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쇼’에도 빈자리 수두룩 “선거 이기면 5000달러씩 지급”

댈러스/박국희 특파원 2026. 9. 1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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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전당대회 현장 르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 시각) 보수의 본진으로 꼽히는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 무대에 올라 1시간 44분 동안 연설한 뒤 양손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다. 일부 지지자는 연설이 길어지자 먼저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로이터 연합뉴스

9일 오후 8시 30분(현지 시각)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아메리칸 에어라인 센터’. 통상 대선 후보 지명을 위해 열리는 전당대회와 달리, 11월 3일 중간선거만을 위해 마련한 공화당 사상 첫 전당대회 무대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올랐다. 그는 연설에서 “공화당이 상·하원에서 모두 승리하면 미국의 모든 성인 시민에게 5000달러(약 670만원)를 지급하겠다”고 했다. 그는 이를 ‘트럼프 배당금’이라고 부르면서 “미국 안에서만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 성인을 약 2억7000만명이라고 보면 1조3500억달러(약 1808조원)의 예산이 필요한(로이터 추산) 공약이다. 재원 대책 설명 없이 던진 트럼프의 이같은 대규모 현금 지급 약속은, 이란 전쟁 장기화와 고유가로 지지율이 집권 2기 최저치인 33%까지 떨어져 있는 트럼프의 절박한 상황을 방증하는 것 같았다. 민주당에선 즉각 “유권자의 표를 돈으로 사려는 시도”라고 비판이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 시각) 텍사스주 댈러스 아메리칸 에어라인 센터에서 열린 공화당 중간선거 전당대회에서 연설을 했다. 트럼프는 “경기장이 꽉 찼고 밖에도 같은 수의 사람이 있다”고 했지만, 관중석 곳곳이 비었고, 일부 지지자들은 전당대회 도중 자리를 떠났다. /박국희 특파원

‘보수의 본진’ 텍사스에서 열린 이날 전당대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중간선거용 트럼프 쇼’로 기획됐다. 행사장 벽과 엘리베이터, 참석자 출입증까지 온통 트럼프 얼굴로 도배됐다. 하지만 전당대회가 시작된 지 3시간이 넘은 오후 6시반에도 2만명 수용 규모의 경기장 상단 관중석은 여전히 빈자리가 더 많았다. 약 2시간 뒤 트럼프 대통령이 연단에 오르자 하단 객석 상당 부분이 찼지만 상단 곳곳은 계속 비어 있었다. 이를 의식한 듯 트럼프는 “경기장이 꽉 찼고 밖에도 같은 수의 사람이 있다”고 했지만, 트럼프의 연설이 2시간 가까이 이어지자 오히려 일부 지지자들은 먼저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이란戰 수렁 빠진 트럼프 “중간선거 직후 전쟁 끝나고 유가 급락”

이는 불과 1년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지난해 9월 암살된 트럼프의 측근(찰리 커크) 추모식이 열린 애리조나주의 7만명 규모 ‘스테이트팜 스타디움’은 행사 시작 직후 빈자리가 없이 가득 찼다. 오전 11시 행사를 보기 위해 지지자들은 새벽 2~3시부터 줄을 섰고,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도 수천 명에 달했었다.

트럼프가 전례 없는 ‘중간선거 전당대회’를 직접 제안한 배경에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집권당에 불리한 역사적 징크스에 더해 미 선거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탈환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을 잃으면 트럼프는 임기 후반 민주당 주도의 각종 조사에 직면하고 국정 동력도 약해질 수 있다. 트럼프가 실현 가능성이 의심스러운 ‘모든 성인 5000달러 현금 지급’을 승부수로 내놓은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트럼프는 “내가 투표용지에 있을 때 공화당은 항상 잘했다”며 “이번에도 내가 투표용지에 있다고 생각해 달라”는 주문을 반복했다. 약 35곳의 상·하원 경합지를 모두 돌겠다고도 했다. 지지율이 30%대인 트럼프가 중도층에는 부담이지만,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내려면 트럼프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게 공화당 내부의 판단이다.

중간선거 판세의 최대 변수는 7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이란 전쟁이다. 트럼프도 악화된 여론을 의식한 듯 “전쟁은 11월 3일 선거 직후 매우 빠르게 끝날 것이며 유가도 급락할 것”이라고 했다. 이란이 공화당의 패배를 기다리며 전쟁을 끌고 있다면서 “선거가 끝나면 포기하거나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중간선거 전까지는 종전과 유가 하락이 어렵다는 의미다. 이란 핵 위협을 제거하고 전쟁을 조기에 끝낸 성과를 선거에 활용하려던 애초 구상과는 달리,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선거를 치를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전당대회 당일에도 미국이 이란 유조선 5척을 공격한 데 맞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 선박 10척을 공격했다고 주장하는 등 교전은 다시 격화됐다. 이날 국제 유가는 두 달여 만에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트럼프는 고유가에 불만을 표시하는 이들을 향해 “이란이 핵무기를 가져도 되느냐고 물으면 모두 ‘절대 안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옳았고 내가 이긴 것”이라고 했다. 이란 나탄즈 핵시설 인근 ‘곡괭이산(Pickaxe Mountain)’에서 움직임이 포착됐다며 이란을 겨냥해 “장난치지 말라. 그곳을 매우 강하게 타격해야 할 수도 있다”고 추가 공격 가능성도 경고했다.

정작 중간선거에 출마한 공화당 후보들은 이날 무대에 올라 이란 전쟁을 대부분 언급하지 않았다. 메인주의 수전 콜린스, 알래스카주의 댄 설리번 상원의원 등 일부 접전지 후보는 전당대회에도 불참했다. 트럼프와 함께 서는 것이 핵심 지지층 결집에는 도움이 되지만 전쟁과 고물가에 불만을 가진 중도층의 이탈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반면 트럼프는 이날도 민주당을 “급진 좌파” “공산주의자”라고 몰아붙이며 불법 이민과 범죄,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성 스포츠 출전 같은 문화 이슈를 집중적으로 반복해 거론했다. 경제와 전쟁 이외의 쟁점으로 선거 구도를 넓히려는 것이다.

애초 텍사스는 전통적인 미 보수 진영의 텃밭이었다. 민주당은 1988년 이후 텍사스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지만, 올해는 트럼프가 낙점한 켄 팩스턴 공화당 후보와 제임스 탈라리코 민주당 후보가 접전을 벌이고 있다. 2024년 대선 때 트럼프 당선에 기여했던 텍사스의 히스패닉 지지층도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날 공개된 여론조사에서 텍사스 히스패닉 유권자의 63%는 탈라리코를, 30%는 팩스턴을 지지했다.

트럼프는 “필요하다면 텍사스에 두 번, 세 번이라도 다시 오겠다”며 팩스턴 지지를 호소했지만, 이러한 호소는 경기장 밖을 멀리 벗어나지 못하는 듯 보였다. 댈러스 시내에서 만난 카를로스씨는 “전쟁 전 2달러 초반이었던 댈러스의 기름값이 지금은 4달러에 육박한다. 트럼프는 미군 18명이 숨진 이란 전쟁을 ‘사소한 일(small potatoes)’이라고 했는데, 제정신인 지도자가 할 수 있는 말이냐”며 “이제 텍사스도 트럼프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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