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재제청 요구’에 꼬인 대법관 인선…190일째 공전하는 대법원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조 대법원장은 청와대의 '대법관 재제청 요구'에 답을 내놓지 못하는 중이다.
대법관 공백이 6개월을 넘긴 것도, 추천위의 후보자 추천 이후 대법원장 제청까지 7개월이나 소요된 것도,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을 반려한 것도 모두 초유의 상황이다.
반면 지청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재판 지연이 심각한 만큼 하루빨리 대법관을 뽑아 정상적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면서도 "특정 후보자를 임명하기 위해 헌법도 무시하고 재제청을 요구하는 것은 대법원장을 동등한 관계로 보지 않겠다는 것이기에 조 대법원장이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법조계 ‘추천위 재구성’에 무게…조희대 선택 따라 靑·국회와 정면충돌 불가피
(시사저널=김임수 기자)
조희대 대법원장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노태악 대법관이 퇴임한 3월3일 이후 대법관 공백이 190일(9월9일 기준)을 넘어섰고, 9월7일 이흥구 대법관마저 퇴임하면서 2명 공백 사태가 현실화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조 대법원장은 청와대의 '대법관 재제청 요구'에 답을 내놓지 못하는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대법관 임명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있다. 행정부와 사법부, 두 헌법기관 수장이 침묵하는 동안 국회는 조 대법원장과 사법부를 향한 공세의 고삐를 죄고 있다. 대통령 임명권과 대법원장 제청권이 충돌하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법조계와 헌법학자들은 '헌법 정신'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공백 사태를 조속히 매듭지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사법 3법 충격"…독립성 훼손 경고한 이흥구
9월7일 이흥구 대법관이 6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이 전 대법관은 퇴임식에서 "12·3 비상계엄 이후 벌어진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대법원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국민들께 법원의 입장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거나 실패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법원이 말해야 할 때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 점점 말할 기회조차 잃게 된다는 냉정한 진실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조 대법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법원 내부를 향해 작심 비판을 쏟아낸 것이다. 이 전 대법관은 지난해 5월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유죄 취지 파기환송심 당시 반대 의견을 냈던 2명의 대법관 중 한 명이다.
비판의 화살은 법원 내부로만 향하지 않았다. 이 전 대법관은 재판소원·법 왜곡죄·대법관 증원 등 이른바 '사법 3법'에 대해 "법원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입법 과정이 충격적이고 안타깝다"면서 "법원이나 법관의 업무 수행에 상당한 제한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입법의 배경에는 재판에 대한 국민의 오래된 불만과 불신이 깔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퇴임으로 대법관 두 자리가 공석이 됐다. 대법원은 궁여지책으로 2부 소속이던 엄상필 대법관을 3부로 재배치하며 상고심 심리 자체가 중단되는 사태는 막았다. 다만 대법관 12명(조 대법원장과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의 경우 재판 업무에 관여하지 않는다)이 하던 업무를 10명이 나눠 맡으면서 사건 적체·심리 지연은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대법관 전원합의체(전합) 역시 심리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대법원은 대법관 다수 공백 상황에서의 전합 선고를 자제해 왔다. 현재 전합에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내란 혐의 사건 및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사건 등 국민적 관심 사안이 집중돼 더욱 완결성이 요구된다. 일각에서는 김성수 대법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9월14일 예정된 만큼 2명 공백 사태는 추석 이전에 해소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온다.
이재명 정부 이전에도 대법관 1~2명 공백 사태는 있어 왔다. 다른 점은 대부분 국회 동의 과정에서 공백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2011년 말 김용덕·박보영 대법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마치고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둘러싼 국회 파행으로 40여 일간 임명되지 못했다. 이때 대법관 두 자리가 46일간 비었다. 2012년에는 안대희 전 대법관 후임으로 지명된 김병화 후보자가 저축은행 비리 무마 의혹과 위장전입 논란 끝에 자진 사퇴했다. 이로 인해 117일간 대법관 공백이 이어졌고, 대법원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가 새 후보를 추리는 데만 50일이 더 걸렸다. 윤석열 정부에서 처음 임명된 오석준 대법관의 경우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명 제청한 뒤 국회 동의까지 119일이 걸렸고, 81일간의 대법관 공백이 발생했다.


초유의 공백…'장고' 거듭하는 조희대
다만 이번 대법관 공백 사태는 앞선 모든 기록을 뛰어넘은 수준이다. 대법관 공백이 6개월을 넘긴 것도, 추천위의 후보자 추천 이후 대법원장 제청까지 7개월이나 소요된 것도,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을 반려한 것도 모두 초유의 상황이다. 이에 양쪽 모두에 정치적 책임론도 제기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이 대통령 파기환송심에서부터 이어진 '조희대 코트'의 노골적인 선거·정치 개입 의혹을, 다른 쪽에서는 대통령의 죄 지우기를 위한 '코트 패킹' 시도를 비난하는 식이다.
국회 법사위원실 소속 한 민주당 관계자는 "(조 대법원장은) 내란수괴인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법관을 제청할 때는 대통령과의 협의 절차를 단 한 번도 생략하지 않았는데, 정권이 바뀌자 건너뛴 것"이라며 "보수·남성 중심의 대법관 구성을 다양화하겠다는 이재명 정부 철학에 대한 무시이자, 대법원장이 자기 정치를 하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반면 지청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재판 지연이 심각한 만큼 하루빨리 대법관을 뽑아 정상적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면서도 "특정 후보자를 임명하기 위해 헌법도 무시하고 재제청을 요구하는 것은 대법원장을 동등한 관계로 보지 않겠다는 것이기에 조 대법원장이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 자체가 위헌은 아니다. 현재 대법관 임명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있는데, 과거의 '지명권'과는 달리 '제청권'은 구속력이 없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라며 "문제는 재제청을 요구한 손봉기 후보자가 아무런 결격 사유가 없는데도 협의 절차가 없었다며 반려했다는 것이다. 단지 김민기 후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재제청을 요구했다면 대놓고 사법부 '코드 인사'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차 교수는 현재의 대법관 임명 절차는 1970년대 유신헌법 체제 틀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무소불위인 대통령 권력을 견제하고, 대법원장 제청권을 강화하는 흐름으로 바뀌었다는 점도 짚었다. 차 교수는 "유신헌법 체제에서는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에게 제청권이 있었다. 대법원장이 대통령 의중을 살펴서 대법관을 임명하는 등 대통령에 종속돼 있었고, 사실상 사법행정 독립 개념이 없었다"며 "이후 대통령이 마음대로 코드 인사를 하지 못하도록 견제 장치를 두는 방법으로 제도가 바뀌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다만 헌법상의 대법관 임명 조항은 바뀌지 않았기에 지금과 같은 여대야소 국면에서는 대통령 임명권이 다시 우위에 서게 되고, 중립적 인사가 선출되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 지금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은 예측하기 쉬운데, 대법원장 제청권마저 형해화되면 대통령이 무제한 제청 거부를 하면서 최고법원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고 부연했다.

"헌법에 없는 '밀실 합의'가 분란 만들어"
법조계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남은 세 후보자 중 재제청하기보다 추천위를 재구성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행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장은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할 때마다 추천위를 구성한다'고 정해놓고 있고, 추천을 마친 추천위는 해산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법원조직법 규정을 따른다면 한 번 제청으로 추천위가 해산됐고, 추천위가 해산되면서 재제청할 후보자도 이미 없다는 시각이다. 이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한 기수 위인 17기 법조인 40명은 성명을 내고 "대통령은 헌법에 근거 없는 재제청 요구를 중단하라"며 "대통령이 대법원에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만 앉혀 사법부 구성을 마음대로 하겠다는 삼권분립 파괴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번 성명을 주도한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청와대가) 후보자 2명 중 1명만 선택적으로 재제청한 것이 문제다. (정부)여당이 행정권과 입법권을 장악한 상태에서 사법부까지 장악하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제청 전 사전 협의 관행에 대해서도 "헌법에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잘못된 관행"이라며 "국민이 과정을 볼 수 없는 '밀실 합의'가 오히려 분란의 빌미를 만들었다. 새로 추천위를 구성해 제청한다면 그러한 협의도 필요 없이 곧장 제청하면 된다"고 부연했다.
문제는 이 같은 선택으로 청와대 및 여당과 정면충돌이 불가피하다는 데 있다. 또한 추천위를 새로 꾸리면 다시 제청하기까지 최소 두 달 안팎이 더 걸린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9월10일 대법원 후보 제청 법정기한을 명시하고, 최종 임명까지 추천위가 유지되도록 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해 조 대법원장을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법원행정처 폐지 및 대법원 세종시 이전, 조 대법원장 탄핵 추진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관 재제청 방식이나 일정 등에 관해 "아무것도 전달받은 게 없는 상황"이라며 말을 아꼈다. 대법원에서 근무하는 한 판사는 "(조 대법원장이) 여러 의견을 듣고 결정하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