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어느 미술작가의 꿈 [사람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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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아련한 '노스탤지어' 풍경이 좋아 재개발 현장을 그리던 미대생은 그때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웃었다.
매주 두세 번씩 천막을 찾아가 일을 거들다 전진경 작가가 '가만히 있지 말고 드로잉 대회라도 열자'며 판을 깔았는데, 참여한 사람이 자신뿐이었다.
어느덧 10년 차인 그는 후배 작가들을 보며 전진경 작가와 '저 작가님은 어떻게 이런 현장을 가셨을까' 감탄한다. "현장 미술하는 작가로 불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 치명타? 세종호텔 앞에 있는 그 사람?' 이렇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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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아련한 ‘노스탤지어’ 풍경이 좋아 재개발 현장을 그리던 미대생은 그때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웃었다. “무지한 낭만주의였죠.” 미술대학을 졸업할 무렵 스스로 작가 이름을 지었다. 치명타(38). “미술이 사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매체는 아니잖아요. 그걸 한번 더 꼬았어요. 제가 이 사회에 치명타를 안길 순 없지만, 안기고 싶다는 마음으로요.”
그림 작업을 이어가던 2013년, 페이스북으로 팔로 신청이 들어왔다. 노동자를 해고한 콜트·콜텍 공장을 점거하고 전시를 연 전진경 작가였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냥 무작위로 친구 신청하신 거였대요. 젊은이들이랑 소통하고 싶어서.” 그는 또 한번 웃었다.
메시지를 주고받다 전진경 작가의 작업실에 놀러 간 그날 저녁, 30년 동안 기타를 만들다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쫓겨나 벌써 2000일 넘게 천막에서 지내던 ‘재춘 아저씨’와 밥을 먹었다(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은 국내 최장기 농성으로 4464일, 12년 2개월 24일 동안 이어졌다). “제가 못 보던 세상인 거죠. 저는 그냥 뭐 안전하게 학교 다니고 작업실에서 그림 그리다가··· 이런 삶이 있구나.”
작업실로 돌아와 교수에게 고민 상담을 했다. 교수의 답변은 단호했다. “너같이 뜨내기로 왔다 가는 사람이 수백 명이야. 너야 갔다가 돌아오면 그만이겠지만, 그 사람들은 돌아선 뒷모습을 얼마나 많이 봤겠어?”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돌아서지 않으면 되지.’ 그때는 이게 얼마나 무거운 다짐인지 알지 못했다.
농성 천막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3년 뒤였다. 매주 두세 번씩 천막을 찾아가 일을 거들다 전진경 작가가 ‘가만히 있지 말고 드로잉 대회라도 열자’며 판을 깔았는데, 참여한 사람이 자신뿐이었다. 유일한 참가자로서 어쩔 수 없이 그림을 그렸다. “처음에는 제대로 못 그렸어요. 좁은 농성장에서 다른 사람도 보고 있는데 그림 그리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러다 진경 언니랑 귤 까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언니가 ‘명타야, 이거다, 너 앞으로 이렇게 그림 그리면 좋을 것 같아’ 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드로잉 방식이 자리를 잡았죠.”
그렇게 3년 동안 그린 그림을 모아 2016년 첫 개인전 〈뉴스피드〉를 열었다. 소수자를 조명하고 사회구조를 들여다본다는 큰 틀 속에 특정한 주제를 잡아 1~2년 동안 프로젝트를 하는 작업 방식이 자리를 잡았다. 소수자를 조명하고 사회구조를 들여다본다는 큰 틀 속에 특정한 주제를 잡아 1~2년 동안 프로젝트를 하는 작업 방식이 자리를 잡았다. 2017년에는 여성에게 강요되는 ‘꾸밈 노동’을 뷰티 방송 형식으로 보여주는 ‘메이크업 대쉬’를, 2019년에는 HIV 감염인·난민·장애인·성소수자 등을 등장시킨 인형극 영상 작업 ‘실바니안 패밀리즘’을, 재난 참사에서 슬픔이라는 감정을 응시한 ‘재난도감(2021)’과 ‘종이 아래(2022)’ ‘반도 엘레지(2024)’ 작업을 했다.

지금은 개인전과 단체전을 동시에 하고 있다. 개인전 〈생활공간 운용 연습가〉는 8월30일까지 인천의 전시관 쉬에서 열린다. 작가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정리수납 전문가 자격증도 땄다. 집을 치울 여력이 없는 이들을 찾아가 정리정돈을 함께하는 과정을 담은 전시다. 그는 전시를 소개하는 첫 문장에 이렇게 적었다. “해고 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며 늘 품었던 궁금증은 ‘외부에서 투쟁하는 동안 이들의 집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였다.”
단체전은 10월18일까지 서울 김근태기념도서관 전관에서 열린다. 〈함께 있다는 것을 전해줄 말들〉이라는 주제 아래, 그를 포함해 전국 각지의 투쟁 현장을 지킨 109·김아현·노예주·박정원·서울익스프레스·홍지연 작가가 모였다. 이 전시에 그는 지난해 5월부터 매주 나가서 그리기 시작한 서울 세종호텔 농성장 모습을 걸었다.
어느덧 10년 차인 그는 후배 작가들을 보며 전진경 작가와 ‘저 작가님은 어떻게 이런 현장을 가셨을까’ 감탄한다. 10년 전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어느새 잊고서. “콜트·콜텍 아저씨들이 투쟁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이런 작업을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자기 몫을 하면서 고군분투하는 분들의 빛으로 계속 가는 거죠.” 그의 목표는 소박하다. “현장 미술하는 작가로 불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 치명타? 세종호텔 앞에 있는 그 사람?’ 이렇게요.”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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