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적은 AI 비용으로 몇명몫 대체했나” 달라진 고과

박순찬 기자 2026. 9. 1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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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 ‘AI 인사평가’ 도입
/일러스트=백형선·Gemini

삼성은 최근 전 계열사 임원을 대상으로 FTE(Full-Time Equivalent·전일제 노동력 환산)라는 새로운 지표를 적용한 인사 평가를 도입했다. 주 40시간 근무 기준으로 특정 업무에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절감한 노동량을 사람 수로 환산하는 방식이다. ‘AI로 몇 명분의 일을 줄였느냐’고 묻는 것이다. 예컨대 홍보 부서가 보도자료 작성을 AI로 자동화해 2 FTE를 기록했다면, 직원 2명 몫의 일을 AI로 줄였다고 인정받는다. 이 평가는 올 연말 임원 인사와 성과급에 반영된다.

삼성은 토큰(데이터 처리 단위) 비용 대비 성과를 따지는 토성비(토큰 가성비) 도입까지 검토했다고 한다. 같은 10명분 성과를 내더라도 1만달러어치 토큰을 쓴 조직보다 1000달러를 쓴 조직에 더 높은 점수를 주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임직원들이 일의 본질보다 토큰 아끼기에만 매몰될 것을 우려해 유예했다.

/일러스트=백형선·Gemini

◇못 쓰면 승진 배제...많이 쓰기보단 똑똑하게 써야

재계에 ‘AI 인사 고과’ 바람이 불고 있다. 생성형 AI 도입 초기 “일단 AI를 써 보라”며 활용을 장려하던 기업들이 이제는 “얼마나 비용을 아끼며 사람 몫을 대체했느냐”를 수치로 입증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들이 임직원의 AI 사용법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배경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AI 비용과 실효성에 대한 회의론이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사적으로 ‘1인 1 AI 에이전트’를 밀어붙였던 SK텔레콤이다. 전체 직원의 70%가 넘는 4000여 명이 개인 업무용 AI를 만들 만큼 열풍이 일었고, 이 중 1500여개가 현재 활성화돼 있다. 문제는 직원들이 제각각 에이전트를 만들다 보니 중복 작업이 늘고 토큰 소비 역시 급증했다는 점이다.

결국 사내 기술진이 질문과 무관한 정보를 사전에 걸러내고, 문서 전체가 아닌 필요한 부분만 불러오는 방식을 에이전트에 적용해 토큰 다이어트에 나섰다. SK 관계자는 “토큰 사용량이 느는 건 자연스럽지만 이것이 성과로 이어지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며 “정보의 품질과 토큰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했다. ‘누가 토큰을 덜 쓰고 제대로 일하느냐’를 따지지 않으면 AI 혁신이 막대한 비용 청구서로 돌아온다는 것을 절감한 것이다.

실제로 한 기업 내에서도 AI를 쓰는 수준 차이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한국투자증권이 AI 기업 구름의 솔루션(AISA)을 통해 임직원의 AI 활용 수준을 측정한 결과, 고득점자와 저득점자 간 효율 차이는 5배에 달했다. 고득점자는 질문 1개당 평균 200토큰만 쓰고도 원하는 답을 얻었지만 저득점자는 질문 1개에 최대 8966토큰을 쏟아부었다. 이들은 “이 과제 해결해줘” 식의 맹목적인 정답을 요구하며 토큰을 낭비하거나, AI 답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똑같은 AI를 쥐여줘도 누구는 저비용 고효율의 조력자로 부리는 반면 어떤 이는 회사 비용을 축내는 ‘토큰 먹는 하마’로 쓰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격차가 확인되자 AI 활용 역량을 승진과 평가의 절대 기준으로 삼는 기업이 늘고 있다. AI시대 승진의 문턱마저 한층 높아진 것이다. SK AX는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AI 리터러시 인증 시험’을 도입해 S~D등급으로 평가하고, C·D등급을 받은 인원은 재시험을 치르도록 했다. LG디스플레이는 올해부터 책임(과장~부장급) 승진시 ‘AX(AI 전환) 교육·평가’ 레벨1 이상 획득을 필수 요건으로 지정했다. AI 평가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승진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신입 채용에선 ‘AI와 대화 기록’까지 평가

AI 효율성 검증은 이제 입사 단계로도 확산되고 있다. 기아는 올해 대졸 공채에 업계 최초로 ‘AI 문제해결력’ 검증을 신설해 AI를 협업 파트너로 다루는 방식을 평가표에 올렸다. LG CNS는 실제 실무 과제를 생성형 AI로 해결하는 전형을 도입했다.

지난 7월 CJ올리브영과 크래프톤이 공동 주최한 해커톤에서는 크래프톤의 AI 평가 도구를 투입해 지원자가 AI에 내린 질문의 정의 방식, 수정·반복 과정, 검증 논리를 낱낱이 추적해 합격자를 가려냈다. 응시자가 제출한 최종 답안지뿐 아니라 문제를 풀기 위해 AI와 나눈 대화 기록 전체를 뜯어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AI를 단순 검색창처럼 쓰며 토큰만 낭비하는 사람은 기업과 채용 시장 양쪽에서 빠르게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

☞토큰(Token)

생성형 AI가 언어를 이해하고 생성할 때 사용하는 데이터 기본 단위. 영어 1단어는 대략 1.3개 안팎, 한국어는 1글자당 1~2개의 토큰으로 쪼개져 처리된다. 기업용 AI 서비스는 이 토큰 사용량을 기준으로 비용이 청구되며, 모델 성능과 입·출력에 따라 100만 토큰당 수 센트에서 수십 달러까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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