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더봄] 잔치국수 한 그릇에 전쟁이 들어 있다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2026. 9. 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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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의 에코테인먼트]
밀값 상승이 불러낸 거리의 분노
가뭄과 전쟁이 만든 농민과 난민의 이동
국수 한 가닥에 얽힌 기후와 전쟁의 생태계
전남 담양 국수거리에서 맛본 잔치국수. 국수 한 가닥을 따라가다 보면 밀밭과 항구, 기후와 전쟁까지 만나게 된다. /김성주

출장길에 끼니를 때워야 하는데 뭘 먹을지 고민스러우면 그냥 눈에 보이는 국수집에 간다. 국수에는 여러 종류가 있겠으나 기왕이면 잔치국수로 간다. 전 세계 어디에 메뉴 이름에 party(잔치)가 붙은 게 있을까. 

뜨끈한 육수를 쭈욱 들이켜고 면을 한 젓가락 집어 든다. 김치가 맛있으면 금상첨화이다. 벽 위에 달린 TV 화면에는 뉴스가 나온다. 식재료가 올랐단다. 김밥이 금밥이 되었단다. 지금 내가 먹는 국수의 재료, 밀값도 만만치 않다. 지금 내가 먹는 국수는 어디에서 왔을까.

밀은 대부분 수입품이다. 국산 밀은 상대적으로 비싸 식당에서 만나기 힘들다. 해외에서 실려 온 밀. 밀은 국수를 만들지만 빵의 재료이기도 하다. 피자도 밀로 만든다. 

밀은 참 이상한 식물이다. 밀은 얌전히 밭에서 자라는 풀인데 사람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한다. 예로부터 왕조와 국가가 밀을 관리했고 제국은 곡물 운송로를 지켰다. 오늘날에도 밀값이 조금 크게 움직이면 중앙은행과 재무부가 긴장하고 정부가 민심을 살핀다. 

대표적인 나라가 이집트다. 이집트 사람에게 빵은 주식이다. 1977년 정부가 생필품 보조금을 줄이려 하자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른바 '빵 폭동'이다.

2010년에는 문제가 중동 전체로 번졌다. 러시아 등 주요 곡창지대의 가뭄으로 국제 밀 가격이 급등했고 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생활비 부담도 커졌다.

그해 12월 튀니지에서 노점상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분신한 사건이 발생했다. 직접적인 원인은 실업과 가난, 경찰의 모욕, 부패한 권력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먹고사는 사정은 이미 임계점에 다가와 있었다. 튀니지에서 시작한 시위는 이집트와 시리아 등으로 번졌다. 아랍의 봄이다.

시리아에서는 2006~2010년 극심한 가뭄으로 농업이 큰 타격을 받았다. 농촌 주민들이 도시로 밀려났고 실업과 빈곤, 정치적 불만이 겹쳤다. 2011년 내전이 시작되자 수백만명이 고향을 떠났다. 처음에는 터키와 레바논, 요르단으로 피했고, 전쟁이 길어지자 일부는 다시 유럽으로 향했다. 유럽의 난민 문제 뒤에도 전쟁과 정치뿐 아니라 그보다 앞선 농업과 기후의 이야기가 숨어 있었던 셈이다.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는 시리아 난민들. 가뭄과 농업 붕괴, 내전이 겹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났다. /연합뉴스

그러다 2022년에는 전쟁이 밀을 흔들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흑해 곡물 수출이 차질을 빚으면서 국제 밀값이 올랐다. 거기에 2026년 미국과 이스라엘이 편 먹고 이란과 벌인 전쟁도 밀값과 무관하지 않다. 호르무즈 해협이 불안해지자 유가와 해상운임, 비료와 농기계 연료비가 오르고 결국 식품 가격도 올랐다.

기후가 농업을 흔들고 농업 불안이 사회를 흔든다. 전쟁이 터지면 다시 밀과 식량 가격이 흔들린다. 전쟁이 나면 총알만 비싸지는 것이 아니다. 국수도 비싸진다. 오늘날 식량 생태계는 이렇게 돌아간다. 전쟁과 기후는 서로 따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전쟁이 곡물 공급망을 흔드는 동안 폭염과 가뭄은 밭에서 생산 자체를 흔든다. 

바로 얼마 전인 지난 7일 로이터는 유럽 일부 지역의 겨울밀이 2000년보다 최대 20일가량 빨리 성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따뜻해졌으니 농사가 빨리 끝나서 좋은 일이 아닌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고온과 가뭄으로 생육 기간이 짧아지면서 품질과 수확량이 나빠질 위험도 함께 커지고 있다. 곡식도 빨리 자란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사람도 너무 빨리 늙으면 걱정인데 밀이라고 다르겠는가.

그래서 밀 한 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한 것들이 보인다. 햇빛이 보인다. 비가 보인다. 흙과 미생물이 보인다. 농부가 보인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트랙터와 비료가 보이고 저장창고와 철도가 보인다. 항구와 화물선이 나오고 국제 곡물시장이 등장한다. 환율과 유가도 슬쩍 끼어든다. 더 들여다보면 가뭄이 나오고 기후변화가 나온다. 급기야 군함과 미사일까지 나온다. 밀 한 알 보는데 일이 너무 커졌다.

우리는 흔히 생태계라고 하면 숲을 생각한다. 나무가 있고 새가 있고 곤충이 있고 그 아래 미생물이 살아가는 그림이다. 하나가 사라지면 다른 생물이 영향을 받고, 서로 먹고 먹히고 도움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인간이 먹는 음식도 별로 다르지 않다. 밀 한 알과 인간 사이에는 수많은 생명과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 자연생태계에 먹이사슬이 있다면 인간의 식탁에는 생산과 유통과 무역의 사슬이 있다. 어느 한쪽이 끊어지면 다른 쪽이 영향을 받는다.

나는 다시 잔치국수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파티 분위기에 먹는 잔치국수.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릇 안이 제법 복잡하다. 그 한 가닥에 자연과 농업과 무역과 기후와 전쟁, 그리고 먹고살아야 하는 수많은 사람이 매달려 있다.

국수 그릇 안에 생태계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젓가락을 멈출 수는 없다. 국수는 불면 맛이 없다. 생태계를 공부하는 데 가끔은 망원경보다 젓가락이 낫다.

아랍의 봄= 2010년 말 튀니지 노점상의 분신을 계기로 촉발되어 이집트·리비아·예멘·시리아 등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산된 대규모 반정부 민주화 시위 운동이다. 독재와 빈곤뿐 아니라 가뭄과 밀 가격 폭등 등 식량 불안이 혁명의 중요한 뇌관으로 작용했다.여성경제신문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sungzu@naver.com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한양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관광과 엔터테인먼트를 전공했다. 삼성에버랜드에서 오랫동안 '환상의 나라'를 설계하며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현재는 슬로우빌리지 대표이자 컨설턴트로 변신해 농촌에 행복의 마법을 부리는 중이다. 한국수달보호협회 수도권서부지회장으로서 생태 보호에 앞장서고 있으며, 한국사회적농업협회 부회장을 맡아 치유농업과 6차산업을 이끌고 있다. 사람과 생명이 함께 웃고, 모든 이가 즐거운 세상을 만드는 것을 유쾌한 사명으로 삼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또는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