 강하다. 따라서 단기간에 미국 선크림 시장 전체가 바뀌기보다는 미국 현지 생산시설을 보유한 한국 ODM 업체들이 점진적으로 기회를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쿠션은 더 큰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혁신 제품인 쿠션은 랑콤·맥·에스티로더 등 글로벌 브랜드가 코스맥스 등을 통해 생산해왔지만 그동안 주로 아시아 시장에서 판매됐다. 서구 소비자들이 퍼프를 반복 사용하는 방식에 거부감을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티르티르 쿠션이 미국에서 화제를 일으켰지만 판매가 지속적으로 확대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올해 5월 미국에서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쿠션이 출시된 이후 반응이 좋아지고 있다는 점이 새로운 변수다. 럭셔리 브랜드의 쿠션이 미국 시장에서 성공할 경우 서구 소비자들이 쿠션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코스맥스 등 ODM 업체뿐 아니라 클리오·티르티르 같은 국내 브랜드에도 추가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
용기도 쇼티지
화장품 용기에서도 공급 부족이 나타나고 있다. 펌텍코리아는 생산설비 증설 과정에서 발생했던 병목이 2분기를 기점으로 해소되면서 하반기 생산량 증가가 예상되고 있다. 특히 10월께 추가 생산공장이 가동되면 4분기 매출이 3분기보다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튜브 시장에서는 부국TNC가 대표적이다. 튜브 생산은 설비투자 부담이 크지만 시장 규모가 수백억원 수준에 불과해 신규 업체가 진입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에 따라 수요가 증가할 경우 공급업체의 가격결정력과 수익성이 동시에 높아질 수 있다.
한국콜마의 화장품 용기 자회사 연우 역시 2분기 매출이 91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8.9% 증가했다. 선케어 브랜드의 용기 주문이 증가한 결과다.
“그만 받을게요” ODM 신규 주문 제한
현재 화장품 산업의 가장 큰 특징은 수요 증가가 일시적인 계절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코스맥스와 한국콜마 등 상위 ODM 업체들은 이미 생산 일정이 상당 부분 채워져 신규 주문을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3분기뿐 아니라 4분기 실적까지 기존 예상치를 웃돌 가능성을 보여준다.
더 중요한 것은 올해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된 오프라인 진출이 아직 초기 단계라는 점이다. 여기에 내년에는 중남미 시장이 추가되고, 중국 시장의 소비 패턴 변화까지 나타날 경우 성장 지역은 더욱 넓어질 수 있다.
다만 해외 진출 확대에 따라 짝퉁과 지식재산권, 국가별 성분 규제라는 새로운 진입장벽도 커지고 있다. 특히 한국이 강점을 가진 중가 기초화장품과 선케어 시장에서 프랑스와 미국의 글로벌 업체들이 시장점유율을 잃고 있는 만큼, 향후 로레알·인터코스 등 기존 글로벌 기업들의 대응도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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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기사는 삼프로TV 인터뷰 방송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더욱 정확한 풍성한 내용은 방송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