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44만원’ AI 보너스가 타이완에서 가능한 까닭

문준영 기자 2026. 9. 11.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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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7일, 라이칭더 타이완 총통이 2027년 모든 국민에게 'AI 보너스'를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많은 돈은 어디서 나올까? 8월20일 행정원은 이번 AI 보너스 지급을 위해 약 2357억 타이완달러(약 10조2529억원) 규모 예산을 2027년 예산안에 신규 편성했다고 밝혔다.

이런 배경에서 정부가 'AI 보너스' 계획을 별개로 발표하자, 천이신 타이완 국민당 문화전파위원장은 "민진당 정부가 그동안 '돈 뿌리기'라고 비난해온 현금 지급이 합리적 정책임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타이완 언론사 〈공상시보〉는 8월25일자 논평을 통해 "'돈을 전 국민에게 환원할 여유가 있다'는 것과 '돈을 전 국민에게 환원하는 선택이 최선의 결정'이라는 말은 다르다. 2357억 타이완달러로 정부 부채를 상환하고, 인재 개발에 투자하며, 산업을 전환할 수도 있다. 정부는 왜 지금 이 시점에 보편적인 현금 지급의 공익적 가치가 더 높은지 명확히 증명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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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정부가 AI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를 전 국민에게 1인당 1만 타이완달러씩 나눠주겠다고 밝혔다. 한국에선 ‘공산주의’라는 비난을 받았던 발상이다.
8월17일 라이칭더 타이완 총통이 2027년 전 국민에게 1인당 1만 타이완달러의 ‘AI 보너스’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EPA

8월17일, 라이칭더 타이완 총통이 2027년 모든 국민에게 ‘AI 보너스’를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AI 특수’로 확보한 초과 세수를 국민에게 환원하겠다는 취지다. 발표된 보너스 금액은 1인당 1만 타이완달러(약 44만원)로, 2026년 기준 타이완 전체 인구 약 2323만명이 대상이다.

이번 호황기는 단순히 반도체 산업을 넘어 타이완 경제 전체를 견인하는 결정적 계기였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타이완의 2026년 연간 경제성장률은 39년 만에 최고치인 11.05%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흥국의 고속 성장기에서나 볼 법한 기록적인 성장률을 이미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4만 달러를 넘는 2026년의 타이완이 달성한 것이다.

2323만명에게 1만 타이완달러씩 지급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든다. 그 많은 돈은 어디서 나올까? 8월20일 행정원은 이번 AI 보너스 지급을 위해 약 2357억 타이완달러(약 10조2529억원) 규모 예산을 2027년 예산안에 신규 편성했다고 밝혔다. 행정원 설명에 따르면 AI 보너스의 재원은 (1차 예산안 편성 당시에 비해) 추가되리라고 예상하는 세수 430억 타이완달러(약 1조8705억원)와 1차 예산안 잉여금 1930억 타이완달러(약 8조3955억원)를 합쳐 마련된다. AI 보너스를 지급하기 위해 추가로 적자 국채를 발행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이와 별개로 지정학적 위험이 상존하는 타이완에서 최우선 과제로 꼽히는 국방 예산도 이번 예산안에서 대폭 증액됐다. 행정원이 제출한 2027년 예산안의 국방예산은 사상 최고치인 1조1225억 타이완달러(약 48조8287억원)로, 처음으로 1조 타이완달러 선을 돌파했다.

타이완 정치권은 대체로 AI 보너스를 수용하는 분위기다. 야당인 국민당은 정부가 11월 예정된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돈으로 표심을 사려는 정치적 속셈이 있는 것 아니냐고 견제하면서도 “1만 타이완달러로는 부족하다. 1인당 2만 타이완달러를 지급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정치적 맥락이 있다. 직전까지 타이완에서 ‘보편적 현금 지급’을 주창해온 쪽은 야당인 국민당이다. 국민당은 지난 5월 ‘1인당 1만 타이완달러 지급’ 골자의 ‘국민지원금’ 특별조례안을 상정했는데, 이 조례안은 아직 타이완의 국회 격인 입법원에서 계류 중이다. 이런 배경에서 정부가 ‘AI 보너스’ 계획을 별개로 발표하자, 천이신 타이완 국민당 문화전파위원장은 “민진당 정부가 그동안 ‘돈 뿌리기’라고 비난해온 현금 지급이 합리적 정책임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타이완 TSMC 본사. AI와 반도체 분야는 대규모 사회적 인프라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시사IN 이명익

이는 반도체 호황에 따른 전 국민 배당을 경계하는 한국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지난 5월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페이스북에 “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다”라면서 AI 초과 세수를 국민에게 환원하는 ‘국민배당금’을 제안했다가 야권으로부터 ‘공산주의 발상’이라는 거센 공세에 시달렸다. 상승세를 그리던 코스피가 8000 선을 앞두고 하루 안에 5% 넘게 급락하자, 〈블룸버그〉는 이를 ‘국민배당금’의 여파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는 “정책실장이 소셜미디어에 게재한 내용은 청와대와 무관한 개인 의견”이라고 밝히며, 국민배당금에 대한 공식 논의는 없었다고 서둘러 선을 그었다.

누구에게 줄까, 다음에도 줄까?

한국에서 공산주의라고 비난받은 발상이 타이완에서는 큰 거부감 없이 수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지 전문가들은 국가 인프라에 의존하는 타이완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특성을 주목하고 있다. 우다런 타이완 국립중앙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시사IN〉과 한 서면 인터뷰에서 “타이완은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인데, AI 산업은 전력소비량이 매우 높은 산업이다. 2025년 TSMC 한 기업이 사용한 전력만 해도 타이완 전체 전력소비량의 약 10%를 차지한다. 화력발전에 따른 막대한 탄소배출과 대기오염으로 발생하는 환경적 피해는 타이완 국민 전체가 함께 부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산업 성장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국민이 분담해왔기에, 초과 세수의 과실을 나누는 명분이 성립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과실을 나누는 당위에 동의하더라도, ‘초과 세수를 개인에게 어떤 방식으로 배분할 것인가’로 넘어가면 논쟁이 복잡해진다. 왕펑성 타이완 국립가오슝대학 응용경제학과 명예교수는 AI 보너스 같은 보편적 일률 지급이 가진 장단점을 재정학적 개념으로 짚었다. “재정학에는 ‘수직적 형평성’과 ‘수평적 형평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수직적 형평성은 경제적 조건에 따라 지원 수준이 달라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수평적 형평성은 모두가 비슷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수평적 형평성을 적용한 일률 지급은 간편하고 투명하다. 저소득 가구에게 1만 타이완달러가 주는 한계효용이 고소득 가구의 1만 타이완달러보다 훨씬 큰 것도 맞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 목표가 ‘평균 이하의 국민을 돌보는 것’이라면, 전 국민에게 같은 돈을 지급하는 것은 정밀한 정책이 아니다.”

우다런 타이완 국립중앙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산업 성장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모두가 분담해왔으므로 초과 세수의 과실을 나눠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다런 제공

개인에 대한 직접적인 현금 지급보다, AI 호황에서 소외된 ‘산업 간 양극화’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우다런 교수는 타이완의 전통 산업과 서비스업 회복을 우선 과제로 꼽았다. “AI 관련 전자산업 종사자는 약 100만명인 한편, 전통산업 종사자는 약 200만명, 서비스업 종사자는 700만여 명에 달한다. 업종 간 임금격차가 매우 심각하다. 현금 지급에 그칠 것이 아니라 AI 등 특정 산업에서 발생한 ‘배당’ 일부를 활용해 취약한 산업을 어떻게 끌어올릴지 궁리해야 한다.”

현금 지급 외에도 국가 재정을 쓸 곳이 많은 상황에서, 정부가 보편 지급을 최우선하는 데 대한 정책적 비판도 제기된다. 타이완 언론사 〈공상시보〉는 8월25일자 논평을 통해 “‘돈을 전 국민에게 환원할 여유가 있다’는 것과 ‘돈을 전 국민에게 환원하는 선택이 최선의 결정’이라는 말은 다르다. 2357억 타이완달러로 정부 부채를 상환하고, 인재 개발에 투자하며, 산업을 전환할 수도 있다. 정부는 왜 지금 이 시점에 보편적인 현금 지급의 공익적 가치가 더 높은지 명확히 증명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현금 지급을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상시화’할 것인가 역시 화두다. 이번 AI 보너스가 특정 산업의 성장 결실을 전 국민이 나눠야 한다는 전례를 남길 수 있어서다. 우다런 교수는 “앞으로 AI 산업에서만 초과 세수가 발생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예상치 못한 다른 산업이 크게 성장해 정부 세수가 대폭 늘어나는 경우 또 전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할지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번 논쟁이 단발성 현금 지급에 그치지 않고 AI 시대에 걸맞은 장기적인 사회제도 담론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왕펑성 교수는 ‘사회 배당(Social Dividend)’의 범주를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AI와 자동화 시대로 노동소득이 줄어들고 자본소득이 늘어날 때, 사회는 어떤 이익 공유 시스템을 구축할지 계속 궁리해야 한다. 만약 사회 배당을 단순 현금 지급으로만 이해하면 당장의 소비 재원을 분배하는 수준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공공의료, 디지털 인프라, 중소기업 AI 전환 지원, AI 재교육, 청년 자산 형성 등도 일종의 사회 배당이다.”

왕펑성 타이완 국립가오슝대학 응용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한국의 미래대응기금안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왕펑성 제공

라이칭더 총통의 약속이 현실화되기까지 타이완 입법원의 예산심의 절차가 남아 있다. 타이완의 예산 결정 절차는 행정원 편성→ 입법원 심의·의결→ 공표→ 집행 순이다. 가능성은 낮지만, 입법원이 심의 과정에서 예산을 삭감할 변수도 배제할 수 없다.

AI 초과 세수, 한국은?

마찬가지로 반도체 특수를 경험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AI 초과 세수에 대한 논의는 타이완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5월 이후 ‘국민배당금’ 형식의 직접 지급안은 자취를 감췄다. 대신 정부는 최근 반도체 초과 세수를 활용하기 위한 새로운 정부안을 내놓았다. 기획예산처는 8월21일 반도체 추가 세수를 내년 일반회계 예산과 별도로 100조원 이상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해 적립하겠다고 밝혔다. 기금을 통해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 인재 분야에 중점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국가 예산으로 편입해 집행되는 타이완의 ‘AI 보너스’와 달리, 한국 정부는 기금 카드를 꺼내 들었다. 논박이 따른다. 야권은 기금 신설이 ‘국회의 통제를 피하기 위한 정부의 쌈짓돈이자 재정 꼼수’라며 강하게 비판한다. 반면 청와대는 “세금이 많이 들어올 때는 다 써버리고 적게 들어오면 덜 쓰는 방식은 책임 있는 재정 운용이 아니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같은 한국식 모델은 타이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왕펑성 교수는 최근 한국에서 제안된 미래대응기금안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타이완 모델의 장점은 경제성장의 성과를 신속히 국민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고, 한국 모델의 장점은 당장의 재정 잉여를 장기적인 생산능력 확충으로 전환하려 한다는 점이다. 현시점에서 어느 모델이 정답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타이완은 AI 특수를 겪으며 전 세계 어느 국가도 가본 적 없는 새로운 논쟁에 직면해 있다. 두 나라는 산업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서로가 서로의 길을 꾸준히 곁눈질하고 있다.

문준영 기자 juny@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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