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퇴직연금 뜯어보니 ③] ‘선택과 책임은 노동자, 결정은 회사’ 구조 바꾸려면?

김미영 기자 2026. 9. 11.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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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적립금 500조원 시대, 노동자의 노후자산은 어떤 기준으로 맡겨지고 그 성과와 위험은 누구의 책임으로 돌아가는가. 현행 제도는 퇴직연금사업자 선정과 운용 과정에 노동자대표의 동의·의견청취 절차를 두고 있지만 실제 노동자 참여는 제한적으로 작동한다.

공공기관 퇴직연금사업자 선정 제안요청서(RFP) 72건 가운데 노동자 선호도를 별도 점수로 반영한 경우는 2건뿐이었다.

다음 과제는 이 정보가 퇴직연금 사업자 선정기준과 운용 점검에 실제로 활용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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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퇴직연금사업자 평가 전체 순위 공개 추진 … 교육·정보제공 의무도 주기적 점검
▲ 퇴직연금 기능 강화를 위한 노사정 TF는 지난 2월 서울 영등포구 켄싱턴호텔에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자료사진 임세웅 기자>

퇴직연금 적립금 500조원 시대, 노동자의 노후자산은 어떤 기준으로 맡겨지고 그 성과와 위험은 누구의 책임으로 돌아가는가. 현행 제도는 퇴직연금사업자 선정과 운용 과정에 노동자대표의 동의·의견청취 절차를 두고 있지만 실제 노동자 참여는 제한적으로 작동한다. 퇴직연금사업자를 고를 때 부가서비스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노동자는 자신의 퇴직연금과 수익률 정보를 충분히 알지 못한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달 공공부문 노조 100곳을 대상으로 퇴직연금 인식·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이를 토대로 공공기관의 퇴직연금사업자 선정 관행과 정보·교육 실태, 수익률 격차와 책임구조를 살펴보고 제도개선 방향을 모색한다. <편집자>

지난해 퇴직연금 수익률은 6.47%로 제도 도입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수익률 상위 10%는 적립금의 84%를 실적배당형에 투자해 평균 19.5%의 수익을 낸 반면, 원리금보장형에 74%를 둔 하위 10%의 수익률은 0.5%에 그쳤다. 정부는 이런 격차를 가입자인 '노동자의 운용 관심 차이'로 설명하지만, 노동자가 합리적으로 선택할 만한 정보와 권한을 갖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10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고용노동부는 내년 퇴직연금사업자 평가제도를 전면 개편한다. 정성평가 비중을 줄이고 수익률 등 정량평가를 강화해 전체 사업자의 순위를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퇴직연금사업자를 제대로 비교하기 어렵고 노동자가 자신의 적립금과 수익률 정보를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관건은 평가 결과와 정보공개가 실제 사업자 선정과 가입자의 상품 선택에 얼마나 활용되도록 할 것인지다.

수익률 19.5% 대 0.5% … '관심 차이'로 설명될까

지난해 퇴직연금 수익률은 확정기여(DC)형 8.47%, IRP 9.44%, 확정급여(DB)형 3.53%였다. 원리금보장형 수익률은 3.09%에 그친 반면 실적배당형은 16.8%에 달했다. 지난해 코스피가 75.6% 상승한 데 따른 영향이 컸다.

단기성과와 달리 장기수익률은 높지 않았다. 2025년 말 기준 퇴직연금의 5년 연환산 수익률은 3.29%, 10년 수익률은 2.64%였다. 10년 수익률은 DB형 2.27%, DC형 3.09%, IRP 2.99%로 DC형과 DB형의 차이는 0.82%포인트였다.

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 발표한 '2025년 우리나라 퇴직연금 투자 백서'에서 상·하위 10%의 수익률 격차가 "운용에 대한 관심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수익률 하위 10%를 '무관심한 가입자'로 규정하고, 원리금보장형 중심의 운용을 "처음부터 시도하지 않은 결과"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노동자가 선택에 필요한 정보와 권한을 가졌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공공기관노조 1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퇴직연금 인식·실태조사'에서 회사나 퇴직연금사업자가 수익률과 상품 비교자료를 정기적으로 제공한다고 답한 노조는 9.6%에 불과했다. 조합원이 가입 유형과 적립금 현황을 모두 알고 있다는 응답도 30.6%에 그쳤다. 공공기관 퇴직연금사업자 선정 제안요청서(RFP) 72건 가운데 노동자 선호도를 별도 점수로 반영한 경우는 2건뿐이었다.

사용자가 금융회사를 고르고 금융회사가 상품을 제공하지만, DC형의 운용 결과와 손실은 노동자에게 돌아간다. 선택할 정보와 권한은 부족한데 책임만 개인에게 귀속되는 구조다.

퇴직연금사업자 평가 전면 개편 "정량평가 늘린다"

현행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퇴직급여법) 시행령은 사용자가 퇴직연금사업자를 선정할 때 사업자의 능력과 전문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도록 한다. 그러나 수익률과 수수료, 교육, 노동자 선호도 등을 각각 몇 점으로 평가해야 하는지는 정하지 않는다.

대신 노동부는 매년 퇴직연금사업자의 운용상품 역량과 수익률 성과, 조직·서비스 역량, 수수료 효율성 등을 평가한다. 지난해에는 41개 사업자를 4개 분야 15개 지표로 평가했다. 그러나 정성평가 비중이 높다 보니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결과도 상위 10%에 든 사업자 위주로 공개한다. 사업장과 노동자가 전체 사업자의 수준을 비교해 선정에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크다.

정부도 이런 점을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곧 발표하는 올해 평가에서도 수익률 등의 비중을 늘리고 디폴트옵션 성과 지표 등을 신설했는데, 내년에는 평가체계를 전면 개편한다는 방침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내년부터는 정량평가 비중을 대폭 높이고 전체 사업자의 순위를 공개하는 방향으로 평가체계를 전면 개편할 방침"이라며 "평가 결과가 노동자와 사용자의 사업자 선택에 실질적인 참고자료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부가서비스 대신 장기성과" … 공공기관부터 바꿔야

하지만 정부 평가를 개편하더라도 퇴직연금사업자 선정기준이 바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퇴직연금 운용과 관계없는 부가서비스가 선정 결과를 좌우하지 못하도록 평가항목과 배점을 손볼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를테면 공공기관부터 정부의 사업자 평가항목과 연동한 표준평가표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표준평가표에는 단기수익률뿐 아니라 3·5·10년 장기수익률과 위험조정 성과, 수수료, 상품 선정·교체 절차, 이해상충 방지체계, 가입자 교육 실적 등이 포함될 수 있다.

퇴직연금사업자측도 지금과 같은 부가서비스 중심의 평가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 위탁계약은 회사가 아니라 노동자를 수익자로 하는 계약인 만큼 사용자 관점이 아닌 노동자 관점에서 평가지표를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부가서비스에 과도한 배점을 주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수수료가 아니라 사업자의 운용역량과 인프라, 가입자 편익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보공개가 노동자의 선택권이 되려면

정부는 통합연금포털에 퇴직연금사업자별·운용방법별 수익률과 디폴트옵션 적립금·수익률 등을 공시하고 있으며 공개 범위를 계속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업자 평가결과도 확대 공개하고 교육·정보제공 의무 이행 여부도 점검한다.

평가와 공시 확대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사업자와 상품을 비교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다음 과제는 이 정보가 퇴직연금 사업자 선정기준과 운용 점검에 실제로 활용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2025년 말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501조4천억원 가운데 DC형은 141조6천억원, IRP는 130조9천억원이었다. 두 제도의 비중은 54.3%로 절반을 넘었다. 노동자가 직접 운용해야 하는 적립금이 늘어날수록 사업자와 상품을 비교할 수 있는 정보, 이해할 수 있는 교육, 선택 과정에 참여할 통로의 중요성도 커진다. 정부는 사업자의 성과와 비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사용자는 그 결과를 사업자 선정에 반영하며, 노동자대표는 선정과 운영 과정을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함께 작동해야 현행 계약형에서도 노동자의 선택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

기금형 도입만으로 구조 바뀔까

퇴직연금 500조원 시대가 던지는 질문은 '수익률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가 아니다. 노동자의 노후자산을 누가 장기적으로 운용하고, 노동자는 그 결정에 어떻게 참여하며, 손실과 책임은 어떻게 나눌 것인가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현행 계약형 퇴직연금에서는 금융기관이 제시한 상품 목록 가운데 DC형 가입자나 DB형 기업 담당자가 투자 결정을 하면서 제도의 주도권이 금융시장에 넘어갔다"고 지적했다. 사업자와 상품을 선택하는 의사결정 구조 자체를 점검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 2월 노사정 퇴직연금 공동선언의 후속조치로 정부와 여당은 이달 안에 퇴직급여 사외적립 의무화와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 방안을 담은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을 내놓고, 연내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다만 기금형이라는 선택지를 법에 추가하는 것만으로 지배구조가 곧바로 바뀌지는 않는다. 정창률 단국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기존 계약형에서 기금형으로 옮겨 갈 노동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정부측에서 나오고 있다"며 "지금 기금형 퇴직연금 모델을 설계하고 있는 실무작업반 논의대로라면 신규 채용자를 중심으로 기금형을 도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는 "우리나라는 퇴직연금을 처음부터 금융상품으로 설계했다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금융업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기금형이라는 선택지만 추가해서는 노동자 중심의 제도로 바꾸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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